그때 그 이야기/장군이 된 이등병

제2話 장군이 된 이등병<225>간첩 잡은 포병 -120 -

화이트보스 2009. 5. 20. 17:18

제2話 장군이 된 이등병<225>간첩 잡은 포병 -120 -

현장에 가보니 두 구의 무장간첩 시체가 피를 흥건히 흘린 채 고갯마루 풀밭에 놓여 있었는데 한 명은 상반신이 아예 없었다. 수류탄 자폭을 한 것이다. 다른 한 명은 수십 발의 총탄이 전신에 퍼부어져 있었다.

시체 옆에는 지도와 수금 가방 같은 조그만 손가방, 손전지, 먹다 남은 비상빵 부스러기, 비상약과 반쯤 피운 찌그러진 담뱃갑이 시체 곁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이것들을 모두 수습하라고 지시하고 상황을 청취했다.

“3인 1조인데 한 명은 달아났습니다.”

나는 계속 추적할 것을 지시하고 보초병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서 잡았나.”

“넷, 우리 보초들이 절개지 양쪽에 매복, 숨죽이고 있는데 바로 눈앞에 몇 명이 나타나더니 동그랗게 모여 앉아 플래시를 켜 위치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시받은 대로 손끝으로 옆 동료 옆구리를 찌르고 일제히 동시 사격을 퍼부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총을 맞고 쓰러지면서 수류탄을 터뜨렸습니다.”

해당 지역이 3사단 관할 구역이기 때문에 나는 3사단 정보참모가 올 때까지 현장 보존을 잘하도록 지시하고 포사령부로 이동했다. 새벽 3시쯤 다시 보고가 들어왔다. 폐가에 숨어 있던 무장간첩 잔당을 3사단 포병부대가 사살했다는 보고였다.

그런데 195포병대대가 잡은 무장간첩 시신과 노획물을 모두 3사단 지휘소(CP)로 옮겨 가겠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즉각 부임한 지 몇 달 안 된 강창성(육사8기·관구사령관·보안사령관·전 국회의원·소장 예편) 5사단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뭐라고? 그 시체와 노획물을 3사단에 이관하지 말고 195대대에 보관하고 차후 사단의 지시를 받으시오!”

강사단장은 이렇게 단호히 명령했다. 나는 또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3사단과 5사단 사이에 ‘간첩 작전 유공 긴장’이 있을 수 있다는 걱정이 든 것이다.

작전은 3사단 구역에서 했지만 유공은 5사단 포병사령부가 세웠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한다? 사실 막막했다.

얼마 후 3사단 정보참모가 현장에 나왔다. 나는 5사단장의 지시를 받았으니 직접 통화하라며 3사단 정보참모를 강사단장에게 전화 연결해 주었다. 그는 연방 “네, 네, 알겠습니다”하더니 파랗게 질린 얼굴로 “5사단장님 지시대로 하십시오”하고 현장을 떠났다. 이는 전과를 올린 유공부대 단위로 포상하도록 규정이 새롭게 바뀌었기 때문에 195대대의 공이 되는 것이다.

나는 시체와 노획물을 수습한 뒤 195대대로 왔다. 오전 9시쯤 강사단장이 5군단장 이민우(육사2기·육참차장·국방부차관·중장 예편·사진) 장군을 수행하고 현장에 도착했다.

나의 보고를 받은 이군단장이 내 어깨를 치며 “이것 참, 별일 다 보았군. 보병이 놓친 무장간첩을 포병이 잡다니, 황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다는 말은 들었어도 포병이 무장공비를 잡았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야. 전사를 다시 써야겠어” 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나는 이때 정색하고 “군단장님, 저는 국방경비대 시절 대전 2연대 하사관학교 출신입니다. 각개 전투, 분대·소대 전투 훈련 등 실병 지휘를 마스터한 군인입니다. 지형 분석과 화기 배치·사방 경계를 주특기로 배웠고, 우리 포병도 대침투 작전이나 실전 전투 등을 완성한 지상 전투 병과입니다”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군단장은 하하하 웃으며 “하기야 옛날 군인정신이 투철하지. 사단장, 이것 군사령관께 보고하고 전군에 전과의 성공 사례를 전파할 생각이니 준비하시오”하고 현장을 떠났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4.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