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빨간 마후라

<303>제3話 빨간 마후라 -53-잊을 수 없는 사람-유치곤

화이트보스 2009. 5. 23. 15:58

<303>제3話 빨간 마후라 -53-잊을 수 없는 사람-유치곤

유치곤 소령은 나보다 다섯 살 아래로 동생이 없는 나에게는 친동생처럼 여겨지는 조종사였다. 그는 부하를 잘 다루고 주어진 책무를 깔끔히 처리했다.

1958년 8월1일 김포비행장에 제11전투비행단을 창설했을 때다. 4년여 주미 대사관 무관과 공군본부 작전국장을 지낸 뒤 11전투비행단 창설 단장으로 임명됐는데 무엇보다 조종사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평소 나를 잘 따르던 유중령을 전대장으로 데려왔다.

그는 언제 봐도 모범적이었다. 나의 지근(至近)거리에서 말없이 직무를 수행하며 나를 도왔다. 그런 1년 후쯤 유중령이 한밤중에 상도동 나의 숙소(관사)를 찾아왔다. 좀체로 없는 일이어서 의아스럽게 생각하며 그를 거실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유중령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더니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필시 큰 사고를 저지르고 온 것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무슨 일인가.”

그래도 유중령은 울기만 했다. 정말 부대에 큰 사고가 났구나 하는 낙담이 들자 어지러운 상념들이 뇌리를 스쳤다. 비행기 추락인가 아니면 충돌인가, 하극상인가, 조종사들이 크게 싸워 다친 것인가. 나는 목이 타는 답답함을 느끼며 다시 그에게 물었다.

“그래, 말해 봐. 이 자리는 상관과 부하의 자리가 아니다. 안 좋은 일이 있다면 서로 돕는 것이 선후배 사이 아닌가. 어서 말해 봐.”

그래도 그는 여전히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제 설움에 겨워 어깨까지 들썩였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다급해졌다.

“어서 말해 보라니까.”

그제서야 유중령이 눈물을 훔치면서 입을 열었다.

“단장님, 제가 사천훈련비행단 교관으로 있을 때 훈련생을 지도하던 중 비행기 사고를 낸 적이 있습니다.”

“그래, 그게 몇 년 전 일인데 그러는가.”

뚱딴지같이 52년의 사천비행단 시절을 말하는 것이다.

“그때 제가 눈을 다쳤습니다.”

“눈을 다쳐? 아니, 6년 전 일 아닌가. 그 후 강릉에 가서 200회 출격 기록도 달성하지 않았나.”

“네, 그렇습니다.”

“그랬으면 됐지. 우리 공군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기록이었잖나. 그런데?”

유중령은 다음 말을 기다리는 나에게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더니 말했다.

“최근 들어 크고 작은 비행 사고가 잦자 미 고문단이 갑자기 시력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그건 매년 실시하는 일 아닌가?”

느닷없이 시력 검사 얘기가 나오니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그의 다음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에 따르면 종전의 검사 때는 시력표를 모두 외워 버렸기 때문에 시력 검사를 무난히 통과해 비행기를 계속 탈 수 있었다.

그런데 근래 사고가 잦자 미 고문단이 종전의 시력표를 폐기하고 새 시력표로 교체, 조종사 시력 검사를 실시했다. 기존의 시력표를 줄줄 외고 있던 유중령은 새 시력표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결국 한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사실이 들통나고 말았다.

이렇게 경위를 말해 놓고 유중령이 다시 눈물을 삼켰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전투기를 모는 사람이 그것도 한쪽 눈으로….”

나는 절망적으로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거기에는 감탄도 섞여 있었다. 그런 몸으로 그동안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단장님, 저는 이제 비행기를 못 탑니다.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 자네 마음을 안다. 하지만 안돼.”

내가 아는 이상 조종간을 잡도록 허용할 수는 없었다. 그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더 이상 비행기를 타게 할 수 없었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5.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