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빨간 마후라

<305>제3話 빨간 마후라 -55- 잊을 수 없는 사람-김영환

화이트보스 2009. 5. 23. 16:01
<305>제3話 빨간 마후라 -55- 잊을 수 없는 사람-김영환

내 공군 생활은 김영환 장군을 빼놓고는 얘기가 안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공군 일생이 그의 일생과 거의 일치했고, 그래서 김장군과 나는 공군 창설 때부터 늘 바늘과 실 같은 존재로 지내왔다.

1953년 김장군이 10전투비행단장으로 있을 때 본부가 있는 대구로 출장 가면 언제나 부단장인 나를 대동했다. 단장이 공석이므로 내가 자리를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면 “네가 따라와야 내가 든든해” 하며 부대를 단속해 놓고 나를 앞세웠다.

나보다 네 살 위인 김단장은 계급상의 상관만이 아니라 혈육처럼 나를 아꼈다. 나 역시 친형 이상으로 그를 따랐다. 파일럿의 세계는 이런 면이 있다.

휴전(53년 7월27일) 직후 첫 8·15 광복절이 왔다. 김단장이 전투비행단 비행기가 한꺼번에 뜨는 경축 퍼레이드를 펼치자고 제안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의 남성다운 스케일에 맞춰 1편대군단(編隊群團·그룹 편대)에 16대의 비행기를 띄우도록 해 3개 편대군단, 즉 48대의 비행기가 한꺼번에 떠서 퍼레이드를 펴는 계획을 세웠다.

전투기가 활주로를 이륙해 공중에서 차례로 편대를 구성, 대그룹 편대를 만들게 된다. 이를 위해 1편대군장을 김영환 단장, 2편대군장을 부단장인 나, 3편대군장을 박희동 전대장이 맡아 임무를 수행했다. 이렇게 해 48대의 비행기가 편대를 짜 서울과 인천 상공을 돌고 대전 상공을 지나 공군본부가 있는 대구로 향했다. 이를 본 강릉·서울·대전·대구 시민들은 일제히 거리로 나와 환호했다.

멋진 에어쇼는 전상(戰傷)을 입은 국민들에게 안도와 자신감을 심어 주는 계기가 됐다. 이런 비행을 계획한 것이 김단장이고 오늘날 우리 공군의 명예와 영광을 다져 놓은 주인공이다. 퍼레이드를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김단장이 나를 불렀다.

“이봐, 미군들이 수염을 기르는 것을 보고 내가 한 번 길러 보면 어떠냐고 제안했지. 그래, 우리도 그렇게 해 볼까.”

마침 10전투비행단에는 공군본부에서 나이 많은 참모가 많이 배속돼 왔다. 그래서 분위기가 예전과 달랐고 껄끄럽게 서로 권위를 내세우는 측면도 있었다. 이때 미군들은 수염을 기르는 것이 유행이었으며 그래서 내가 불쑥 우리도 수염을 길러 위엄과 야전군의 분위기를 살려보자고 제안했다. 그것을 기억하고 김단장이 수염 문제를 꺼낸 것이다.

막상 김단장의 제안을 받자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아내에게 미리 떠보았더니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누라들이 좋아할까요”라고 한 발 물러섰더니 “싫어하면 해 보라지. 우리 야전 기분을 낼 겸 수염을 기르자”고 했다.

다음 날 나는 전 부대에 수염을 길러도 좋다는 지침을 내렸다. 기왕 기르려면 멋있게 길러야 한다고 하고 가장 멋있게 기른 사람은 금반지 한 쌍, 차석은 금반지 하나를 준다는 상금도 내걸었다. 굳이 금반지를 내건 것은 아내들의 마음을 사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한 달쯤 지나자 부대가 온통 수염을 기른 대원으로 가득 찼다. 이상한 나라에 온 기분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그중 몇몇 장병과 부사관은 사람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김단장이 어느 날 기르던 수염을 깎아 버렸다. 그래서 내가 “형님, 아까운 것을 왜 깎아 버렸지요”하고 항의했더니 김단장이 웃으면서 “수염을 길러 보니 풍성하게 나지 않고 입술 밑에 서너 개, 턱에 서너 개, 뺨에 서너 개 방정맞은 간신배 수염처럼 난단 말야. 그래서 밀어 버렸어”하는 것이었다.

자동차 부대의 어느 선임하사는 털보 배우처럼 멋있었다. 위병소의 신참내기 헌병들이 김단장이나 나는 외면하지만 그에게는 깍듯이 거수경례를 붙이는 촌극도 벌어졌다. 그것이 즐거운 듯 김단장은 호탕하게 웃었다.

강릉 시내의 양공주촌에서 부대원들이 돈을 탕진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김단장이 단속을 나가자며 나를 앞세웠다. 단속에는 운전병을 대동할 수 없어 직접 운전하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갔다. 골목 한쪽에 차를 세워 두고 기지촌을 한 바퀴 돌고 오자 차 옆에서 병사 서너 명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지프 1번이면 단장과 부단장이 타는 차인데 그들도 여기 왔다고.”

이렇게 말하며 히히닥거리는 것이다. 아차, 했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5.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