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즈기르를 출발하여 날란다를 잠시 둘러보고 일사천리로 달려온 우리는 빠트나(Patna)를 통과한후
바이샬리(Vaisali)와 케사리아(Kesariya)를 잠시 둘러보고는 어두울때까지 달리고 달려 쿠쉬나가르에 도착하였다.
험하고 열악한 비하르州를 넘어 다시 우타르 쁘라데쉬州, UP로 돌아온것이라고 운전기사가 너무 기뻐하였다. ㅎㅎ
보드가야 싸구려 숙소에 학을 뗀 우리는 라즈기르에서는 무조건 정부호텔 (Goverment HOTEL : Gautam Vihar)로 향하였으나 滿室이라 방을 구할 수 없어 약간 외진곳의 제2 정부호텔 (2nd Goverment HOTEL : Tathagat Vihar)로 가서 묵었었는데, 이곳 쿠쉬나가르에는 도착할때 이미 캄캄한 밤중이라 호텔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 다닐수도 없고.. 그다지 다양한 숙소도 없길래 처음부터 정부호텔(Pathik Niwas)로 향하였다.
생각보다 괜찮은(?) 호텔이라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 쿠쉬나가르 Kushnagar
부처가 열반에 드신 곳... 불교 4대성지중 가장 슬픈 곳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열반당을 먼저 찾았다.
호텔에서 멀지 않은... 바로 앞이었다.
<쿠쉬나가르 지도.... A가 호텔... 1번이 열반당, 2번이 다비장이며 작은 동그라미가 한국절 '대한사'....>

ㅇ 부처의 열반
속세 나이로 여든이 넘은 부처는 제자들과 함게 열반(涅槃)의 땅으로 정해진 쿠시나가르를 향하여 가다가 파바성에 있는 대장장이의 아들 춘다의 집에서 버섯요리 음식공양을 받고 병에 걸리고 만다.
쿠쉬나가르까지 24Km에 무려 25번이나 휴식을 취해야 할 만큼 고통스러워 했다고 전해진다.
쿠시나가르에 도착한 부처는 결국 이 병이 원인이 되어 열반에 드시게 되는데 아난다 존자에게 사라쌍수(娑羅雙樹) 아래 자리를 펴라고 하시고는 머리를 북쪽으로, 얼굴은 서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고요히 누우셨다.
그리고는 아난다에게 오늘 밤 열반에 들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마지막 설법을 펴시게 된다.
그때 쿠쉬나가르에는 늙은 수행자 수바드라가 살고 있었는데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평소의 의문을 풀어야겠다고 허둥지둥 찾아 왔으나 아난다는 부처가 아프다는 이유로 그를 가로 막는다.
부처는 그를 막지 말라 하며 가까이 불러 설법을 들려주고 수바드라는 그자리에서 제자가 되었으니 그가 마지막 제자이다.
그리고는 "이제부터 나의 모든 제자들은 정법을 서로 전하고 이어 받으며, 여래의 법신이 상주하여 항상 사라지지 않게 하라.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는 가르침을 마지막으로 남겼으니 위와 같이 부처님께서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하시기전 아난에게 마지막 남긴 유훈(遺訓)을 간략히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라고 한다.
自歸依 法歸依 自燈明 法燈明 諸行無常 不放逸精進 : 자기 자신을 등불을 삼고, 자신을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 삼고 진리에 의지하여라. 모든 것은 덧없으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라는 '열반송(涅槃誦)'을 남기셨다.
ㅇ 열반당과 열반탑 Nirvana Temple & STUPA
5세기쯤에 만들어졌다는 6.2m의 열반상이 누워계시는 곳이 열반당인데 13세기 이슬람의 침공으로 전소되었다가 복원되었다.
그 뒤편에는 아쇼카 대왕이 세웠다는 열반탑(STUPA)이 서 있는데 그후 계속 증축되었으며 최근 미얀마 스님들이 완성했다고...
이 STUPA도 8개의 분사리를 모셨던 스투파중 하나이며 실제 돌아가신 곳이라고도 한다.
열반당에는 수많은 순례객들이 찾아와 부처의 열반을 슬퍼하고 경배하며 부처의 온 몸에 금박지를 덧이어 붙여 금불상이 되어 있었고 새로 장만하여 입혀드린 가사는 자연스레 늘어진 채 편안한 모습으로 누워계신 모습이었다.
<열반당과 돔형 지붕의 열반탑이 보인다.>

<열반당 정면 모습....>

<마침 누워계신 부처상에는 순례객들이 금박지를 붙이며 경배를 드리고 있었다.... 대만 사람들인듯~>

<머리 부분.....>

<발 부분까지....>

<가사도 새로이 입혀드리고 예불을 올린다....>

열반상의 기단부에는 3명의 조각상이 있는데 제일 왼쪽은 최후의 공양을 올린 춘다, 가운데는 마지막 제자 수바드라, 오른쪽은 슬퍼하는 아난다 존자가 새겨져 있다.
<부처님께 최후의 공양을 올린 춘다.... 기록에 따라서는 슬픔에 젖은 말리카(코살라국 프라세나짓왕의 부인)이라고도 한다.>

<마지막 제자 수바드라... 기록에 따라서는 열반상을 기증한 하리발라 스님상이라고도 한다.>

<슬픔에 빠져 오열하는 아난다 존자... 부처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던 제자....>

열반상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서 그 모습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발끝에서 보면 열반하신 모습이요, 중간에서 보면 생각에 잠긴 모습이고, 얼굴 앞에서 보면 웃음 띤 모습이라고 한다.
<열반당과 열반탑 주변..... 스투파의 기단부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사라수(沙羅樹) 나무....>

<사라쌍수(沙羅雙樹) 앞에서 부처의 열반에 대하여 설명을 듣다....>

사라수(沙羅樹)는 인도 원산의 늘푸른 키큰나무로 30m 정도 큰다. 힌두어로는 'Sal’이라 하는데 사라수(沙羅樹)는 이를 옮긴 것.
목질이 좋아 건축자재나 침목으로 쓰이며, 기근 때는 열매를 빻아 밀가루에 섞어 먹기도 했다.
'쌍수(雙樹)’라 한 것은 부처가 입적한 쿠쉬나가르의 히라니야바티 강가에는 이 사라수가 동서남북으로 두 그루씩 자라고 있었기 때문인데 동쪽의 한쌍은 상주(常住)와 무상(無常)을, 서쪽의 한 쌍은 진아(眞我)와 무아(無我)를, 남쪽의 한 쌍은 안락(安樂)과 무락(無樂)을, 북쪽의 한 쌍은 청정(淸淨)과 부정(不淨)을 상징한다.
부처가 열반의 장소로 택하자 때가 아닌데도 사라쌍수는 담황색의 꽃으로 덮였으며 꽃이 만발한 나무 사이에 눕자 사라쌍수의 꽃이 비오듯 내리더니 이윽고 열반에 들었다. 이 때 사라쌍수의 꽃이 갑자기 하얀색으로 변해 학의 무리처럼 보였는데 사방에서 가지를 숙이고는 부처의 뒤를 따라 마침내 시들어 죽었다고 한다.
불교식 장례 때 제단에 지화(紙花)를 장식하는 것은 부처 입적 때의 이 사라쌍수 꽃에서 유래한다.
3대 성수(聖樹)
부처는 탄생에서 깨달음, 열반에 이를 때까지 나무와 관계를 가지고 있다. 태어날 때는 룸비니 동산의 무우수(無憂樹=아수가수) 아래서 태어났는데 마야 부인이 안산을 해 그 나무를 '무우수’라 했다 한다. 깨달음은 보리수 아래서 얻었다. 보리수의 원명은 핍팔라(일명 아슈바타인)인데 이 나무 아래서 깨달았기 때문에 깨달음(보리)이라는 이름이 붙어 보통 '보리수’라 한다. 열반에 들 때는 두 그루의 사라수(沙羅樹) 아래 머리를 북으로 하고 80년의 생애를 거두었다. 이 때문에 이 세 나무를 3대성수(聖樹)라 부른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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