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변리사·법무사는 "소송권 달라" 3각 공격…
대형로펌도 시장개방 대응 고심
3년차 변호사 이모(여·32)씨는 서울 서초동 A법률사무소에서 월급 200만원을 받고 일하다 몇 달 전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어느 날 자신을 고용한 변호사가 "요즘 수임 건수가 줄어 나 혼자 월급을 주기 어려우니 다른 변호사 일도 같이 맡아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래야 둘이서 당신 월급 200만원을 맞춰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후 다른 로펌이나 개인 법률사무소를 알아봤지만 "우리도 어렵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는 두 달 넘게 쉬다가 지난달 가까스로 작은 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다. 이씨는 "사시(司試)까지 붙었는데, 이렇게 초라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변호사들이 '사면초가(四面楚歌)' 형국에 놓였다. 지난 4월 기준 전국 개업 변호사 수가 9500명을 넘는 등 '변호사 1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변호사들 사이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최근 변리사·법무사·세무사의 직역(職域·담당하는 업무 분야) 확대와 해외 로펌의 국내 진출, 로스쿨 졸업생 배출 등이 코앞에 닥치면서 변호사 업계의 위기감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변리사·법무사·세무사의 '3중 공격'
최근 변리사·법무사·세무사들이 변호사가 독점하는 업무 중 일부를 나눠달라며 공격적인 활동을 펴고 있다.
변리사들은 변호사만 할 수 있던 특허소송을 변리사가 변호사와 공동 대리할 수 있도록 한 '변리사법 개정안'을 추진, 이미 지난달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전체회의까지 통과시켰다. 당시 변호사 10여명이 의원들을 설득한다고 국회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결국 막지 못했다.
법무사들은 "2000만원 이하인 민사소액사건 소송을 맡을 수 있게 해달라"며, 세무사들은 "세무 소송을 맡을 수 있게 해달라"며 관련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특히 소액사건은 전국 민사 재판의 75%를 차지하고 있어, 밥그릇 싸움이 치열하다.
◆'영국·미국 로펌' 공격도 코앞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던 대형 로펌들도 '해외 로펌'의 국내 진출을 앞두고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 외국 로펌이 국내에 자문사를 둘 수 있도록 한 법안이 최근 국회를 통과하면서, 한·EU FTA(자유무역협정)가 발효되면 곧바로 영국 등 유럽 로펌이 국내로 들어오게 된다. 영국 로펌들은 1998년 개방된 독일 법률시장을 완전히 잠식했을 정도로 파괴력이 크다. 변호사 수 300여명으로 국내 최대 규모인 '김앤장'도 4000명을 거느린 영국계 1위 로펌 '클리퍼드 챈스'에 비하면 몸집이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미국 대형 로펌들도 순식간에 한국 로펌들을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국내법은 해외 로펌은 자문(컨설팅)만 허용하고 소송은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법률시장이 점차 확대 개방되기 때문에 '무한 경쟁 시대'로 들어서는 건 시간문제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변호사들 대응책 마련 부심
사방에서 덮쳐오는 위협 앞에서 변호사들도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대한변협은 지난달 8일 "소액사건은 50만원 이하로 수임해 대국민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젊은 변호사들의 일자리를 넓히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무사들이 "소액사건은 30만원에 해줄 수 있다"며 관련법 개정을 촉구하자 내 놓은 방어책이다. 또 전국에 있는 무변촌(無辯村·변호사가 없는 마을)에 사무실을 차리는 변호사들에게 일정액을 보조하는 등 지원 계획도 마련 중이다.
서울변회는 인터넷 포털에서 인터넷 무료 법률 상담을 해주기로 했다. 대국민 서비스도 하고, 젊은 변호사들이 자신을 홍보할 기회도 얻자는 취지다. 로펌들은 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리고, 해외로 활동무대를 넓히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5월 법무법인 지평과 지성이, 지난 3월에는 대륙과 아주가 합병했다. 지난달에는 법무법인 충정과 한승이 합쳤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최근 변협 차원에서 국회의원들을 모셔 놓고, 변호사들이 얼마나 힘든 상황에 처했는지 설명하고 관련 법안 처리에 신경 써달라고 호소했다"고 말했다.
서울변회에 따르면 불황 등으로 휴업을 결심한 서울지역 변호사는 2005년 78명에서 2008년 138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해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 2000명이 쏟아져 나오게 되는 2012년부터는 변호사 1인당 수임 건수가 한 달에 2건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영홍 고려대 법대 교수는 "법률시장도 치열한 시장논리에 따라 능력 위주로 재편되고 있어 변호사의 대중화는 피할 수 없는 추세"라며 "당장의 밥그릇 싸움에 몰두할 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변호사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영역을 더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