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바다로 세계로!

<399>바다로 세계로!-29- X-레이작전-3

화이트보스 2009. 5. 27. 21:26

<399>바다로 세계로!-29- X-레이작전-3

부산을 떠나면서 정보국장 직무대리 업무 인계를 할 때 동기생 문기섭 소령에게서 나의 진급이 상신됐다는 말은 들었다. 그러나 막중한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워서 진급 같은 것은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D-데이는 닥쳐오는데 어떻게 해야 주어진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8월24일 01시30분. 백구호는 영흥도 남단 십리포 해안에 닻을 내렸다. 어둠 속에 17명의 대원이 민첩하게 하선해 섬 깊숙한 내리에 잠입했다.

다음 날 국민학교 교실에 본부를 정한 우리는 즉시 첩보공작에 착수했다. ‘리작전’의 성공으로 영흥도는 안전지대가 돼 있었다. 한봉규 병조장이 지휘하는 50명 규모의 현지 주민 의용대가 섬을 경비하고, 바로 앞바다에서는 우리 함정들이 섬 주변을 순회하면서 위력 시위를 해 주어 안심이 됐다.

장소위 팀은 본부에서 통신·경비·정보분석 업무를 맡고, 김중위와 임소위 팀은 곧바로 인천 잠입 준비에 착수했다. 아무리 인천에서 정보활동을 한 경험자라 하지만 적 치하의 도시에 거점을 마련하고 첩보 조직을 운영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가지 걱정되는 일은 영흥도가 당시 서울시 인민위원장(서울시장)으로 있던 이승엽의 고향이어서 동조세력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가족과 친지들이 모두 그를 따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호랑이 굴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부하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킬 필요가 없었다. 아무 걱정 말라고 해도 바짝 긴장해 있을 특수공작대가 아닌가.김중위와 임소위는 그날 밤 조각배를 타고 인천에 침투했다. 송도 해안에 닿은 그들은 자신들이 인천경비대에 근무할 때 지하조직원으로 활용했던 권씨라는 사람을 찾아갔다.

인천에서 ‘어깨’로 놀았던 권씨는 피난을 가지 않고 보안서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의 집을 찾아간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집안 동정을 엿보았다. 자정이 지나자 따발총을 어깨에 멘 그가 돌아왔다.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임소위가 재빨리 뛰쳐나가 권총으로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나직하게 말했다.

“권형, 김순기 중위를 잘 아시지요. 그 사람을 구하러 온 사람입니다.”권씨는 놀라면서도 김중위 얘기에 안도의 빛을 띠고 “김중위님이 피난을 못 갔군요” 하면서 자신은 살기 위해 보안서원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겁에 질린 그의 부인도 “김중위님 일이라면 우리가 도와야지요” 했다. 밖에서 창에 귀를 대고 듣고 있던 김중위가 집안으로 들어가 권씨 부부를 데리고 영흥도로 돌아왔다.

밤새도록 심문해 보니 그는 자신의 말대로 살기 위해 인공에 협조하고 있을 뿐 변절한 것 같지는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부인을 남겨 두고 권씨와 임소위를 인천으로 보내 또 다른 정보원 김씨를 데려오겠다”는 김중위의 보고를 받고 나는 안 된다고 했다. 적지에서 부하들의 생명을 권씨에게 노출시킨 것도 불안한데 또 다른 위험은 필요치 않았다.

그 반대의 경우를 나는 생각했다. 잠시 다녀오겠다고 방을 나간 김중위는 바로 권씨와 임소위를 데리고 돌아왔다. 권씨는 우리 대원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말없는 신뢰의 약속을 했다.그날 밤 김씨가 총을 메고 권씨를 따라 영흥도로 건너왔다. 보안서원 복장으로 총을 메고 부인과 함께 온 것으로 보아 변절하지 않은 것을 증명해 보이려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해서 적지에 든든한 거점이 마련됐다.

<정리 = 문창재(언론인)>

2006.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