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서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계획을 제일 먼저 안 사람은 손원일 제독이었다. 미 극동해군사령부(COMNAVFE) 소속으로 한국 해군 고문관이었던 루시 중령이 귀띔해 준 것이다.
상륙 지점에 관한 이견으로 본국 정부와 오랜 실랑이 끝에 인천으로 최종 결정이 나자 루시는 정식으로 GHQ(맥아더사령부)의 명령을 전했다. 인천 앞바다의 섬 몇 개를 점령해 정보 수집의 거점을 확보한 뒤에 첩보대를 상륙시켜 본격적으로 첩보를 수집해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GHQ의 요구는 인천 지역 북한군 배치 현황, 보급선과 현황, 해로의 기뢰 매설 여부, 상륙 지점 지형, 인천항의 안벽 높이, 밀물과 썰물 때의 해안 길이, 북한군의 방어 진지 상황 등을 탐지하라는 것이었다.
손제독은 곧바로 경무대로 달려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이대통령은 금세 얼굴 빛이 밝아지면서 빨리 정일권 장군을 부르라고 했다.
“손제독 잘해 주시오. 정보를 잘 수집해서 맥아더의 인천상륙 계획이 잘 관철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오. 우리의 희망은 인천상륙작전에 달려 있습니다.”
정장군 회고록을 보면 이대통령은 그 소식을 너무 반겼다. 상기된 표정으로 맥아더의 계획을 ‘놀랍고 반가운 소식’이라고 표현했다.
임시 경무대를 떠나 해군본부에 돌아온 손제독은 서해지구 작전사령관 이희정 중령에게 명령을 내렸다. 덕적도를 비롯해 인천 부근의 섬 몇 개를 점령하라는 명령에 따라 이중령은 즉각 함정 승조 장병으로 육전대를 편성, 덕적도를 공격했다. 뒤이어 영흥도를 공격했는데 적은 도서지방에까지 병력을 주둔할 여유가 없었던지 면 소재지인 이 섬도 쉽게 떨어졌다. 이 성공적인 작전을 미군 측은 ‘리 작전’(Lee Operation)이라고 불렀다.
무선 교신을 통해 이 사실을 알고 나는 안심했다. 부산을 떠날 때 손제독은 첩보대를 덕적도에 상륙시키고 첩보 활동을 하라고 했다. 덕적도는 너무 멀어 인천을 왕래하기가 불편하다고 생각한 나는 인천에서 가까운 영흥도를 기지로 삼게 해 달라고 손제독에게 건의해 승낙을 받았다.
남서 해안을 따라 인천으로 항해하는 동안 낮에는 섬에 닻을 내리고 낮잠을 재우거나 수영을 하도록 허락하고, 밤에만 야간 활동 적응훈련을 계속했다. 첩보 활동을 하려면 야간 활동이 필수조건임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변산반도 앞을 지나가던 8월20일쯤의 일로 기억된다. 임병래 소위가 “부산을 떠날 때 누군가에게서 국장님께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입니다”하면서 파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진급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무심코 봉투를 열어 보니 진급을 축하한다는 짧은 메시지가 적힌 종이에 중령 계급장이 싸여 있었다. 나는 잠시 계급장을 들여다 보다가 바다에 던져 버렸다. 살아 돌아올 기약도 없이 적지로 가는데 진급이 무슨 소용인가, 이런 심정이었다. 그것도 정식으로 발령받기도 전이 아닌가.
“그 계급장 돈 주고 산 건데요.”임소위는 계급장을 내버린 것을 무척 아까워했다. 그들은 내 진급이 상신됐다는 말을 듣고 계급장을 준비했다가 발령이 나는 날 축하해 주기로 했던 것이다. 부하들의 배려를 무색하게 한 일이 한동안 마음에 부담이 됐다.
<정리 = 문창재 (언론인)>
2006.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