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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조망의 산행에서 천황산은 낯이 익은 산이 됐다. 무등산, 내장산, 고리산, 모악산, 운장산, 남덕유산, 황석산, 갓걸이산(괘관산), 백운산, 만복대, 바래봉 등, 전남 동부, 전북 남부, 경북 함양 일대에서 바로 눈에 띄는 산이 천황산이다.
천황산(天皇山·909.6m)은 유난히 뾰족하게 우뚝 솟은 삼각봉이어서 지리산 같은 큰 산에서 작은 산을 찾기는 어렵지만, 이 산은 매우 특이해서 많은 산 가운데서도 쉽게 눈에 띈다. 이 산이 주변에서 쉽게 눈에 띄는 것은 거꾸로 이 산에서의 조망이 좋다는 것을 뜻한다.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갈라져나간 금남호남정맥이 남서쪽으로 나아가 장수 팔공산으로 솟는다. 여기서 서쪽으로 갈라져나간 줄기는 마령재에서 서쪽과 남쪽으로 다시 나뉘고, 남쪽으로 내려간 줄기는 묘복산과 상서산을 지나 천황산을 일으키고 더 나아가 노적봉, 풍악산, 매봉, 문덕봉, 삿갓봉, 고리봉을 이루며 잦아지다 섬진강을 만나 스러진다.
원추형으로 우뚝 솟은 ‘군계일학’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는 말이 있다. 많은 닭 가운데 있는 한 마리의 학이라는 말로 무리 가운데 뛰어난 하나의 존재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이 천황산을 군계일학과 같은 산이라고 말한다. 그 모습 자체도 뭇산 가운데 머리를 우뚝 내밀고 있는 뚜렷한 존재다. 그 늠름하고 우뚝한 모습은 임금이나 장군과 같은 기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천황산은 그 모습이 의젓하고 우뚝하며 조망이 좋지만, 경관도 아름답고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주봉과 상서바위는 바위로 된 봉우리여서 주위에 바위등성이가 있게 마련이고, 이 바위등성이가 숲 또는 소나무와 어우러져 좋은 경관을 이루고 있다. 특히 주봉이 우뚝하게 보이는 것은 봉우리가 바위덩어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봉은 사방이 바위벼랑으로 되어있고, 고스락에 오르려면 마치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느낌이 든다.
천황산은 숲이 빼어나게 좋은 산이다. 온 산에 숲이 우거져 있지만, 보현사에서 상서바위로 오르는 큰골 양편 비탈의 소나무숲은 온 나라를 뒤져도 그만한 소나무숲을 찾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소나무숲이 사람의 손에 의해 가꾸어졌다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수백 년 된 노송은 아니지만 적어도 백 년은 넘었을 것 같은 그 굵고 넓으며 크기가 고른 소나무숲에서 잡목들을 깨끗이 솎아내고 가지를 쳐내어(간벌) 소나무 잎과 땅 사이를 맑은 바람이 마음대로 통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이 소나무숲은 정갈하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주봉 못지않게 좋은 곳이 상서바위다. 큰골 끝에 우뚝 선 상서바위는 큰골쪽으로 70~80m의 직벽을 이루고 있어 장관이다. 이 상서바위의 장관은 주봉에서 등성이를 타고 오다 턱에 올라서서 건너다볼 때와, 큰재에서 올려다볼 때 가장 멋이 있다. 칼로 잘라낸 듯 높은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는 상서바위는 천황산의 명소다.
천황산은 산의 동쪽 골짜기인 산동면 대상리에 유서 깊은 귀정사가 있으며, 산 서쪽 산행기점이 되는 보절면 사촌리 용동에 보현사(고려 충숙왕 원년 1314년 창건)라는 꽤 오래 된 절이 있어 산을 오르내리는 길에 들러볼 만하다.
용동 마을 위, 보현사 아래에 큰 저수지 공사가 한창이다. 상수용과 농업용으로 쓰일 물을 위하여 만드는 저수지라 한다. 깨끗한 물을 마시게 되고 천황산의 경관도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큰 모양이다. 산길도 좋았고 안내판도 적절하게 설치돼 있었다.
귀정사와 천하제일의 명당 이야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는 ‘천황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 아래에 천황봉치(峙)도 있다. 그러나 산의 동쪽 보절면 주민들은 만행산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고, 산 서쪽인 산동면 주민들은 천황산, 또는 천황봉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한다.
‘전북의 백명산을 가다’를 쓴 벽송 김정길씨는 귀정사를 옛날에는 ‘만행사’라 했고, 귀정사 사지에도 ‘만행산’이라 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만행산이 옳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 임금이 귀정사에 주석하는 고승의 설법에 감동하여 3일간 머무르다 돌아간 뒤 임금을 뜻하는 천황산, 또는 천황봉으로 산이름이 바뀌었고, 절이름도 이 절에서 정사를 살피고 돌아갔다는 뜻으로 귀정사(歸政寺)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산이름은 ‘만행산’이 옳고, 주봉 하나만을 일컬을 때는 ‘천황봉’이라 해야 옳다고 주장한다. 벽송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왜 ‘만행산’이라 했는가 하는 그 유래가 궁금하고, 임금을 ‘천황’이라고 하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는 것이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전북산악연맹 회장을 역임하고, 지리산반달가슴곰보존회장(3개도 5개군 연합)과 지리산가꾸기운동연합 공동상임대표 등, 지리산과 남원을 위해 여러 가지로 활약하고 있는 남원의 이병채 중앙새마을금고 이사장은 ‘만행’은 ‘만가지 고행(苦行)을 몸소 체험해야 진리를 얻을 수 있다’는 뜻으로, 불교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평소 속리산, 월출산, 재약산 등에 있는 ‘천황봉’이라는 이름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뒤 붙인 이름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병채 회장은 또 천황산에 천자지지(天子之地·천자 즉 황제가 나오는 명당)로 알려진 천하제일의 명당이 있다는 전설을 이야기해 주었다. 어느 지관(地官·집터나 묏자리를 잡는 사람. 지사 또는 풍수)의 말에 의하면 그 천자(중국의 황제)의 자리에 모택동 할아버지의 묘가 있다 한다.
풍수지리에 통달했던 모택동의 아버지 모광대(시골에서 가난한 광대 노룻을 했다는 뜻)가 자기 아버지의 유골을 싸들고 천하의 명당을 찾아 뒤진 끝에 서기를 쫓아 여기에 와서 천황봉 자락에 유골을 묻고 모택동을 낳았으며, 모택동이 중국의 천자 격인 중국공산당의 당수가 됐다는 것이다. 그 묘는 지금 한창 공사 중인 저수지 자리 어디일 것이라는 추측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천자지지와 함께 근처 칠상동의 장군대좌(將軍大座), 옥녀봉의 옥녀직금(玉女織錦·선녀가 비단을 짠다는 뜻)의 대지를 찾으러 지금도 풍수들이 이 산을 드나들고 있고, 산줄기의 턱 등 곳곳에 유난히 묘가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상서바위의 이름도 아리송하다. 용동 이병만 이장은 상서바위가 빼어나다며 자랑이 푸짐했다. 그러나 그는 상서바위를 끝내 ‘상사바위’라 했고, ‘상사바위’나 ‘상서바위’의 유래에 관하여는 아는 바가 없었다. 현장의 안내판에는 ‘상서바위’라 되어 있다.
용동 마을회관 앞에 있는 마을회관 건립비의 내용을 보면 북쪽에 칠상동 99곡이 있고, 용추가 7~8개나 있다 했고, 상서바위는 ‘상사암(賞賜岩·상으로 내려준 바위)’으로 되어있다. 상서바위의 이름은 여기에 써있는 대로 상사바위가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동에서 정상까지 1시간30분 걸려
3월21일 천황산 산행에는 대전 용전산악회(회장 김덕중, 부회장 김세국 강숙인, 총무 기회석 조현자, 산악대장 이홍림) 회원 100여 명이 참가했다. 산행기점이 되는 용동은 천황산 자락이 감싸고 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그러나 지금은 저수지공사로 골짜기 들머리가 온통 파헤쳐져 어수선했다.
우리가 용동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이병만 이장이 천황산과 상서바위의 개황과 함께 자랑을 이야기한 뒤 우리를 산 들머리로 안내했다. 공사판으로 변한 골짜기에서 산길의 실마리를 찾기가 어려웠으나 이장의 안내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보현사로 오르는 찻길은 저수지 둑 위로 새로 만들어져 있다. 천황산으로 오르는 길은 보현사에 이르기 전에 보현사가 저만치 보이는 곳에서 오른편 너적굴골로 들어선다. 이 골짜기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너적굴이 있고, 옛날에는 불국사라는 절이 있었다 한다.
골짜기를 조금 올라가자 ‘천황봉 2.1km’ 팻말이 나오고, 이러한 이정표는 산행이 끝날 때까지 자주 볼 수 있었다. 길은 계속 골짜기를 따라 거의 곧게 이어졌다. 30분쯤 오르자 오른편으로 길이 갈라지는 자리에 ‘작은천황봉 0.5km’ 안내판이 있다. 천황봉은 오른편 길로 가야 한다.
‘천황봉 1km’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큼직한 바위로 된 너덜지대를 지나 왼편 급경사로 붙고, 길은 ㄹ자를 그리며 올려챈다. 이어 바위봉 낭떠러지 아래를 지나 등성이의 작은 잘록이에 올라선다. 여기에 오르면 비로소 북쪽으로 상서바위가 보이고, 보절면 일대 들과 야산들이 내려다보인다.
여기서부터 많지는 않으나 바위등성이가 시작되고, 오른편에는 노송이 선 높은 바위벼랑도 보인다. 천황산의 상징인 우뚝한 머리부분은 가팔라서 마치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것 같다. 밧줄도 걸쳐져 있다. 고스락에 오르기 전 상서바위로 가는 갈림길이 있고, 가파른 바위를 좀 더 올라야 고스락이 나선다. 고스락에 오르는 데 용동에서 1시간30분이 걸렸다.
고스락은 물론 사방이 낭떠러지이지만 그 위는 반반하고 꽤 넓다. 그래서 조망하기에도 좋다. 지리산의 조망을 기대했는데 구름이 많아 천왕봉 일대가 어렴풋이 보일락말락 했다. 팔공산, 장안산, 백운산, 월경산이 보였다. 대전기독병원 유정근 원장은 산행을 많이 할 뿐만 아니라 조망에도 관심이 많고 산을 잘 알아보는 분이다. 유 원장은 동북편에 가까이 보이는 산을 신무산이라며 그 아래 골짜기에 있는 ‘뜸봉샘’이 금강의 수원이 되는 샘이라고 알려주었다.
스텐리스스틸로 만든 정상 표지판에는 ‘만행산(천황봉), 귀정사 2.5km, 용동 3.3km’라 적어 놓았다. 고스락에서 점심을 먹고난 뒤 상서바위쪽으로 산행을 이어갔다. 급경사를 내려서자 상서바위까지는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락내리락 넘으며 이어질 뿐 별다른 것이 없다. 명당으로 알고 썼는지 등성이에 묘들이 많다.
1시간 가까이 걷다 턱에 올라서자 묘가 있고 건너에 80여m 깎아지른 상서바위가 나섰다. 상서바위 위에 있는 사람들이 작은 인형처럼 보였다. 상서바위는 이 묘에서 한 단을 더 오른 뒤 테라스처럼 큰골쪽으로 내민 날등으로 나아가야 한다. 상서바위 위에 서니 큰골 골짜기가 아득하게 내려다보일 지경이었다.
큰재로 하산하는 길은 상서바위 바로 뒤에서 북쪽으로 나있다. 급한 비탈을 내려서면 큰재가 된다. 큰재에서 올려다보는 상서바위의 위용이 멋있다.
큰재에서 보현사로 내려가는 큰골의 길도 넓고 좋다. 이 골짜기 길 좌우로 형성된 소나무숲이 좋다. 잘 손질되어 있어서 길에서 숲 아래 비탈을 보면 바람이 잘 통하고 시원한 느낌이 들며, 산비탈 위쪽을 보면 소나무 잎의 푸르름이 짙고 힘차게 보인다.
큰골 들머리의 보현사는 개울 건너에 있다. 작고 평범한 절이다.
용동 마을회관에 이르니 푸짐한 어묵국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출출하던 판이라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용전산악회 회원들은 모두가 가족처럼 화목하게 산행하고 있으며, 임원들은 회원들의 편의를 위해 봉사하는 산악회로 유명하다. 이 날의 어묵국수도 몇몇 임원이 먼저 하산해 마을에서 불을 빌어 끓인 것이다.
큰재에서 용동 새마을회관까지 1시간쯤 걸린다. 그래서 총 산행시간은 3시간30분~4시간 정도 걸린다. 점심시간까지 합하여 4시간30분이면 된다.
■산행길잡이
산행길은 세 갈래다. 용동(전북 남원시 보절면 사촌리)~너적굴골~작은천황봉 갈림길~상서바위 갈림길~고스락(약 1시간30분 소요), 용동~보현사~큰골~큰재~상서바위~고스락(약 2시간30분 소요), 한재 마을(전북 남원시 산동면 대상리)~요골~귀정사~고스락(약 2시간 소요)가 그것이다.
위에서 용동을 중심으로 너적굴골 코스와 큰골 코스를 이용해 원점회귀하는 산행이 산길도 좋고 교통도 편리하여 가장 좋다. 다만 너적굴골 들머리를 잘 찾아야 한다.
귀정사 코스는 귀정사를 거치는 점이 좋지만 길도 좋지 않고 상서바위를 거치려면 시간도 많이 걸려 불편하다(이 길은 확인하지 못했다). 용동쪽은 이장 이병만씨에게 문의하면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전화 016-634-4294).
■교통
천황산을 찾아가는 거점은 전주, 남원, 장수가 된다. 영남쪽에서는 대전~진주 고속고로나 88고속도로를 이용해 장수나 남원으로 가고, 대전 이북에서는 대전~진주 간 고속도로를 이용해 먼저 장수로 가는 것이 편리하다. 전남에서는 남원을 거치면 된다.
남원쪽에서는 721번 지방도에 들어서서 북으로 가다 보절면 소재지를 지나 도룡리 벌촌에서 용동 또는 보현사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된다. 보절면 일대에서는 삼각봉인 천황산의 모습이 잘 보인다.
전주쪽에서는 남원으로 가는 17번 국도를 타고 가다 오수(전북 임실군 오수면)를 지나 이어 덕과(덕과면 소재지)를 지나자마자 보절면 안내 표지가 있는 첫 신호등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아 들어간다. 보절면 소재지에서 721번 지방도로 들어서서 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벌촌에서 용동 보현사로 들어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장수에서는 13번 국도를 타고 비행기재를 넘어 산서면 소재지에서 남원으로 가는 721번 지방도로 들어서서 가다 역시 벌촌에서 용동으로 들어간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려면 남원 시내버스를 타야 한다. 용동은 남원에서 1일 7회 왕복한다(남원 터미널에서 6:30, 8:30, 11:20, 12:40, 16:00, 18:30, 20:30 출발). 용동에서 남원으로 나가는 버스는 7:00, 9:10, 12:00, 13:30, 17:00, 19:30, 20:30에 있다.
귀정사쪽으로 산행하려면 남원에서 산동면 소재지를 지나 한재 마을로 가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남원에서 한재까지 1일 8회 왕복한다. 한재에서 남원으로 떠나는 버스 시간은 7:00, 9:30, 11:00, 13:30, 16:00, 17:30, 19:00, 20:30이며, 남원 터미널에서 한재로 가는 버스 시각은 위 시간에서 30분을 빼면 된다.
귀정사까지 승용차는 들어가지만 대형 버스는 들어갈 수 없다.
■명소 - 귀정사(歸政寺)
천황산 주봉의 남동남쪽 골짜기 어귀에 옛절 귀정사가 있다. 백제 무왕 15년(515년) 현오국사가 창건해 고려 목종 때 대운선사가 중창했고, 조선조 세조 때 낙은선사가 크게 재중창해 불당이 산을 메웠으며 승려 수가 200명을 넘었었다고 하나 임진왜란과 6.25전쟁 때 모두 타버렸다 한다. 1980년에 대웅전, 승당, 삼신각, 요사 등이 새로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귀정사의 옛이름은 만행사였다 한다. 그러나 어느 때였는지 임금이 이 절에 와서 고승의 설법을 듣고 감동해 사흘을 머물며 정사까지 살피고 ‘生之殺之我師同之(죽고 살기를 스님과 같이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 그 임금이 돌아간 뒤 절이름을 귀정사로 고쳤다는 것이다.
절이름뿐만 아니라 만행산이란 산이름도 천황산으로 바꾸고, 주봉 왼편 봉우리를 태자봉, 앞산을 승상봉, 남쪽 골짜기를 남대문재, 북쪽 골짜기를 북대문재, 병사들이 주둔했던 곳을 둔병치라 했으며, 그밖에 상소바위, 요동(요골) 등 조정 또는 임금과 관련되는 이름들이 전해오고 있다(김정길 저 <전북의 백명산을 가다> 참조).
위 이야기들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으나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를 섬멸한 황산이 가까이에 있고, 이성계가 황산대첩 3년 후 황산에 다시 내려와 둘러보고 간 사실이 있어서, 귀정사가 이성계와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천황이나 승상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쓰지 않던 어구여서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글 김홍주 소산산행문화연구소 소장
남원 천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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