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겨례의 지도자

[스크랩] 1967년 12월 박정희대통령의 고장난 시계

화이트보스 2009. 6. 21. 10:14

1.  <마닐라 상공을 날던 비행기 안에서의 박정희대통령의 시계>  

 

외국 순방길에 나선 대통령 탑승기가 마닐라 상공에 이르렀을 때, 
노스웨스트 기내에서 수행기자들에 둘러싸여 있던 대통령 박정희는 마닐라 시가를

내려다보면서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기자들에게 “지금 몇시요?”라고 물었다. 그의 시계는 고장이 나

있었다.

그것을 알고 어느 기자가 시계를 자기에게 달라고 했다. 고물시계라 어차피 쓰지 못할

것이니 기념품으로나 기증하시라는 말이었다.  

“천만에!  이건 5.16 혁명 이전부터 차던 시계란 말이오.”

1967년 12월, 호주와 뉴질랜드 순방 항로 중에 있었던 일이다.

그는 멈추어 버린 시계바늘을 움직여 보려는 듯 손목을 흔들면서 어이없는 웃음을

웃고는 창밖으로 펼쳐지는 마닐라 시내의 광경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번영의 상징인

마닐라 하이웨이를 내려다보면서 시계를 보았던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방문에서 박정희는 필리핀 대통령에게 수모를 당한다. 후진국 대통령이란 이유로..   박정희대통령이 집권하던초기1960년대 한국은 국민소득 75불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2. <박정희의 낡은 고물 시계>

 

 고 박정희 대통령이 차고다니던 시계는 타피카 고물시계였다고합니다. 당시 시계값은

 2천원짜리정도 이후 차고 다니던 시계는 세이코였다고합니다.   
 
 

 

◇ 대한민국은 지금 몇시인가? 자주 들여다보는 ‘역사의 시각’. 1979년 10월26일 삽교천 준공식을 끝내고

당진송신소 준공식에 참석해 최세경 KBS사장으로부터 보고를 듣던 중 시계를 보고 있다. ⓒ국가기록원

 

 

3.  <김재규가 선물하려 했던 <충성의 시계>

그의 습관 중의 하나가 시계를 자주 보는 일이었다. 어느 곳을 시찰하면 그 일대의 중요한 산업시설을 모조리 돌아보는 식의 일정을 짜고 그것에 따라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시각을 확인하곤 했다.

생애 마지막 날인 1979년 10월26일에도 오전에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후 KBS

시설인 당진송신소로 가서 거기서도 준공식을 하고 도고호텔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귀경 후 궁정동의 만찬장 식탁에서도 저녁 뉴스 시간을 기다리며 시계를 보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차고 있었던 시계가 흔해빠진 세이코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호주와 뉴질랜드로 가는 항로 중 마닐라 상공에서 고장이 났던 그의 손목시계는 당시

신문기사에 의하면 녹이 슨 타피카 구형으로 잘 봐주어 시가 2천원 정도라고 했다.

미국 대통령 존슨이 박정희에게 금시계를 선물한 일이 있다. 한미정상의 만남에 박정희는 아무런 선물도 준비하지 못해 겸연쩍어했지만, 그렇다고 미국 금시계가 그의 환심을

살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몸에 무언가를 요란하게 걸치는 것을 거추장스러워하고 간단한 소지품이라도

‘묵은 정’을 쉽게 떼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럼에도 대통령 생일에 바치려고 명품 시계를 준비한 인물이 있다.(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스위스에 금으로 된 최고급 파텍 회중시계를 특별 주문했다. 대통령을 가장 잘 알 법한

김재규의 행동으로 보아 분명 정상은 아니었다. 덮개에 봉황 무늬와 대통령 사진이

들어가 있고 ‘근축 탄신 1979’라고 새긴 시계였다. 1979년 11월14일 대통령 생일을

위해 ‘충성의 시계’를 준비해 두고, 그래 놓고 저지른 10.26사건이다. 

 

4. <1979년 10월 26일의 국군수도통합병원 병원 응급실의 시계>

 

박정희 대통령이 대통령 시해범인 김재규의 흉탄에 서거한 직후 국군수도통합병원에

시신이 옮겨졌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시신을 검시한 군의관이 박정희 대통령입고

있던 속옷이 너무 남루하고 착용하고 있던  혁대가  닳아빠지다 못해 두가닥으로

갈라진데다 손목기계는 낡아빠진 일제 세이코 손목시계를 착용하고 있어 군의관이 

감히 시신의 주인공이 대통령이고는 상상을 못했다고 한다.

 

"병원에 들어왔을 때는 얼굴에 피가 묻어 있었고 감시자들이 응급 처지중에도 자꾸 수건

으로 얼굴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시계가 평범한 세이코였고 넥타이 핀의 멕기가 벗겨져

있었으며 혁대도 해져 있었습니다.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약간 있어 50여세로 보았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각하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10.26 사건 때 朴正熙 당시 대통령의 屍身을 검안했던 군의관 정규형 대위의 진술).

 

   

                                                                                                                                                         동  아  쉼  터 
출처 : 박정희 바로 알리기 국민모임
글쓴이 : 동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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