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겨례의 지도자

[스크랩] [동영상] 독도를 지켜내신 박정희 대통령의 기개

화이트보스 2009. 7. 2. 19:56

    SBS뉴스입니다.


    이승만: 1952.1.18.에 리승만 라인을 선포했고, 그 선 안에 독도가 있었습니다. 일본을

    통치한 연합군최고사령부(SCAP)는 1946.1.29. 일본정부에 하달한 지시령(SCAPIN) 677호

    3항에서 일본 영토는 홋카이도, 혼슈, 큐슈, 시코구 등 4개 주 섬들과 약 1,000개의

    주변 작은 섬들로 제한 한다며 웃즈로(울릉도), 리앙쿠트 락스(독도), 쿠엘파트(제주도)

    를 일본 영토에서 제외시킨다고 명시했습니다.


    박정희: 1965.6.22. 소위 구-한일어업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여기에서도 독도는 우리 땅이었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돈을 주는 대가로 일본이 또 독도를 거론했습니다. 1965. 5.17, 존슨 대통령은 방미중인 박정희를 만나 한일협정 진척을 축하하면서 독도를 일본과 공유하라, 공동등대를 설치하라 종용했습니다. 박정희는 이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미국이 힘으로 밀어붙이려 했지만(1965.6.15, 국무부문건 364호) 박정희는 장관급 회담을 거절하겠다며 맞섰습니다. 미국대사는 박정희는 그 무엇으로도 독도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며 밀어붙이기의 불가능성을 본국에 보고했습니다.

    김대중: 1998.11.28. 독도를 포기하는 신-한일협정에 서명했습니다. 1999.1.6. 국회에서 토의도 하지 않고 여당의 날치기로 단숨에 통과시켰습니다. 1999.1.22.부터 발효됐습니다.
    이 때 새로 그은 배타적경제수역(EEZ)에는 독도가 우리 땅이 아닌 것으로 돼 있습니다.이로 인해 3,000여척의 쌍끌이 어선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선박 및 어구 류 제조업체들이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어민들은 통곡을 했지만 당시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 그 어선들을 북한에 주자했습니다.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김대중은 이를 금지곡으로 지정했습니다. 그리고 국민이 독도를 방문하는 것도 금지시켰습니다. 도대체 김대중은 일본과 무슨 뒷일을 벌였을까요?

    노무현: 그는 여당 부총재를 거쳐 2000.8.7.해양수산부 장관이 됐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독도가 우리의 영토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냉엄한 국제 현실 속에서는
    우리 주장만 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이에 당시 야당 의원들은 장관은 한국 장관인가. 일본 장관인가 이렇게 화를 낸 바 있었습니다. 반기문, 한덕수. 이정빈도 이들 편에 서서 일했습니다.

    2004.7.21. 제주도에서 고이즈미 일본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케시마 문제에 관해서는 좀 적당하게 얘기하고 넘어가겠다. 이런 자리에서 재론할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재론하지 않겠다 이런 정도로 말씀을 드리겠다" 일본 시사통신은 7.22일 "일본과 한국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영토문제에서 한국대통령이 일본의 견해를 용인?"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일본이 무슨 생각 했겠습니까? 어수룩한 데가 있다, 잘하면 되겠다! 이런 생각 안했을까요?

    정동영: 1999년 당시 국민회의 대변인이었습니다. 그는 협정의 국회비준을 촉구하면서 이를 적극 찬성하는 논평을 연일 냈습니다. 한일어업협정은 독도 영유권 문제와 무관한 것인데 한나라당이 독도 수호를 끼워 넣어 장외투쟁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1. 박정희대통령 때 한일협정 해역도                    2. 김대중 때 한일협정 해역도     

     

                                                                                                                                                 -동 아 쉼 터-

   박정희 바로알리기 국민모임
출처 : 박정희 바로 알리기 국민모임
글쓴이 : 동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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