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 엘렌 타우셔 국무부 차관.
미(美) 타우셔 차관
"핵(核)재처리 시설 허용은 남북(南北) 비핵화선언 위반"
버락 오바마(Obama) 미 행정부가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한국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 주장에 대해 반대하고 있음을 미 의회에 명확히 밝힌 것으로 30일 확인됐다.오바마 행정부에서 비확산 업무를 관장하는 국무부의 엘렌 타우셔(Tauscher·여)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은 6월 9일의 상원 인준 당시 공화당 간사인 리처드 루가(Lugar) 의원에게 제출한 85쪽 분량의 서면 답변서에서 이러한 입장을 밝혔다.
루가 의원과 타우셔 차관의 답변서에서 드러난,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다. 루가 의원은 "오바마 행정부는 특히 대만·한국과 관련한 원자력 협정에서 두 나라가 미국산 핵 물질을 재처리할 수 있도록 현재 핵협정의 어떠한 변화라도 고려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타우셔 차관은 미국이 1954년 제정된 원자력 에너지법에 따라 유럽연합·인도·일본에 승인(con sent)한 미국산 핵연료의 재처리를 한국과 대만에는 승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타우셔 차관은 "오바마 행정부는 (핵연료) 재처리를 이 국가들에 승인한 사례를 대만과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에 적용하는 것이 반드시 적절하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국이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도록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타우셔 차관은 또 "한국에 어떤 형태라도 핵연료 재처리가 허용되면 이는 '남북한이 핵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시설을 갖지 않는다'고 한 19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위반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동의하는 답변을 했다. 그는 "한국에 핵연료 재처리 시설이 존재한다면 이는 1992년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과는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타우셔의 답변은 북한이 2차 핵실험을 비롯해 계속해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과 대만에 대해서는 재처리를 허용할 수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특히 한국의 핵연료 재처리는 그것이 평화적인 이용이라고 할지라도 1992년 발효된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에 위배된다고 밝혀, '이중의 제어' 논리를 제시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핵 도발' 이후 한국에서 한나라당과 보수층을 중심으로 재처리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평화적 핵이용 권리' 주장이 제기 되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미국은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평화적'이라고 할지라도 한국의 핵 능력을 현 수준 이상으로 허용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또, 전 세계적으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한국 보수층의 주장을 일부라도 수용하게 되면 자칫 다른 국가에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인식은 오바마 행정부뿐 아니라 미 의회의 민주·공화당 모두 공유하고 있어, 앞으로 미국의 입장이 재고(再考)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워싱턴의 주미 한국 대사관측은 이미 청와대가 밝혔듯이 한국의 핵 재처리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밝히고, 이를 미국에 제기하지도 않는다는 방침이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한국이 만약 미국의 반대에도,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우라늄 농축을 추진하고 비핵화 공동 선언을 파기할 경우 엄청난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