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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와 정당이 나라와 민주주의의 목을 조른다

화이트보스 2009. 7. 2. 10:56

국회와 정당이 나라와 민주주의의 목을 조른다

 입력 : 2009.07.01 23:17

 여야 간 비정규직 관련법 개정안 협상이 그제 밤 끝내 결렬됐다. 비정규직에 관한 현행법이 1일부터 시행돼 기업들이 취업한 지 2년이 된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거나 해고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을 맞게 됐다. 당장 이달에만 수만 내지 수십만명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해고될지도 모른다. 여야가 상황의 급박함을 인정하고 현행법의 시행을 일정기간 유예하는 조치를 취해 급한 상황을 피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共感帶)가 있다. 한나라당은 3년, 민주당은 6개월, 자유선진당은 1년 반 유예를 주장하는 차이 정도다. 제대로 된 국회와 정당이라면 그렇게 유예 기간을 정해 놓고, 그 기간이 끝나기 전에 근본적 해결책을 찾는 데 힘을 모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국회와 정당은 그런 협상력을 상실했다. 협상하는 힘을 잃은 대신 협상 결렬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기 위해 온몸을 던지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 8명은 1일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비정규직 관련법 등 147건의 법률안을 기습 상정했다. 이들은 환경노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상임위를 열지 않아 여당 단독으로 법안들을 상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면 민주당측은 "날치기 수법"이라고 비난했다. 작년 5월 18대 국회가 출범한 이후 지겨울 만큼 되풀이돼 온 장면이 다시 벌어진 것이다.

여야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우리 사회에 대형 혼란을 가져온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국회에선 법학전문대학원 로스쿨 졸업생이 무슨 시험을 봐야 변호사 자격을 얻게 되는지를 규정한 법안을 처리하지 못해 수만명 신입생들이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입학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국민의 세금 부담과 관련된 각종 민생법안들도 매번 제대로 된 심의도 없이 국회 폐회(閉會) 전 아슬아슬하게 처리하는 게 관례처럼 돼 있다.

여야는 대신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반성 없이 되풀이해 왔다. 작년 12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에 한미 FTA 동의안을 상정하는 과정에서 해머와 전기톱, 소화기 등을 동원한 몸싸움을 벌였고, 그 후에도 툭하면 국회 농성과 난투극이 벌어졌다. 야당은 지금 6월 국회가 25일이나 허송한 끝에 열리기 무섭게 국회본청 3층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현재 우리 국회와 정당은 사실상 '기능 정지' 상태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선 각 정당이 공론(公論)의 장에서 지지층의 뜻을 수렴한 정책들을 내놓고 경쟁하면서 타협할 것은 타협해 합의 처리하고, 합의가 어려우면 다수결 원칙에 따라 표결 처리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이자 절차다. 여야의 힘의 차이는 그전 선거 결과에 따른 의석 수(數)에 따라 결정되지만, 다수당은 다수의 독선과 일방통행을 자제(自制)하고 소수 정파의 목소리를 보장해주며, 소수당은 최종적으론 국회의 의사 결정이 다수결에 의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현대 민주주의다. 사회 각 부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해관계의 충돌을 걸러내는 것도 바로 국회와 정당의 이런 기능을 통해서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정당과 국회는 실질적으로 이런 역할을 포기했다. 정당은 이익집단이나 길거리 투쟁 세력의 앞잡이처럼 행동하고 있다. 국회는 이런 외부 지침에 따르는 정당들이 충돌하는 활극 무대로 변질됐다. 여야 간 의사소통은 끊겼고 정치권은 이를 풀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결국 총체적 정치 불신을 불러오고 민주주의를 위기로 내몰게 됐다.

대한민국의 정당과 국회가 이렇게 된 데는 대선이 끝난 다음 날부터 5년 후 다음 대선을 준비하는 '상시(常時)선거전(permanent campaign)' 문화가 우리 정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에 대한 승복도 없고, 정치적 휴식기도 생략한 채 5년 내내 상대방에 대해 극한 공격을 퍼붓게 된다. 협상과 타협이 들어설 공간도 없다. 이런 정치 문화를 그대로 방치하면 나라 전체가 탈선(脫線)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여야 정치 지도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정치 대협약'이 필요한 상황이다. 누구보다 대통령이 각 정당 대표 및 지도자들과 마음을 터놓는 대화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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