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차학봉·산업부 차장대우
일본 도쿄만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아쿠아라인'이 오랜만에 차량들로 붐비고 있다. 도쿄 외곽의 교통난을 완화하기 위해 1997년에 완공됐지만, 우리 돈으로 4만원이 넘는 통행료 때문에 이용자가 많지 않았다. 최근 일본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요금자동징수장치 부착 차량에 한해 휴일 고속도로 통행료를 거리에 상관없이 무조건 1000엔으로 인하한 덕분에 차량이 늘어나고 있다.
일부 지방 고속도로도 통행료 바겐세일 덕분에 차량이 최고 40%가량 늘었다. 일본 정부가 통행료 바겐세일이라는 고육지책을 들고 나온 것은 통행료가 살인적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도쿄에서 오사카까지 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통행료가 1만1350엔이나 된다. 왕복 통행료가 우리 돈으로 20만원이 훨씬 넘는다.
일본은 지역균형발전과 경기부양을 명분으로 고속도로, 고속철도 등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짓는 데 들어간 550조원(41조엔)이 넘는 부채 때문에 통행료가 치솟았고 이게 다시 통행량을 줄이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건설업체와 유착한 정치인과 관료 등 이른바 토건족들의 엉터리 수요 예측을 근거로 바둑판처럼 깔아 놓은 고속도로에 '곰과 다람쥐'만 다닌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이다.
절전형 가전제품을 구입하면 에코포인트(상품구입권)를 주는 등 다양한 친환경 정책을 도입한 일본 정부가 오히려 자동차 사용을 늘리는 반(反)환경 정책을 도입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통행료 인하로 지방 자동차 여행객이 늘어나면 지역 상권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명분이 환경을 눌렀다.
통행료 바겐세일이 황당해 보이지만, 우리도 비웃을 처지는 아니다. 민자(民資)로 건설된 고속도로와 전철에 통행량이 부족, 정부가 보조금을 주고 있는 곳이 한두 곳 아니다. 인천공항철도는 이용객이 당초 예상의 6~7%에 불과, 정부가 민간기업에 보조금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이용자가 획기적으로 늘지 않으면 정부가 지급해야 할 전체 보조금이 10조가 훨씬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민자도로를 둘러싼 통행료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이달 중순 개통하는 춘천고속도로의 경우, 주민과 지방자치단체가 통행료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부산과 거제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의 경우, 건설사들은 통행료를 1만2000원 정도로 책정할 계획이지만 주민들이 "유령다리로 만들려고 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이들 도로 역시 통행량이 예상치를 밑돌 경우, 인천공항철도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
일본에서 예상보다 통행량이 적은 것은 과잉투자와 함께 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와 실버세대 증가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방 중소도시의 경우, 대도시보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 이미 오래전부터 인구가 감소했고 급증하고 있는 실버세대들은 자동차 이용 자체를 줄였다. 도로 건설이 결국 건설업체에만 도움이 됐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은 토목사업보다는 복지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한국도 2018년을 정점으로 인구 감소기로 접어들고 이미 인구가 감소하는 자치단체도 상당수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광역경제권 개발을 위해 5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30개 선도 프로젝트 중 24개가 도로, 철도, 공항 등 건설사업이다. 이들 사업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와 인구감소는 고려조차 하지 않은 계획이다. 이들 사업이 정치인들의 치적(治績) 만들기와 건설업체 호주머니 불리는 사업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인구변화와 수요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