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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도 모른채 학교 진학… 남한 말 어렵고 급우들과도 서먹"

화이트보스 2009. 7. 22. 11:44

알파벳도 모른채 학교 진학… 남한 말 어렵고 급우들과도 서먹"

입력 : 2009.07.22 03:02

탈북(脫北)청소년 고교취학률 낮아

"북한에서 인민학교(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고 중국에선 잡혀갈까 두려워 7년간 집에만 있었다. 나이가 있다 보니 한국에 와서 곧바로 고등학교에 들어왔는데 영어는 외운다 쳐도 수학이 너무 어렵고 용어도 북한과 다르다"(A양·23·고2) "알파벳도 모른 채 왔다. 북한에선 먹고살기 힘든데 돈을 벌어야지 무슨 공부를 하느냐는 분위기다. 역사 시간에 배우는 것도 다르다. 북에선 이성계 때문에 압록강·두만강 이북 지역을 중국에 잃었다고 배웠는데 남한에선 조선을 건국한 좋은 이미지로 가르쳤다"(B양·21·고3)

"북한에서도 영어 수업이 있지만 1주일에 2시간이다. 발음도 여기와는 좀 다르다"(C군·19·중3) "북에선 장사하고 고철 등을 줍느라고 학교 안 나오는 애들도 많다. 1년에 고철은 20㎏, 토끼가죽은 6매를 학교에 내야 한다"(D양·22·고 3)

20일 경기 안성의 한겨레 중고등학교에서 만난 탈북자 학생 5명(남 1명·여 4명)이 털어놓은 '남한식 중·고 교육의 어려움'이다. 이 학교는 탈북 청소년을 가르치는 국내 유일의 정규 학교이다.

탈북 청소년들에게 남한에서의 중·고교 공부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취학률은 낮고 중도 탈락률은 높다. 20일 탈북 청소년 대상 정규 학교인 한겨레 중고교에서 만난 한 남학생./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이들을 인터뷰한 건 국민권익위(위원장 양건)가 이날 정부 기관으로는 처음으로 내놓은 국내 정착 탈북자 종합 실태 조사 결과에서 "탈북 청소년들의 고교 이상 취학률은 크게 낮고, 학업 중도탈락률은 크게 높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21일 공개된 권익위 자료에 따르면 2008년 4월 현재 탈북 청소년의 중학교 취학률은 93.9%였지만 고교 취학률은 29.9%에 그쳤다. 같은 기간 남한 학생들의 평균 고교 취학률은 98%를 넘었다. 권익위는 또 2007년 현재 탈북 청소년의 중·고교 중도탈락률이 각각 12.9%와 28.1%로 조사됐다고 했다. 남한 학생의 중·고교 중도탈락률은 모두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권익위도 최근 면담조사를 통해 탈북 학생들의 고충을 들었다. "중국에서 다닌 중학교 학력이 인정되지 않아 17세에 중학교에 다시 들어갔다. 나이 차 등으로 일반 학교 대신 대안학교에 갔지만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다"(E군·19) "북한·중국에서 거의 학교에 다니지 못해 네 살 아래 남한 학생들과 함께 초등학교를 마쳤다. 내성적 성격과 약한 몸 때문에 중학교를 그만뒀다"(F군·22)는 얘기였다.

당장 교과서를 읽고 시험 문제를 풀어야 하는 학생들에겐 남북 간의 언어 차이도 심각한 문제다. "남한 말이 너무 어렵다"(A양) "처음에 선생님이 '키'를 가져오라고 했을 때 열쇠가 아니라 농기구 키(쭉정이 등을 제거하는 도구)를 한참 찾았다. 남한 말은 외래어와 한자어가 많아 외국어처럼 들린다"(B양)는 것이다.

탈북자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사시(斜視)도 이들의 학습 의욕을 꺾는 요인 중 하나다. "아르바이트 면접관이 내가 북한 말을 쓰니까 머리에서 발끝까지 훑어보더라." "남한 사람들에게 말 걸기가 부끄럽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남한 친구를 많이 사귀었는데 탈북자란 사실을 숨겼다. 탈북 사실을 말하면 무시하거나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권익위는 "학교를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은 결국 비행 청소년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특성화학교 추가 설립등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곽종문 한겨레 중고교장은 "탈북 학생들의 남한 적응을 도와주기 위해 학교 간 자매결연이나 홈스테이 등을 정부가 체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