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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한 방 맞고 '흔들리는' 힐러리 클린턴

화이트보스 2009. 7. 25. 09:00

북한에 한 방 맞고 '흔들리는' 힐러리 클린턴

노컷뉴스 | 입력 2009.07.25 01:33 | 수정 2009.07.25 08:15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강원

 




[워싱턴=CBS 박종률 특파원]

'잘 나가던'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17일 팔꿈치가 부러지면서부터 일이 꼬이고 있다.

클린턴 장관이 20일 가까이 깁스를 한 채 두문불출하는 동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美-러 정상회담을 통한 '리셋(reset)'외교에 나섰고, G8 정상회의 참석 등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활발한 행보를 이어갔다.

또 이 기간동안 이란의 반정부 시위 폭력진압은 더욱 강도를 높였고, 북한은 美 독립기념일을 겨냥해 7기의 미사일을 잇따라 발사하면서 국제적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팔꿈치 깁스를 하고 있던 클린턴 장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급기야 워싱턴 정가에서는 클린턴의 팔꿈치 부상은 사실상의 '외교적 타박상(diplomatic bruising)'이라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이른바 '얼굴마담', '뒷방마님' 론(論)이 그것이다.

백악관에 포진한 오바마 대통령의 측근들이 외교 사령탑인 클린턴을 배제하고 주요 정책들을 결정한다는 언론들의 평가가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클린턴이 오른쪽 팔꿈치 골절상을 입었을 때 그는 백악관을 향하던 중이었다.

동시에 북한과 이란 핵문제, 중동 정책 등을 다루는 면에서도 클린턴의 외교가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론까지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미 주요 인사에서도 자신이 일본 대사로 추천했던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오바마의 대선자금 담당자였던 존 루스에 밀리는 등 패배(?)를 당했던 클린턴이었다.

좌불안석(坐不安席)일 수 밖에 없었던 클린턴은 지난 15일 깁스를 풀고 미국의 외교 청사진을 제시하는 외교협회 연설을 갖는 것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했다.

이어 20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난 팔꿈치가 부러졌지, 발성기관이 다친 게 아니다(I broke my elbow, not my larynx)"며 자신의 목소리를 더욱 분명히 낼 것이라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그런 다음 북한을 지칭해 "관심을 바라는 어린 아이나 제멋대로 행동하는 철부지 10대들"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동원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16일 인도를 방문해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요청했지만 인도 정부로부터 냉대를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23일에는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입을 통해 '그 여자', '소학교 여학생', '장마당 할머니'라는 모욕적인 막말을 들어야만 했다.

실제로 '장마당에나 다닌다'는 표현은 쇼핑에 심취한 사람들을 경멸하는 공산주의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모욕적인 말이다.

더욱이 힐러리 클린턴을 수치스럽게 만든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말은 "국제사회의 기본적인 예의도 없다", "국무장관이라면 세계에 대한 지식을 갖는 것이 그나마 자기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집행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대목이다.

안팎의 거센 비판에 '흔들리고 있는' 클린턴의 처지를 여지없이 꼬집은 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공식 제기된 미국의 '포괄적 패키지'도 북한에 거부당했다.

물론 북한과 미국의 '막말 공방'은 클린턴의 '철부지 10대' 발언으로부터 비롯됐다. 하지만 미국의 일부 언론들은 클린턴 개인이 아닌 미국이 북한으로부터 한 방을 얻어맞았다는 자괴감과 함께 북한의 외교행태를 간과한 '클린턴의 실수'라고 지적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24일(현지시간) "클린턴의 말에 기본적인 예의가 결여됐다는 북한의 지적은 맞다"는 오하이오 주립대 미첼 러너(Mitchell Lerner) 교수의 말을 소개했다.

러너 교수는 "북한 외교가 협상을 중시하기 보다는 내부와 동맹국들에게 '인상'을 심어주는 데 집중한다는 점을 미국이 오랜 시간 간과했었다"면서 "북한은 정치, 경제 체제가 불안정해질수록 적대국에 호전적인 말을 던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핵협상 당시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Robert Gallucci) 맥아더재단 회장도 "북미간의 유치한 말싸움 때문에 정작 중요한 핵무기 문제가 잊혀지고 있다"고 북미간 설전의 도화선을 제공한 클린턴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클린턴 장관은 지난 2월 한국 등 아시아 순방 때에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가능성을 염두에 둔 북한의 불투명한 후계구도를 이례적으로 언급해 논란을 야기한 적이 있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클린턴의 발언은 외교관들이 북한의 후계구도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비공식적인 금기(禁忌)를 깬 것"이라면서 "초보자의 실수(a beginner's error)인지, 신선한 솔직함(refreshing candor)인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깁스를 풀고 제 목소리를 내려던 클린턴 장관에게 결국 이번 인도 방문과 ARF 참석은 자신의 입지만을 축소시키고 만 것은 아닌지...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클린턴 장관의 고심이 더 깊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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