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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박멸 150일 전투

화이트보스 2009. 7. 27. 10:50

시장경제 박멸 150일 전투

입력 : 2009.07.26 21:56 / 수정 : 2009.07.27

최근 북중(北中) 국경의 압록강과 두만강가에는 빨래하는 여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을 다녀온 재중동포들도 북한의 어느 도시에 가봐도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곳곳에 보안원(경찰)들이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만 보이면 무조건 잡아서 농장으로 보낸다고 한다. 어디서 먹을 것을 도와줄 국가는 없으니 죽으나 사나 이 땅(북한)에서 식량을 확보하지 않으면 체제가 와해될 수 있어 걸어 다닐 수 있는 사람은 150일 전투 명분으로 모두 농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가두여성(가정주부)까지도 150일 전투에 동원된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북한은 각종 전투 명목으로 주민들을 생산현장에 내몰아왔다. 특히 1974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로 임명되고 나서 벌인 '70일 전투'는 제5차 당 대회에서 김일성이 제시한 6개년 계획(1971~1976)이 당초 예상보다 부진하자 김정일이 해결사로 자청하면서 벌어졌다. 이 전투로 북한은 6개년 계획이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완수됐다고 선전해왔다. 당시만 해도 북한은 경제 각 부문(철강·전력·기계가공·시멘트·수산물·곡물)의 구체적 생산 목표치를 설정해놓고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발전시켜나가던 시기였다.

일정부분 성과도 있어 중공업과 농업부문에서 생산량이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전투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고 사회주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성과가 있었다. 김일성 사후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붕괴되고 예전의 '전투' 형식으로 벌이던 경제 발전근거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경제 발전과 관련된 전투 명분이 없어진 북한이 올해 5월부터 느닷없이 150일 전투를 시작하고 나선 것은 체제 생존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예전의 전투는 계획경제를 발전시키자는 목적이 있었지만 이번 전투의 목적은 개인만 살찌우는 시장경제를 박멸하자는 데 있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인한 국제적 압력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국내의 모든 원천이 권력집단 유지를 위해 총동원돼야 하는데 이미 국가로부터 분리돼 자력갱생하는 다수의 주민은 자신들의 노력과 자산이 권력집단에 흡수되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고 있다. 결국 외부로부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예처럼 국가에 복종해야 하는 인민들이 시장경제로 분리된 것을 극단적으로 막는 터닝 포인트로 150일 전투가 벌어진 셈이다.

지난 10년간 북한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일반 주민들이 배급제에서 벗어나 시장경제에 의존해 살아가게 된 것이다. 집단농장에 종사하는 농민들조차도 개인 텃밭에만 매달려 집단농장의 식량생산은 해마다 떨어져 군량미도 제대로 걷히지 못하고 있다. 올 초 황해도에서는 긴 쇠 창을 든 군인들이 땅에 묻어놓은 식량을 찾기 위해 땅을 쑤시고 다니는 해괴한 장면들이 목격됐다. 군량미로 빼앗기면 남는 것이 없는 농민들이 죽기 살기로 쌀을 훔쳐 땅에 묻어놓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군대와 권력집단만 배급제를 적용하면서 해외원조로 그것을 지탱해왔다. 지난 10년간 한국정부와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북한 권력집단의 배급은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최근 들어 군대를 비롯한 권력집단의 배급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핵심계층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와는 반대로 인민들은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시장을 통해 생존한 강인한 생명력으로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국제적인 경제제재로 인한 궁핍한 생활을 견뎌내고 있다.

결국 150일 전투는 독재권력과 인민 대중이 생존을 놓고 벌이는 사투(死鬪)가 됐다. 무리한 반(反)인민적 정책으로 김정일 정권은 모든 것이 다 소진돼 스스로 멸망하는 초기단계에 진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