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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이 왜 러시아에서 밭을 갈까

화이트보스 2009. 7. 28. 14:09

현대중공업이 왜 러시아에서 밭을 갈까

입력 : 2009.07.28 03:47

"될성부른 신(新)사업에 씨뿌리기" 한진해운은 돼지분뇨 재처리
LS전선은 하이패스 시장에… 웨딩·교육업 진출 대기업도 과거 '마구잡이식 확장'은 곤란
'신(新)사업 진출하는 기업들'

케이블 제조업체 LS전선은 22일 하이패스 단말기 신제품을 내놓고 국내 하이패스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이 제품은 소비자가 아닌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B2B(기업이 기업을 대상으로 각종 서비스나 물품을 판매하는 방식) 전문 기업인 LS전선이 처음으로 출시한 소비재. 박의돈 LS전선 통신사업부장은 "하이패스 단말기에 이어 지능형 교통 시스템(도로 상황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운전자에게 교통 정보를 제공하는 것) 구축 사업에도 뛰어들 예정"이라며 "현재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국내 지능형 교통망 시장은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돈이 되는 곳'을 찾아 새로운 영역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해운회사가 바이오 에너지 사업을 시작하고, 조선회사가 영농업에 뛰어드는 식이다. 1990년대 '문어발식' 확장의 후유증을 체험했던 대기업들이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밀접한 범위 내에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해오던 것과 다른 움직임이다. 이 같은 흐름은 주력 사업의 성장이 한계에 부딪힐 것을 우려해 새로운 분야에서 성장 동력을 찾는 기업, 사업 구조가 경기에 민감한 업종에 치우친 기업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LS전선이 지난 22일 내놓은 하이패스 단말기제품./LS전선 제공
조선소가 농장 운영… 해운회사가 바이오 에너지 사업

한진해운은 8일 전북 부안군에 돼지 분뇨 재처리 시설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돼지 8700마리가 사육되고 있는 인근 농장에서 하루 발생하는 분뇨 50t을 공급받아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를 열에너지로 활용, 음식 폐기물을 말려 비료로 만든다. 분뇨에 섞여 있는 수분은 정화해 축사의 세척수 등으로 쓸 수 있다. 회사 관계자는 "친환경 사업에 주목하고 있다"며 "돼지 분뇨 재처리 사업을 시작으로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육성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진해운이 8일 전북 부안에 문을 연 돼지 분뇨 재처리 시설. 한진해운은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한진해운 제공
현대중공업은 4월 러시아 연해주에 있는 1만㏊ 규모의 농장을 인수했다. 여의도 넓이의 33배에 이른다. 현대중공업은 2012년까지 4만㏊의 농지를 추가로 확보해 연간 6만t의 옥수수와 콩을 생산, 판매할 예정이다. 양봉진 전무는 "농업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대규모 영농기업을 일군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사업을 추진했다"며 "현대중공업이 녹색 사업의 영역을 확대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진출한 상태다.

현대중공업이 최근 인수한 러시아 연해주 농장에서 현지 근로자가 대형 농기계를 이용해 씨를 뿌리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이곳에서 옥수수와 콩을 생산할 예정이다. 회사측은 “녹색 사업 영역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현대중공업 제공
'문어발식 확장은 피해야' 경고도

대기업들이 새롭게 진출하는 분야는 IT나 녹색 사업처럼 '블루오션형' 사업에 그치지 않는다. 대기업의 마케팅 파워를 살려 웨딩·교육 등 이미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도 적극 진출하고 있다.

LG데이콤은 웨딩 사업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6월 서울에서 100여개 웨딩 전문업체들을 참여시킨 결혼박람회를 연 데 이어 이달에도 대구·수원·광주 등 지역에서 박람회를 진행했다. LG데이콤은 전문 웨딩플래너들이 고객에게 드레스·촬영·혼수·신혼여행 등 결혼 준비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센터를 서울·부산 등 전국 7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차별화되고 신뢰할 수 있는 서비스를 앞세워 웨딩 사업 부문에서 내년 2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야쿠르트는 19일 268억원에 영어교육 전문업체 능률교육을 인수하고 교육 사업에 뛰어들었다. 야쿠르트 관계자는 "능률교육을 영어전문에서 통합 교육 브랜드로 키울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수기로 유명한 청호나이스는 16일 화장품 브랜드 '나이스 휘'를 출시했다. 중저가 브랜드와 고가 제품의 중간 소비자층을 타깃으로 삼아 사업 첫해인 올해 월 10억원 매출은 가능하다는 게 회사측 전망이다. 이처럼 최근 신규 영역에 진출하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수조원대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을 한번에 쏟아붓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점이다. 김종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기업들이 경기 회복 전 새로운 기회를 선점하고 싶지만 어떤 사업이 좋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잠재력이 높은 사업을 골라 씨앗을 뿌린다는 심정으로 크게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가능성을 살펴보겠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새로운 사업 진출이 과거 마구잡이식 확장의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자회사 대우조선해양건설의 경우 지난 2월 대우조선해양상조를 설립하고 장례 서비스 사업 진출을 결정했다. 그러자 건설회사가 장례 서비스업을 하는 게 '생뚱맞다'는 지적이 많이 나왔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안팎으로 부정적인 의견이 많이 제기돼 사업 지속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