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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의 ‘여기자 구하기’…속전속결 ‘1박2일’

화이트보스 2009. 8. 5. 11:16

빌 클린턴의 ‘여기자 구하기’…속전속결 ‘1박2일’

헤럴드경제 | 입력 2009.08.05 10:02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여기자 구출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마치 '007작전'을 방불케 하듯 평양 도착 불과 한 시간 전에야 언론에 방북 사실이 알려질 정도로 보안은 철저했고, 채 24시간도 안되는 1박2일의 짧은 일정 안에 임무를 마쳤다. 미국 정부의 특사 자격이냐, 오바마 대통령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했느냐 등에 대해선 논란이 남았지만 전직 대통령이자 현직 미 국무부 장관의 남편으로서 그가 경색됐던 북ㆍ미관계에 큰 변화의 물꼬를 튼 것만은 분명하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북핵 6자회담의 조기 재개 가능성 등 한반도 정세에 급변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007작전 방불케 한 방북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이번 방북은 전광석화와 같이 순식간에 이뤄졌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지난달 20일 여기자 석방 문제에 대해 "매우 희망적"이라고 밝히긴 했지만, 그의 남편 클린턴이 이렇게 빠른 시점에 방북하리란 예상은 한국 등 주변국 외교 당국조차 예상치 못했다. 특사 후보로도 억류 여기자가 소속된 커런트TV의 설립자인 앨 고어 전 부통령이나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가 더욱 유력한 것으로 전망돼 왔다.

클린턴의 방북은 007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극비리에 이뤄졌지만 북한은 클린턴을 맞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극진한 예우는 4일 오전 공항에서부터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과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영접하면서 예고됐다. 양 부위원장은 우리의 국회 부의장격으로 부총리급이며 세련된 외교매너로도 유명하다. 특히 국방위원회백화원영빈관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을 위한 만찬을 주최한 것은 북한이 그의 방북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만찬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참석했다.

▶사뭇 '포커 페이스' 유지

=클린턴은 방북 기간 내내 좀처럼 웃지 않고 '포커 페이스'를 유지했다. 클린턴이 4일 오전 11시경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을 때 마중 나온 양형섭 부위원장과 김계관 부상은 웃었지만 클린턴은 웃지 않았다. 이날 오후 김정일 위원장과 대면했을 때, 사진촬영을 할 때도 그는 미소를 내보이지 않았다. 얼굴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던 김 위원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클린턴의 포커 페이스는 이번 방북의 가장 큰 목적이 5개월 가까이 타국에 억류됐던 여기자를 석방시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갖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북핵실험 이후 북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등 국제사회의 강경 제재 움직임을 이끌었던 미국이 자국의 현안 문제 해결을 위해 태도를 돌변한 데 대한 비난도 의식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북한 2차핵실험 이후 강경한 내용의 유엔 제재안이 주도한 미국이 자국민의 석방을 위해 유엔 결의를 흐트리는 일을 하고 있다"며 "그런 측면에서 미국은 우방국들에게 변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北 체류시간 불과 20시간 남짓

=클린턴은 4일 오전 11시쯤 방북해 5일 오전 6시경 북한을 떠나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턴이 북한이 체류한 시간은 19~20시간 남짓에 불과하다. 지난 1994년 방북했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3일을 묵었던 것과는 큰 차이다. 클린턴은 1박2일의 짧은 일정 동안 여기자 석방이란 과제를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귀환하게 됐다.
속전속결로 진행된 클린턴의 '여기자 구출 작전'은 북ㆍ미간 뉴욕채널을 통해 이미 사전 조율 작업이 사실상 끝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잘 짜여진 각본처럼 평양 도착에서부터 김정일 위원장 면담, 여기자 특별사면, 출발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안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하지만 이번 클린턴의 방북은 짧지만 굵직했던 것으로 보인다. 향후 6자회담 재개에 속도가 붙는 것은 물론이고 북미 직접대화가 시작되면서 남북관계 등 한반도 정세 전반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재원/jwchoi@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