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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노무현 이후'의 야당

화이트보스 2009. 8. 17. 09:56

'김대중-노무현 이후'의 야당

  • 김대중·顧問

입력 : 2009.08.16 22:08 / 수정 : 2009.08.17 01:57

"현재의 리더십, 현재의 투쟁방식, 현재의 소영웅주의로는
집권당의 발목을 잡을 수는 있어도 국민의 포괄적 지지를 얻어
재집권하기에는 분명 역부족일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집권했던 10년의 기간을 흔히 '좌파 10년'이라고 부른다. 이 '좌파 10년'의 후반을 이끌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별세했고, 그 10년의 문을 연 김대중 전 대통령마저도 중병의 위기에 빠졌다.

한 마디로 좌파 10년의 두 기둥이 없어지는 셈이다. 그 리더가 사라진다고 해서 좌파의 존재 자체마저 위협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대변했거나 이끌었던 이념과 세력이 중요한 변환의 기회를 맞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시대적으로 보더라도 이제 지난 10년의 좌파적 접근방법으로는 더 이상 다수 국민에게 어필하기 어렵고 집권하기는 더더욱 현실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김대중, 노무현의 부재(不在)는 적어도 좌파의 진로에 새로운 접근을 변환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곧 민주당의 문제다. 두 사람이 이끌었던 정치세력은 이름은 어떠했건, 어떤 이합집산을 했건 10년의 집권을 거쳐 오늘날 제2당인 민주당으로 맥을 잇고 있다. 이 민주당이 지금 크게 방황하고 있다. 게다가 비록 민주당의 명실상부한 주주(株主)로서 군림하지는 않았고, 또 매일매일의 현실정치에서 지도력을 발휘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당을 만들고 이끌었던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무게감과 존재감을 통해 당(�{)의 후광을 이뤘던 김, 노 두 사람의 떠남은 야당의 지도력을 한층 빈곤하게 만들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의 부재는 한편으로는 민주당의 취약점이 될 수 있다. 한 사람은 호남지역에서 또 한 사람은 경남지역에서 지역적 대표성을 지녔던 만큼 영향력이 컸었고, 그들로 인한 정치적 응집력도 무시할 수 없었던 만큼 존재감도 상당했기 때문에 '김대중, 노무현 이후'의 민주당은 어쩌면 다양한 정치적 분파들로 인해 미로(迷路)처럼 얽혀 돌아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특히 노무현씨를 추종하는 이른바 친노세력은 이런 민주당의 취약점을 기회로 삼아 별도의 새로운 정치세력을 조직할 기미도 보인다. 내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계기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알려졌던 친노세력은 'DJ 이후' 민주당 자체의 변환을 시도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남을 기반으로 한 오늘의 민주당 중심부가 경남을 주세력권으로 하는 친노 세력에 쉽게 자리를 내줄 것으로는 보이지 않아 민주당은 이래저래 새로운 구심점을 찾아 상당 기간 진통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민주당이 이를 발전적으로 활용할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민주당 내 개혁적 발상들이 그동안 출구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은 민주당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김대중, 노무현 두 정치적 대주주들의 장악력 또는 '그림자'들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대북문제에 있어서 김, 노 시대를 총괄하는 노선은 어느 면에서 민주당의 숙명적 고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은 이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데 주저함이 없이 가슴을 열 필요가 있다. 새로운 민주당이 어떤 정체성을 표방하고, 어떤 이념적 노선을 모색하느냐는 문제는 오로지 민주당이 고민해야 할 과제다. 또 어떤 리더십을 찾아 당의 구심점을 재정비하느냐도 민주당의 몫이다. 다만 현재의 리더십, 현재의 투쟁방식, 현재의 소영웅주의로는 집권당을 훼방하고 그들의 발목을 잡고 괴롭혀 일부 지지자들의 박수를 받을 수는 있어도 국민의 포괄적 지지를 얻어 선거를 통해 재집권하고 이 나라를 발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대안 세력으로 국민에 어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민주당 내 일부에서는 민주당 지도부가 386세력(아직도 그런 콘셉트가 남아 있었는가 싶지만)과 그 아류에 발목잡혀 있는 한 그들의 투쟁방식과 자세는 바뀌지 않을 것이며 그런 상황에서는 당의 발전적 쇄신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체념하는 소리도 들린다.

김대중, 노무현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보수-우파의 장기집권에 따른 반발과 새로운 정치 환경에 대한 욕구 그리고 빈부 격차 해소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제 그런 기대감 못지않게 좌파에 대한 실망과 불확실성, 투쟁 일변도 정치노선에 대한 환멸도 알게 됐다. 남북 대치 상황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정권 교체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의 보수, 중도 사이에 가능하지 좌-우의 대립적 구도를 극단적으로 건너뛰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일본의 자민당, 민주당의 구도처럼 말이다.

한 나라의 정치가 안정적이고 건강한가의 여부는 그 나라의 야당을 보면 안다. 야당이 건강해야 그 나라의 정치가 건강하다. 그리고 야당이 건강해야 국민은 안심하고 다음 정부를 맡길 수 있다. 김, 노 이후의 한국의 야당은 '좌파 10년'에 대한 아무런 부담과 속박 없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할 '해방'을 맞고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