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수사관에 잡힐줄은…

디지털수사관에 잡힐줄은…

■ 한국 과학수사의 새중심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

마약-유전자 분석 등
올 1만3000여건 감식
첨단기법으로 사건 해결

프로농구에서 외국인 선수로 뛰고 있던 테런스 섀넌(서울 SK)과 캘빈 워너(안양 KT&G)가 2월 퇴출당했다. 서울 SK에서 뛰었던 디앤젤로 콜린스와 함께 한 달 전 서울의 한 호텔 객실에 모여 함께 대마초를 피운 사실이 적발돼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기 때문. 이들은 수사과정에서 실시한 소변 감정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모발을 이용한 감정에서 흡연 사실이 드러났다. 혐의를 입증하는 데에는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DFC)의 과학수사가 결정적이었다. DFC는 미국, 독일에 이어 세계 3번째로 모발을 이용한 대마초 흡연 감정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 강호순 사건 해결에도 기여

범죄 수법이 날로 지능화하고 있지만, 이를 뒤쫓는 과학수사 기술 역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각종 증거물과 영상 등을 정밀 분석해 기존 수사기법으로 밝혀내기 어려웠던 범죄들이 새로운 수사기법으로 밝혀지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대검찰청에 문을 연 DFC에 마약, 유전자, 위조문서, 영상 등을 정밀 분석하는 장비를 갖추고 1만여 건의 증거물 감정과 감식을 통해 숨겨진 진실을 밝혀냈다.

23일 대검에 따르면 올해 1∼6월 DFC의 감식 실적(1만3462건)은 지난해 대검 과학수사기획관실의 한 해 감식 실적(2만1414건)의 63%에 이르고, 2004년 감식 실적(1만1265건)을 이미 뛰어넘었다. 한 번의 실험으로 13가지 마약의 투약 여부를 동시에 알아내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고, 심리학 및 언어학 박사 등을 연구원으로 채용해 심리·진술·행동 분석 등을 실시하고 있다.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분석 결과를 재검증하거나 보완해 증거물 오판독으로 인한 수사 오류를 바로잡는 역할도 하고 있다.

부녀자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이나 올해 초 일본 야쿠자 조직원의 마약 유통 사건 수사에도 DFC가 큰 도움을 줬다. 강호순의 차량에서 불에 탄 다이어리가 발견되자 DFC는 약품 처리와 광학 반응을 이용한 판독기술 등을 이용해 이를 복원했다. 그 결과 강호순이 직접 쓴 일기에 피해자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추가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3월 부산에서 1kg의 메스암페타민(히로뽕) 밀매 현장을 적발하고 일본 야쿠자 조직원 등을 검거한 사건은 DFC가 보유한 마약지문(指紋)분석기술이 이끌어낸 개가였다. DFC는 이 마약이 기존에 유통된 것보다 수면제 함량이 높고 제조기법도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검찰은 이를 근거로 일본 폭력조직이 연관돼 있음을 파악했다.

DFC는 유전자 감식에서도 큰 성과를 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 염동신)는 간통 의심을 받던 의사 A 씨가 성관계를 부인했지만 욕실에서 발견한 상대방 여성의 생리대 혈액에서 A 씨의 정액 흔적을 검출한 자료를 제시해 A 씨를 21일 불구속 기소했다.

○ 심리분석 등 첨단 수사기법 연구

DFC는 심리분석, 음성감정, 영상분석, 디지털기기 분석 등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수사기법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특히 피해자를 최면 상태로 유도해 피해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최면수사나 피해사건을 설명하는 용어와 태도로 진술의 신빙성을 파악하는 심리분석 등을 실험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합의하에 사실혼 관계를 맺고 있던 며느리 박모 씨가 2007년 ‘시아버지 이모 씨가 자신을 성추행했다’며 고소한 사건에서 DFC는 심리학 박사 등을 동원한 심리분석으로 이 씨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줬다. 두 사람의 진술을 녹화해 전문가들이 자세히 분석하면서 박 씨가 감정이입 없이 피해 사실을 객관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 구속됐던 이 씨는 곧바로 풀려났고 박 씨는 무고죄로 기소됐다. 올해 초 자전거 절도사건에서 피의자의 알리바이를 깬 것도 DFC였다. 피의자가 범행 시간 알리바이를 주장하며 당시의 컴퓨터 문서작성 기록을 제출했지만 DFC는 문서가 작성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정밀 분석해 작성시간을 조작한 사실을 밝혀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