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단군은 동방에서 맨처음 천명을 받은 임금

화이트보스 2009. 9. 13. 11:47

단군은 동방에서 맨처음 천명을 받은 임금
단군은 신화인물 아닌 역사적 실존인물 참모습 전달돼야
 
강동민 이사장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가운데는 단군(檀君)에 관한 기록이 의외로 많다. 위로 태조로부터 아래로 고종․순종조에 이르기까지 각 왕조마다 거의 대부분 관련기록이 있다. 아래에서 '조선왕조실록'의 단군 기사를 몇 가지 간추려 조선조에서 우리 선조들의 단군에 대한 인식이 어떤 것이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나라 세운 건국의 시조
 
“단군은 실로 우리 동방의 시조이다.(檀君實吾東方始祖)” '太宗實錄 권23, 12년 임진 6월'
“단군은 조선의 시조이다.(檀君朝鮮之始祖也)” '세종실록 권75, 18년 병진 12월'

이것은 단군을 동방 조선민족의 시조로 인식하였음을 반영하는 기록이다.

“조선의 단군은 동방에서 맨 처음 천명을 받은 임금이다.(朝鮮檀君 東方始受命之主)” '태조실록 권1, 원년 임신 8월)'

“전조선의 왕은 단군이고 후조선의 왕은 기자이다.(前朝鮮王檀君 後朝鮮王箕子)” '세조실록 권3, 2년 병자 3월'

“우리 동방에서 나라를 세운 것은 단군으로부터 시작되었다.(我東建邦 刱自檀君)” '정조실록 권5, 16년 임자 8월'

이 기록에는 단군을 동방에 최초로 나라를 세운 건국의 시조로 인식한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

▲ 강동민  이사장  ©브레이크뉴스
“단군은 당요와 함께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스스로 조선이라 하였다(단군與唐堯幷立而自號朝鮮者也)” '세종실록 권29, 7년 을미 9월'

“우리 동방의 단군조선은 당요에서 시작되었다.(吾東方檀君之朝鮮 始於唐堯)” '세종실록 권85, 21년 기미 6월'

이 기록은 단군조선의 건국연대를 중국의 당요시대와 같은 시기로 인식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동방에서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은 모두 1천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吾東方檀君箕子 俱歷年一千)” '태종실록 권10, 5년 을유 10월'

“동방에 나라를 세운지가 단군 기자로부터 이하로 4․5천년이 되었다.(東土建國 自檀箕以下 四五千年)” '효종실록 권12, 5년 갑오 6월'

여기에는 단군조선의 역년을 1천여년으로 인식하여 단군으로부터 시작된 우리 역사를 반만년의 역사로 보았던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

“단군은 바로 우리 동방에서 맨 먼저 출현한 성인이다. 역사에는 ‘머리를 땋고 머리를 장식하는 제도와 군신․상하의 직분과 음식․거처의 예의가 모두 단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렇다면 단군은 동방에 실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혜택을 남겨주신 분이다. (檀君卽我東首出之聖 史稱編髮盖首之制 君臣上下之分 飮食居處之禮 皆自檀君創始 則檀君之於東 實有沒世不忘之澤)” '정조실록 권22, 10년 병오 8월'

“옛날 동방에는 처음에 군장이 없었는데 단군이 맨 먼저 출현하여 예의와 겸양의 풍속이 형성되게 되었다.(粵昔東方 初無君長 檀君首出 禮讓之風成)” '고종실록 권34, 건양 원년 10월'
이 기사는 단군을 동방문화의 씨앗을 뿌린 문화의 시조라고 여긴 내용을 담고 있다.
 
단군조선은 최초 고대국가
 
이상에서 우리는 조선조에서 단군을 민족의 시조, 건국의 국조로 받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이 땅에 문물제도와 예의도덕을 최초로 실현한 문화와 문명의 시조로 여겼으며 단군조선을 중국의 당요시대에 건국하여 1천여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 최초의 고대국가로 인식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가운데는 또 고려 때 구월산에 삼성사를 짓고 환인․환웅․단군 세 분을 제사지냈던 일과 조선조에서 구월산 삼성사 이외에 평양에 단군사당을 세우고 국가적으로 제사를 올렸던 일, 일제에 의해 단군조선이 말살되기 전인 20세기 초까지 이러한 행사가 계속되었다는 사실 등을 전하고 있다.

특히 '세종실록․지리지'에 실린 '단군고기'는 단군의 출생, 결혼과 가정, 건국과 역년, 통치영역 등을 상세히 다룸으로써 단군이 신화적인물이 아닌 실존인물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어디에서도 단군을 실존인물이 아닌 신화적 인물로 묘사한 대목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조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기술한 한국의 대표적인 정사 중의 하나이다. 한국사 연구의 가장 기본적인 사료로 평가되는 '조선왕조실록', 즉 야사가 아닌 당당한 우리의 정사에 단군의 존재와 위상이 이처럼 민족의 시조, 첫 고대국가의 창건자, 동방에 최초로 문화의 씨앗을 뿌린 문화의 아버지로 기재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 상고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시사한다고 하겠다.

우리는 과거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 현재에 대한 인식과 미래에 대한 설계를 슬기롭게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역사 연구는 단순히 지나간 과거사를 되짚어보는 작업에 그치지 않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새로운 미래 간에 대화의 통로를 트는 가교 역할을 한다. 우리가 역사를 연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어느 민족사를 불문하고 영광과 시련, 명과 암이 교차되어 있기 마련인데 우리 민족이 살아온 지난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영광보다는 시련이, 明보다는 暗이 더 짙게 부각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현재 우리의 삶을 있게 한 민족과 문화의 뿌리인 단군에 대한 기록은 그 왜곡의 정도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 역사의 출발점이요 민족문화의 뿌리인 단군에 대한 기록이 이처럼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日에 의한 식민사관에서 기인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해 역사가 유구하고 문화가 우수하다. 저들 일본보다 더 높은 차원의 역사와 문화를 소유하고 있는 조선인을 통치하기 위해서 일본은 먼저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왜곡 말살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따라서 일본은 20세기 초 국권침탈과 함께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를 두고 단군조선을 말살하여 한국사의 상한을 끌어내린 '조선사'를 왜곡편찬하기에 이른 것이며 여기서 고구려․백제․신라․발해․고려․조선조를 거치며 4천여년 동안 민족의 구심점이자 원동력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던 개국시조 단군의 정신과 역사는 파괴․단절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사학계는 광복이후 곧바로 일본의 식민잔해를 걷어내고 우리 역사의 뿌리를 바로 세우는 일에 착수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광복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정 교과서에 단군을 실존인물이 아닌 신화적인 인물로 묘사함으로써 일본의 식민사관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자신을 황제의 자손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일본인들은 자신을 신무천황의 후예라고 떳떳하게 밝히는데 반하여 우리 한국인들 가운데는 자신을 단군의 자손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는 이가 적지 않은데 이는 바로 이러한 식민사관에 젖은 뿌리 없는 역사교육의 영향을 받은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겠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일제에 의해 말살된 단군조선을 복원하고 왜곡기술 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시도와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재야에 있는 사학자들이 폭넓은 저술활동을 통해서 국사 광복을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다만 그들의 국사를 바로 찾기 위한 저술활동은 대체로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민족의 정사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지기 보다는 '환단고기'․'단기고사'․'규원사화'와 같은 재야사서에 주로 의존함으로써 학계의 공인을 얻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또 그 논리가 사회적으로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데도 한계가 없지 않았다.

다른 사서와 달리 '조선왕조실록'은 그 규모가 워낙 방대하여 일반적으로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 중에 있는 단군사료를 모두 발췌하여 한데 묶어줌으로써 단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손쉽게 그 자료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태평양시대와 민족적 긍지
 
이제 우리 학계가 재야사학과 강단사학이라는 편협한 2분법적 논리를 벗어나 서로 머리를 맞대고 조선왕조 500년의 정사 자료를 통해서 단군 연구를 본격화한다면 앞으로 한국의 단군 연구는 분명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의미와 가치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일제가 말살한 단군조선의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게 됨으로써 신화가 아닌 역사적인 실존인물로서의 단군의 참모습이 생생하게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전달되게 될 것이다.
둘째, 우리 삶의 근원, 즉 민족과 문화의 뿌리가 단군이라는 민족동질성을 재확인하게 됨으로써 남북의 분단현실을 종식시키고 역사적 사명인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우리 한민족은 단군이 세운 고조선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전통을 계승․발전시킨 위대한 민족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됨으로써 21세기 태평양시대를 민족적 긍지와 자신감을 갖고 당당한 주역으로서 살아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minjock1944@hanafos.com
 
*필자/한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