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코웨이의 대표 상품인 정수기·공기청정기·비데·軟水器(연수기) 같은 환경家電(가전)제품들이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 불과 10년 안쪽이었다. 중산층 가정 가운데도 아직 이런 제품들을 갖추지 못한 집들이 적지 않다 (고백하자면 필자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중국이 아무리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고, 이미 한국 부자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부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해도 그런 제품들이 중국에서 먹혀들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 생각은 웅진코웨이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중국 베이징 자오양(朝陽)구에 있는 한 오피스 건물을 접하는 순간 반쯤 사라졌다. 현대적 감각을 살려 지은 건물은 외양부터 서울시내의 성냥갑 같은 건물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건물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깔끔하고 패기에 넘쳐 보이는 중국 젊은이들이 깔끔한 복도를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면 웅진코웨이의 제품들이 먹혀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웅진코웨이의 현지법인장(상무) 曺晶鉉(조정현) 董事長(동사장)은 올해 나이 39세. 먼저 궁금했던 질문부터 던졌다.
― 현재 중국의 소득수준에 비추어 볼 때, 정수기나 공기청정기 등 웅진코웨이의 환경가전제품들이 잘 팔릴 것 같지는 않은데요.
조 사장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현재 우리 회사의 주력제품은 환경가전제품이 아니라 화장품입니다. 매출 가운데 화장품 대 환경가전제품의 비율은 70 대 30 정도입니다. 우리 회사(중국법인)에서 환경가전을 본격적으로 취급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하반기부터였습니다.”
중국 웅진은 화장품 회사?
웅진화장품 판매원들과 조정현 동사장. |
알고 보니 코리아나화장품이 웅진그룹 계열사였다. 外換(외환)위기 후인 1998년 코리아나화장품을 매각하면서 국내에서는 화장품 시장에서 철수했지만, 중국에서는 Ruhen, Terreau, Heberi, Nouris, Cellart 등 5개 브랜드 150여 가지의 화장품을 생산, 판매해 왔다. 상품은 33위안짜리 저가품에서부터 450위안짜리 프리미엄급 제품까지 다양하다.
그는 “중국인들의 요구에 맞는 화장품을 선양(瀋陽)에서 생산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인들에게 물어보면 ‘나이 들어서도 피부를 젊게 유지하기 위해 화장을 한다’는 응답이 많아요. 그런 요구에 맞는 화장품 원료들을 발굴해 제품을 개발, 생산하고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안전성 테스트까지 마친 후 상품을 내놓습니다.”
조정현 사장은 1996년 웅진그룹에 입사, 1999년 웅진코웨이로 옮겼다. 웅진코웨이 제품을 가정에 설치 관리해 주는 코디사업부장으로 일하다가 2003년 34세의 나이로 웅진코웨이 중국법인장으로 부임했다. 역대 법인장 가운데 가장 어린 나이였다.
그는 부임 당시의 상황에 대해 “물건이 잘 안 팔리니까 원가가 높고, 직원들 처우는 미흡하고, 그러다 보니 직원들의 충성도도 낮고, 연구개발투자는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부임하자 “지금은 月(월) 매출액이 30만 위안에 불과하지만, 3년 내에 월 매출액을 3000만 위안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그는 웅진에서 만드는 화장품을 판매해 줄 딜러망 구축에 나섰다. 그는 “부임 이후 3년 동안 매달 20일 이상 지방에 상주하면서 우리 제품을 취급해 줄 딜러들을 찾아내는 데 목숨을 걸었다”고 말했다.
타사 제품들에 비해 브랜드의 지명도나 제품 포트폴리오가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 그가 택한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산둥성(山東省) 등 연안지역, 특히 칭다오(靑島)에서부터 웅진 제품만 취급하는 화장품 브랜드점을 연다는 전략이었다. 조 사장의 회고다.
고급제품을 만들어 비싸게 팔아라
“2004년 12월 칭다오에서 화장품을 가장 많이 파는 여성사업가를 찾아냈어요. 넉 달을 쫓아다니면서 설득했습니다. 결국 이듬해 3월 계약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당신 열정에 속는 셈 치고 내 인생을 걸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여성사업가 아래 있던 하부 판매망들이 움직이지 않은 것이죠. 2005년 5월 칭다오 바닷가에서 그녀를 만났더니 ‘당신은 왜 하필이면 나를 찾아왔느냐? 당신 때문에 내가 패가망신하게 됐다. 당신과 일하기로 한 것은 내 일생일대의 잘못된 선택이다’라며 울더군요. ‘여기서 그만두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밖에 안된다. 끝까지 같이 가자’고 달랬습니다. 지금 현재 그는 다른 브랜드숍(대리점)보다 10배 정도 매출을 많이 올리고 있습니다.”
그는 웅진화장품의 성공 이유로 다음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 최고의 재료를 써서 고급제품을 만들어 비싸게 팔았다. 조 사장은 “비록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은 낮았지만,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웅진화장품의 스킨로션은 450위안인데, 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랑콤화장품에서 나오는 스킨로션 값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한다.
둘째, 브랜드숍 점주들에 대한 교육에 투자하면서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했다.
셋째, 브랜드숍, 대형할인점, 백화점 화장품 전문점, 미용실 등 다양한 유통경로를 개발하고 여러 가지 이벤트를 통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조 사장의 설명이다.
“중국에서는 한국에서와 같은 화장품 방문판매가 금지돼 있습니다. 한국에서처럼 소비자들에게 自社(자사) 화장품의 장점을 설명하고 써 보도록 하는 길이 막혀 있는 셈이죠. 대신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브랜드숍으로 손님들을 찾아오게 해서 무료 마사지를 해 주는 등의 방법으로 소비자 밀착영업을 했습니다.”
그는 구체적인 매출에 대해서는 밝히기를 꺼렸다, 다만 자신이 처음 부임했던 2003년에 비해 100배 정도 매출이 신장됐으며, 현재 월 400만~500만 위안 정도의 이익을 내고 있다고만 밝혔다.
품질과 서비스로 승부
중국 선양에 있는 웅진의 화장품 공장. |
화장품 사업이 안정되면서 조정현 사장은 웅진코웨이의 대표상품들인 환경가전 시장 개척에 나섰다. 조 사장의 말이다.
“사실 2006년 이전까지는 본사에서도 ‘중국에서 환경가전은 좀 빠르지 않으냐’는 생각이었어요. 그런 가운데 2005년 하반기에 시장조사에 들어가 이듬해 1월 시장조사를 마쳤습니다. 2006년 7월에 제품 론칭에 들어갔는데, 그해 하반기에 홍준기 사장이 오시고 이인찬 전무께서 해외사업을 맡으면서 탄력이 붙기 시작했어요.”
웅진코웨이에서 판매하는 일반정수기는 3500위안, 냉온정수기는 9500위안, 공기청정기는 3500위안(10평형), 비데 3500위안, 연수기(뻣뻣한 물을 부드럽게 바꿔주는 기계)는 3900위안이다. 중국인들의 평균 소득수준을 감안하면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정수기가 60%, 공기청정기가 20%, 연수기와 비데가 각각 10% 정도라고 한다.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에 대한 중국인들의 수요를 보여주는 듯하다.
정수기 분야에서는 메이디, 친웬, 엔젤 등 현지업체들, 공기청정기 분야에서는 타이완계 회사인 야두, 일본의 파나소닉과 샤프, 하니웰 등이 경쟁 상대다. 이에 맞서는 웅진코웨이의 무기는 제품력과 서비스다. 조 사장의 설명.
“정수기의 품질은 웅진이 세계 제일입니다. 재료에서부터 모든 부품을 타사 제품보다 우수한 것을 사용하니까요. 다만 한국에서는 식당 등에 세워두는 데스크 탑 형태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데 비해 중국에서는 싱크대 밑에 넣는 언더싱크형 제품이 9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디자인과 기능이 보강된 언더싱크형 신제품을 하반기에 출시할 예정입니다.
공기청정기는 야두 제품보다 15~20% 정도 비싼 값에 팔립니다. 우리 회사 제품은 품질과 디자인 못지않게, 서비스가 뛰어납니다. 다른 회사에서는 제품 판매에 그치지만, 우리는 정수기 공기청정기 필터 교체, 6개월 무상서비스 등 서비스 차별화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 한국에서 공기청정기, 정수기, 비데 등의 보급을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렌털시스템은 중국에서는 도입하지 않습니까?
“한국에서는 렌털해 쓰는 비율이 90%에 달하는 반면, 중국에서는 구매비율이 70%에 달합니다. 하지만 현재 베이징, 톈진, 상하이, 칭다오 등지에서 100여 명의 코디(제품 설치 관리 및 서비스 요원)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물건을 빌려 쓴다는 개념이 아직 중국인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단정한 외모와 친절한 서비스로 고객만족도가 95%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 중국인들과는 외상거래하지 말라고 하던데, 렌털은 해도 됩니까?
“한국에서는 렌털료를 자동이체하는데 중국에서는 아직 자동이체가 일반화되지 않고 있어요, 코디가 수금업무까지 처리하고 있습니다.”
“3년 내에 중국 내 10대 화장품 회사로 키우겠다”
조 사장은 “한국에서처럼 이들 제품이 일반화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예상보다 성장세가 늦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아직까지는 물을 끓여먹거나 값싼 생수를 사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기청정기의 경우 2004년 사스 사태 이후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정수기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어, 공기청정기보다는 정수기 쪽이 잠재력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정수기는 작년에 50% 이상 판매가 늘었고, 올해도 35% 이상 성장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 웅진은 중국 현지에서도 환경가전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까.
“한국에서 생산된 제품이 60% 정도를 차지하고, 정수기 중 보급형 제품 일부를 현지에서 조립생산하고 있습니다. 시장이 더 커지면 본사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중국 현지생산을 늘리게 되겠죠.”
― 환경가전에 주력하면서 화장품에 소홀해지는 것은 아닙니까?
“작년에 화장품이 259% 성장했고, 올해도 200% 이상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3년 내에 웅진화장품을 중국 내 10대 화장품 회사로 키우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에게 “세계 각국의 화장품들이 각축하는 중국시장에서 너무 큰 꿈 아니냐”고 말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사람이 하는 일에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두고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