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102동 702호

서남해의 파라다이스 파인비취를 범하다.

화이트보스 2009. 10. 13. 11:46

그날 그 필드에서 나는 나의 어릴적에 꿈과 추억에 젖어 하염없이 고향의 그리운 산천, 고향바다, 꿈엔들 잊을 수 없는 할아버님 할머님 그리고 아버님 어머님과  형제지간  또 나의 소중한 자산인 선,후배,친구들에 얼굴을 회상하며

다시는 뵐 수 없는 분들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에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파인비취에서 바라본 고향 가는 그 바다가 얼마나 원망스러운 뱃길이였는지 ......... 정말 한 많은  고향 가는 뱃길이였지요.

12살 어린 나이에  울부짓는 어머님의 손을 놓고 할아버님을 따라 이 바다길을 통해서 처음 목포에  유학을 오면서 부터 나의 타향살이가 시작된거지요

지금이야 진도가 연육이 되고 도로가 포장이 되어 육로를 이용하지만 그시절엔 이 바다를 지나지 않고선 육지와 소통의 길이 없었습니다.

 

목포의 하숙방에 나를 두고 가시면서 돌아보시고 또 돌아보시며 눈물 맺히신 그 할아버님의 생각이 오늘 이곳 골프장에서 정말 많이 났습니다.

그날 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베갯짓이 축축이 젓도록 눈물을 흘리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방학도 하기 전 꼭 고향집이 가고 싶어서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영해동에서 2.30분 출발하는  옥소호(약 100t)를 타고서 배멀미에 시달리며 고하도를 벗어나 이곳 시야바다를 지나면서 바라보던 시야도 등대가 새삼 새롭게 기억이 난니다.

 

어류포항에 저녁 7.30분경 도착을 하여 집에가서 늦게 저녁밥을 먹고 자고 다시 일요일 아침 7시에 출발하는 옥소호를 타고 목포에 도착하면 12.30분!!

나에게는 너무나도 잊지못할 고향가는 길 ! 그 추억의 바다입니다. 목포로 향하는 길에 이곳 시야도 등대가 보이면 이제 다와 가는구나 하고서 생각을 하곤 했지요.

물론 그시절에 손목시계는 구경도 못하던 때 입니다.

 

그 바닷가 옆 버려진 야산을 개발하여 이렇게 휼륭한 골프장을 조성하신 분들에 혜안에 탄복을 하면서 바라보는 이곳 파인비취에 풍광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파라다이스 입니다.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이 바다에서 불현듯 나는 나를 그토록 엄하면서도 애지중지 금이야 옥이야 키워주신 할아버님이  너무나도  그리웠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당신이 그립습니다.

진정으로 존경하고 사랑했던 당신에게로의 통로는 오직 내 기억속에만 존재할 뿐 입니다.   

 

 

 

 

 파인 비취가 자랑하는 6번 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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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트 건너에 보이는 섬이 시야도 입니다. 옛적에는 나무가 없어 하얀 등대가 아름다운 섬입니다.

하얀게 보이는 건물은 엣적분교입니다. 지금은 할머니 한분이 계신답니다.

 멀리 보이는 섬은 장산도와 하이도 입니다. 장산-상태-하태-하이-고사-평사-가사-성남-어류포  이렇게 항해코스가 기억이 난니다.

 

 노을진 시야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입니다. 오누이처럼 정겹고 아름다운 부부 입니다.

 

 

 

 

 

 

 

 

국내에 도입된 요트 중 가장 규모가 큰 레이디 알리아.  수입가격은 35억

 

 

 

 

 

 

 

 

 장진주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하늘에서 내린 황하의 물이 바다로 흘려내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함을..

또한 못보았는가?  귀인이 명경 속의 백발을 슬퍼함을..

아침에 청사 같던 머리가 저녁에는 눈같이 되네.

인생은 득의했을 때 모름지기 즐거움을 다할지니

빈 황금 술잔을 공연히 달 앞에 놓지 말라.

하늘이 내게 재능을 준 것은 반드시 쓸 데가 있음이요

천금을 탕진하더라도 또한 다시 돌아오느니라.

양을 삶고 소를 잡아 한바탕 즐기세

모름지기 한 번에 3백잔은 마실 일일세.

벗이여 !!

바야흐로 술을 드리려 하니, 그대여  거절하지 말라

그대를 위하여  내가 한 곡조 부르리니

청컨대 그대는 나를  위하여 귀를 귀울여 다오.

종정.옥백이 족히 귀한 것이 못 되니

다만 언제나 취하기를 원하고 깨기를 원치 않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