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프간 지원 '단지 돈' 뿐일까
● 요청하는 美 - 反美 의식… 재정 지원 요청… 비공식적으로 파병의사 타진
● 고민하는 韓 - “전투병력은 절대 안보낼 것… 경계병 등 500명 이내 검토”
미국이 주도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상황이 악화되면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지원 요청이 구체화하고 있다.버락 오바마(Obama) 행정부가 한국의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 당장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군사적인 지원보다는 비교적 반대가 적은 경제적 지원이 추가로 이뤄지기를 바라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미 국방부의 제프 모렐(Morrell) 대변인은 18일 기내 인터뷰에서 한국에 어떤 지원을 바라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한국 같은 부유한 나라가 아프가니스탄의 발전을 도울 수단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군사적 지원이 어려운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재정적 지원이 요구된다"는 등의 발언을 통해 재정적 지원이 조속히 이뤄지기를 희망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앞서 미 국방부의 고위 관계자는 지난 14일 일본의 아프가니스탄 지원에 대한 질문을 받고 "반드시 군사적일 필요는 없다"고 언급했는데, 이런 입장이 한국에도 적용된다는 관측이 있다.
- ▲ 미국 메릴랜드의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18일(현지시각) 떠나 하와이 호놀룰루로 향하는 E4B 미 공군기에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가운데)이 브리핑룸에 들러 환하게 웃고 있다./미국 E4B 공군기 기내=이하원 특파원 May2@chosun.com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관련, 한국에 경제적 지원을 강조하고 나온 배경은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한국에서 당장 파병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음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자칫 한국에서의 파병 문제가 반미(反美)로 연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또 현재 한국 정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수백명의 파병 규모가 현실적으로는 당장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이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는 당장 군사적 지원이 어렵다면 신속하게 경제적 지원을 확보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짊어져야 할 아프가니스탄 관련 부담이 '비군사적' 분야로 확정된 것이냐에 대해선 아직 단정하기 힘들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라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미국이 어느 시점에선가 동맹국들에 '어려운' 부탁을 해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측의 비공식적인 파병 타진은 현 정부 출범 이후 계속돼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도 외교안보 부처를 중심으로 올봄부터 보안을 유지하며 본격적인 파병 검토를 계속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파병의 실무 책임 부서인 국방부는 지난 4월쯤부터 500명 이내 범위 내에서 경계병력을 중심으로 파병하는 안을 검토해왔다. 경계병력은 동티모르·이라크·레바논 등 해외파병 경험이 풍부하고 대민(對民)작전에서 국제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은 특전사 요원이 우선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정부는 그러나 어떤 상황이든 전투병 파병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아프가니스탄 지원의 핵심은 민간재건팀(PRT)을 중심으로 한 평화재건 활동"이라며 "파병은 하더라도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경계병 성격이지 결코 전투 목적으로는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일각의 여론과 날로 악화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전황(戰況) 등을 고려한 것이다. 이에 따라 공식적으로는 '파병'이라는 표현도 쓰지 않을 것이라고 정부 소식통은 전했다.
파병이 이뤄질 경우 그 규모는 민간재건팀이 몇 명이나 가느냐에 따라 좌우될 전망이다. 정부는 당초 30여명인 민간 재건팀을 내년 초까지 85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정부는 이 같은 민간 재건팀 규모가 미국의 기대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고 보고 인원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럴 경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될 경계병력도 늘어나게 된다. 군 소식통은 "어떤 경우든 파병 규모는 아무리 많아도 300~500명 이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문제는 탈레반이 계속 세력을 확대하는 등 아프가니스탄 전황이 나빠지고 있고 미국 내에서조차 추가 파병에 대한 논란이 계속 일어 국내에서도 파병 반대 여론이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다음 달 중 나올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결선투표 결과와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해 열릴 한미 정상회담 결과 등을 보고 파병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