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겨례의 지도자

과학계, 박 전대통령 기념관 열풍-1

화이트보스 2009. 10. 21. 11:13

과학계, 박 전대통령 기념관 열풍-1

  • 연합뉴스
  • 트위터로 보내기
  • MSN 메신저 보내기
  • 뉴스알림신청
  • 뉴스젯
  • RSS
  • 프린트하기
  • 이메일보내기
  • 스크랩하기
  • 블로그담기
  • 기사목록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입력 : 2009.10.21 07:11

과학계가 중심이 된 과학대통령 박정희 기념관 건립은 경제업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박 전 대통령의 과학기술 업적을 새롭게 부각시킬 것으로 보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과학계에서 ’과학대통령’으로서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은 더이상 논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하나의 명백한 ‘사실’(fact)이자 ’상수’(constant)로 통한다.

2002년 한국대통령 평가위원회가 분야별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발전 분야를 비롯해 교육과학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음은 물론이고, 더욱이 과학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한 예로 1908년 출생으로 과학기술계 대표적 원로였던 김동일 전 서울대 공대 학장은 작고 한달 전인 98년 6월 출판한 회고록 ’나의 걸어온 길, 구순(九旬)을 맞이하여’에서 “박 전 대통령의 신념은 혁명 직후 제정된 제3공화국 헌법에 전례 없이 과학기술 진흥이란 조문이 신설, 삽입되었다는 사실에서 엿볼 수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특히 “과학기술 조항은 기초위원의 초안에는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인데 대통령의 특명에 의해 삽입하기로 결정을 보았다”며 과학기술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식견과 포부를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의 과학입국에 대한 신념은 1962년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같은 축을 이룬 과학기술개발 5개년계획 수립으로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신념과 결단, 치밀한 과학기술진흥계획’에 입각해 한국 과학기술의 산실인 KIST를 1966년 설립했고, 곧이어 1967년 당시 개도국 최초로 과학기술전담 부서(과학기술처)를 신설했다.

박 전 대통령은 ’밀가루 한 포대’가 아쉬웠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 과학기술 입국의 기치를 내걸고 미국의 막대한 원조를 KIST 설립으로 돌렸고, 이후 KIST는 낙후된 한국의 과학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70년대에는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을 제창하며 대덕연구단지 건설 등을 주도했다.

이와 관련, 한홍택 KIST원장은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먼 미래를 보고 과학기술에 투자한다는 것은 지도자로서 대단히 어려운 결단이었을 것”이라며 “박 전대통령은 KIST 설립자이자 대덕연구단지 조성 등 우리나라 근대과학기술 체계를 훌륭하게 구축한 과학기술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기념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박원훈 KIST 연우회장은 “기념관 건립은 단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니다”며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한 국가지도자의 정확한 인식이 얼마나 국가발전에 기여했는지,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 세태에서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또 “우리 동문회가 ’KIST 출신의 연구하는 친구들’이란 뜻을 갖는 법인체 ’KIST 연우회’로 공식 발족한 만큼 전 회원들이 나서 기념관 건립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