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겨례의 지도자

駐越한국군의 양민살해를 통탄한 朴正熙의 편지

화이트보스 2009. 10. 21. 19:38

駐越한국군의 양민살해를 통탄한 朴正熙의 편지
李世鎬사령관에게 보낸 편지 공개되다. <국군의 명예와 지금까지 수많은 戰友들의 피의 代價로써 쌓아올린 국군의 功績을 하루아침에 완전히 烏有化(오유화: 까마귀의 것으로 만드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하여 痛嘆(통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趙甲濟   
 越南전선에 파견된 한국군의 제2대 사령관을 역임하였던 李世鎬 장군(육군참모총장도 역임)이 최근 ‘서한문집’(書翰文輯. 대양미디어 출판)을 냈다. 이 책에는 사령관으로 재직시 朴正熙 대통령에게 直報한 보고서와 대통령의 肉筆 답신이 실려 있다. 1970년 12월21일 李世鎬 駐越 한국군 사령관은 朴正熙 대통령에게 ‘보고서신 제9호’를 보냈다. 이 편지엔 이런 대목이 있다.
 
  <지난 11월27일, 백마부대 29연대 2중대 3소대장 이하 20명이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자유사격지대에서 잠복근무 중 송진을 채취하고 하산하는 민간인 5명을 敵으로 판단, 誤認 사살하고 허위로 戰果를 조작함과 동시, 증거라 하여 귀를 절단해 낸 일이 있었던 바, 그 중 1명의 생존자가 있어 뒤늦게 진상이 알려졌습니다.
  사전신고 없이 입산한 그들도 문제려니와 敵은 전혀 事實無根한 것도 조작해내면서 사소한 근거라도 있는 것은 왜곡 과장하여, 우방군 특히 한국군과 미군을 국민과 이간시키기에 혈안이 되고 있는 이때에 일부 沒知覺한 몇 명의 功名心으로 전체 한국군의 명예와 위신을 손상시킨 데 대하여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이틀 뒤 박정희 대통령은 ‘親愛하는 李世鎬 장군’으로 시작되는 답장을 보냈다. 몇 개 낱말을 요사이 맞춤법에 맞게 고친 것을 제외하고 原文대로 싣는다.
  <12월21일자 貴翰은 금 23일 접수하여 내용을 자세히 읽었습니다. 작금 월남 국내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한국군에 의한 양민살해사건에 관하여서는 合參의 韓武協 장군의 보고에서도 詳報를 이미 받고 있습니다.
  소녀 살해사건은 불행한 일이기는 하나 작전상 부득이한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백마부대 29연대에서 발생한 양민살해사건에 관하여서는 各級 지휘관은 물론 末端 병사에 이르기까지 앞으로는 두 번 다시 如此한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게끔 각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戰果를 조작보고하기 위하여 양민을 살해하고 하물며 죽은 자의 귀를 절단하는 비인도적 행위는 국군의 명예와 지금까지 수많은 戰友들의 피의 代價로써 쌓아올린 국군의 功績을 하루아침에 완전히 烏有化(오유화: 까마귀의 것으로 만드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하여 痛嘆(통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국군이 월남에 간 기본 목적과 정신을 다시 한 번 全 將兵이 想起하고 재인식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됩니다.
  월남국민들 중에 일부가 한국군의 派越목적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이든 沒理解하고 한국군을 모독하거나 모함하는 背恩忘德한 행위를 나는 탓하려 하지 않습니다. 탓할 필요도 없고, 왜 남의 은혜를 惡으로 갚으려고 하느냐 하고 힐책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곳에 가서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고 무엇 때문에 갔다는 목적과 명분이 昭昭白白(소소백백)하기 때문에 구차하게 恩顧(근고)를 들먹거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할 일, 우리가 할 도리를 다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지금까지 이 도리와 우리의 임무를 가장 성실히 해왔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이 말단의 知覺없는 일부 장병에 의해서 一件이라고 발생하고 보면 우리는 우리의 할 도리와 임무만을 성실히 했노라 라고 떳떳이 말하기 쑥스럽게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물론 古語에도 一魚濁水格으로 극히 소수의 군인에 의해서 저질러진 일인 만큼 이 사건 하나로서 그동안 우리 派越국군이 5년여 세월 동안에 세운 혁혁한 공적이 다 相殺된다고 절대로 말할 수는 없는 일이겠으나 전체 국군장병의 명예나 勳功에 상처를 주었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점 장군께서 누구보다도 통탄을 하고 事後처리에 苦心하고 있으리라고 忖度(촌탁)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 문제는 장군의 판단과 裁量에 의하여 신속하고도 適切한 조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동시에 이런 사건이 있었다고 해서 作戰지역에서 작전행동에 하급지휘관들이 위축되어서 作戰에 지장을 가져오는 일이 있어도 안 될 터이니 명백한 지침과 準則을 부여하여 작전에 조금도 차질을 가져오는 일이 없게끔 하는 조치는 사건처리 자체보다도 더욱 軍사령관으로서 취해야 할 중요한 조치라는 것을 당부하는 바입니다>
 
  李世鎬 사령관의 보고보다도 대통령이 주의를 주는 내용이 분량 면에서 네 배나 된다. 월남을 도우러 간 한국군의 공적이 이 사건으로 타격을 입은 데 대하여 원통해 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떠오른다. 朴 대통령이 軍紀를 엄정하게 세우려 하였다는 것도 알 수 있고, 사건을 은폐도, 축소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다루도록 하되 矯角殺牛(교각살우)의 어리석음도 경계하는 그야말로 적절한 지시를 내리고 있다.
  월남전은 비정규전이었다. 베트콩과 월맹군은 전쟁의 규칙을 애당초 지키지 않았다. 베트콩은 군복을 입지도 않았고 미군이나 한국군으로 위장도 하였다. 그럼에도 미군과 한국군은 전쟁규칙을 지키려 노력하였으나 양민 誤認사살을 막을 순 없었다.
  위의 편지에서 朴正熙 대통령은 한국군이 월남전의 특수성을 이유로 일탈 행위를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엄격함이 느껴진다. 그는 사건발생에 이렇게 통탄하면서도 구체적 처리지침은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李世鎬 사령관의 裁量에 맡기고 있다. 職務의 한계를 어기지 않으려는 조심성이 보인다. 이 사건을 일으킨 29연대의 연대장은 全斗煥 대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