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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베를린 장벽 무너지듯 지금 휴전선이 열린다면

화이트보스 2009. 11. 4. 11:18

20년 전 베를린 장벽 무너지듯 지금 휴전선이 열린다면

입력 : 2009.11.03 22:08 / 수정 : 2009.11.03 23:43

오는 9일은 동·서독을 갈라 놓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년째 되는 날이다. 헬무트 콜 당시 서독 총리는 훗날 회고록에서 "그때까지만 해도 1989년 11월 9일이 독일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날이 될 것이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1985년 집권한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들고 나온 개혁·개방의 물결이 동유럽의 구(舊)체제를 뒤흔들었고, 경제난에 허덕이던 소련은 동유럽의 후견인 역할을 사실상 포기했다. 그러나 서독 지도층에는 이 변화의 물결이 독일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콜 총리만이 유일한 예외였다. 야당인 사민당과 녹색당은 콜에게 "현실성 없는 통일 레토릭(수사·修辭)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1989년 7월 17일 헝가리가 서방국가인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을 열자 동독인들은 이 통로를 통해 서독으로 가려고 몰려들었다. 여기에 밀려 18년간 집권했던 동독의 독재자 호네커 서기장이 그해 10월 실각했다. 새로 등장한 크렌츠 정권이 11월 9일 동독인의 서독 자유 통행을 허용하자 베를린 장벽이 군중의 손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 이어 동·서독은 통일을 향한 협상을 시작해 이듬해 10월 3일 기어코 통일을 이뤄냈다.

2차대전 패전(敗戰) 국가인 독일은 전승국인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등의 승인 없이는 통일을 추진할 수 없는 상태였다. 4대국 지도자 중 독일 통일에 우호적이었던 인물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뿐이었다. 대처 영국 총리와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찾아가 독일 통일을 막아줄 것을 은근히 요구했다. 콜 총리와 겐셔 외무장관은 부시를 통하거나 또는 직접적으로 집요하게 이들을 설득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넉 달을 앞둔 1989년 6월 고르바초프를 독일로 초청해 대규모 경제원조를 약속하면서 "독일과 소련은 유럽 분단 극복에 이바지한다"는 성명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미국을 적극적 후원자로 붙들고 소련을 소극적 반대자로 변화시킨 독일의 외교적 역량이 베를린 장벽 붕괴를 만들어내고 영국·프랑스 등의 반대를 넘어 통일의 길을 뚫었다.

북한은 15년 계속된 경제난으로 체제의 생존을 위협받는 처지이다. 이 순간에도 5만명이 넘는 탈북자들이 중국과 동남아 등지를 떠돌며 한국행을 바라고 있다. 우리의 통일도 독일처럼 누구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찾아들 것이다. 한반도 통일 역시 주변 강대국들의 동의와 지지가 필수적이다. 서독의 외교 역량이 미국을 적극적 통일 후원자로, 소련을 소극적 통일 반대자로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 외교가 통일 지지 국가를 더 든든한 후원자로 묶어두고 통일 반대 국가의 태도를 통일 지지 혹은 묵인(默認)하는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느냐에 대한민국과 8000만 민족의 장래가 걸리게 된다.

통일 후 서독은 처음 5년간 매년 1조5000억유로를 동독 지역에 지원했는데도 현재 동독 지역의 경제는 서독의 70% 수준이다. 동·서독 주민 간의 사회적 반목도 여전하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 붕괴 2년 전인 1987년만 해도 동독인 500만명이 서독을 여행했고, 이 중 20대가 100만명이었다. 한 해 동독 주민 수십만명이 여권을 받아 해외여행을 했다. 같은 공산주의 국가라지만 그때의 동독과 지금의 북한은 딴판인 나라다. 분단 60년이 넘었는데도 1년에 고작 200~300명의 이산가족이 금강산에 모여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2박3일간의 상봉을 거쳐 다시 기약 없이 이별하는 고통 속에 허덕이는 한반도 남과 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통일 독일은 이제 통일비용의 부담을 털고 '통일의 효과'를 디디며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오늘 대한민국의 천형(天刑)인 양 천근만근의 무게로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지만 긴 눈으로 살피면 북한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제2의 도약으로 이끌어갈 가능성과 잠재력을 안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이 순간 대한민국의 어느 누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닥쳐올 통일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독일 통일의 주역과 조역(助役)들인 콜 전 총리, 부시 전 대통령,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이 한자리에 모여 통일 20년을 기념하는 모습을 먼 곳에서 바라보는 우리 가슴에 한 줄기 찬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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