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이 대안이다/자주 국방

불독이라 불린 워커 장군 [ 끝 ]

화이트보스 2009. 11. 20. 22:38

불독이라 불린 장군 [ 끝 ]

 

 

 

맹장의 어이없는 최후

 

이런 갑작스런 상황 반전에 자신만만하게 북진을 이끌던 맥아더는 물론 미 8군 사령관 워커 또한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명령을 내린다고 중공군의 남진을 막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순식간 원산을 중공군이 점령한 덕분에 동북지역에서 북진을 펼치던 워커의 라이벌 알몬드는 상륙으로 시작한 작전을 반대 급부로 흥남에서 배를 타고 후퇴하면서 끝내야 했습니다.

 

12-1.jpg

[ 상륙전으로 명성을 높인 미 10군단은 바다를 통해 철수하였습니다 ]

 

이제 워커에게 부여된 임무는 단 하나였습니다.  최대한 후퇴속도를 조절하여 전선을 최대한 빨리 고착화 시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렇기 위해서는 중공군에 놀라 도망치기 바쁜 일선부대들에게 맞서서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주어야 했습니다.  후퇴속도를 늦추고 최대한 중공군의 남진을 막아야 후방에 튼튼한 방어선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2-2.jpg

[ 맥아더와 함께 전선을 시찰하는 워커 ]

 

현장을 중시하던 최고 사령관 워커는 예하부대의 사기진작을 위하여 최 일선을 찾아다니며 동분서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만큼 심리적으로도 수세에 몰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전선이 38선 부근까지 밀려 내려 온 1950년 12월 23일 워커는 방어전을 펼치던 미 24사단영 27여단을 표창하고 격려하기 위해 호위병도 없이 운전병만 대동하고 의정부 북방으로 출발하였습니다.

 

12-3

[ 워커는 예하부대를 찾아다니며 격려하는 지휘관이었습니다
( 군우리 전투에서 미 2사단을 구원한 터키 1여단의 타흐신 야지치 준장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워커

최근 야지치 여단장의 손자가 육군대학에 유학 중인 것으로 확인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 ]

 

그는 또한 오랜만에 24사단에 근무하는 아들 샘 워커 ( Sam Sims Walker 1925~ : 아들 샘도 이후 미 육군 대장이 되어 남동유럽지상군사령관을 역임하였는데 미군 역사상 부자가 대장이 되었던 경우는 단 2번이었습니다 ) 대위도 만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워커를 태운 지프가 11시 경 의정부 남쪽 4km 지점인 축성령을 통과하여 북쪽으로 올라갈 때 의정부에서 남하중인 국군 6사단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하였고 이 사고로 맹장 워커는 현장에서 사망하였습니다.

 

12-4.jpg

[ 현장을 중시하던 워커는 현장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 

 

한마디로 아주 중요한 시기에 있었던 명장의 어이없는 죽음이었고 이후 그는 육군 대장으로 추서되었습니다.  비록 맥아더의 카리스마에 눌려 세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또한 북진 시 자신의 뜻대로 작전을 펼칠 수도 없었으나 대한민국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불굴의 신념으로 예하부대를 지휘하여 극복한 워커는 한국 현대사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든 인물입니다.

 

12-5.jpg

[ 맥아더가 워커에게 북진에 관한 전권을 위임하였다면 어떠하였을까요 ?
( 1950년 10월 전선을 시찰하는 워커와 맥아더 ) ]

 

그의 이름이 우리가까이 부활한 것은 1963년 4월 국내에 변변한 시설이 없어 휴가 때 일본이나 태국으로 놀러가는 주한미군들을 유치할 목적으로 한강변에 설립된 호텔의 이름이 워커 힐 ( Walker Hill ) 로 명명되면서부터 입니다.  전쟁영웅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미국인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는데, 그만큼 워커가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증거입니다.

 

12-6.jpg

[ ( 쉐라톤 ) 워커 힐 호텔의 전경 ]

 

이글 [ 1 ] 편에 쓴 것처럼 M-41 경전차의 이름으로 명명될 만큼 워커는 제2차 대전 당시에는 패튼의 충직한 오른팔로 활약한 기동전의 대가였습니다.  특히 그가 유럽에서 지휘한 20군단의 기동력이 워낙 신출귀몰하여 유령부대 호칭을 들었을 정도로 공격의 선봉장이었습니다.  반면 한국전에서는 위기의 순간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뚝심 있게 교두보를 고수하여 전사에 길이 빛날 전과를 기록한 방어전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12-7.jpg

[ 위대한 장군 워커의 소박한 묘 ]

 

결국 마지막까지 지휘를 하지 못하고 불의의 사고로 전선에서 생을 마감하였으나 낙동강에서 Stand or Die 로 대변되는 그의 훈시처럼 전선을 사수한 그의 공적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위대했고 용기가 있었습니다.  이역만리 남의 땅을 수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낯선 곳에서 마지막 생을 다한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