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중겸 사장은 1950년 경북 상주 태생으로 휘문고, 고려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건축사업본부 상무, 주택영업본부장(부사장), 현대엔지니어링 사장을 역임했다.
‘CEO주가’라는 게 있다. CEO는 우리말로 최고경영자를 가리킨다. CEO가 바뀐 것만으로 주가가 오를 때 증권가에서는 이를 ‘CEO주가’라고 한다.
올 3분기에 한 증권사 리포트는 CEO주가 가능성이 있는 종목으로 현대건설을 지목했다. 현대건설의 CEO는 1분기에 바뀐 상태였다. 정확히 말하면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은 지난 3월 18일 취임했다. 취임 전날 주가가 5만2800원이었고 11월 12일 현재 7만1300원이다. 주가가 오른 것은 매출과 이익 등 실적이 눈부시게 향상되고 있고 6년 만에 국내 1위 건설사 자리를 되찾는 등 호재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리포트를 믿고 주식을 산 사람은 상당한 투자수익을 거둔 셈이다.
왜 이 증권사는 부임한 지 몇 달도 지나지 않은 CEO를 대상으로 이렇게 과감하게 리포트를 냈을까? 그의 이력을 보면 이해가 된다. 현대엔지니어링에서 단기간에 눈부신 실적을 올리는 등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경영의 달인’이기 때문이다.
- ▲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 지난 2월 13일 산업·외환·우리은행 등 현대건설 채권단으로 구성된 경영진추천위원회는 외환은행에서 차기 사장 후보 4명을 면접한 뒤 김중겸 현대엔지니어링 사장을 현대건설 차기 사장 후보로 추천했다. 그가 현대건설 CEO에 임명된 것은 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 사장 시절 큰 폭으로 실적을 향상시킨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2007년 1월 현대엔지니어링 사장으로 부임한 뒤 작년에 매출 7400억원, 경상이익 1100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그가 취임하기 전인 2006년 현대엔지니어링의 매출은 2400억원, 경상이익은 190억원에 불과했다. 불황기간 2년 만에 매출은 3배, 경상이익은 약 6배나 늘어난 셈이다. 수익구조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모기업 의존도를 34%에서 4%로 거의 전무한 수준으로 낮춰버렸다. 이 회사가 신생기업이 아니라 설립된 지 30여년이 지난 대기업 계열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일이다.
안팎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현대건설 사장에 취임한 그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취임 후부터 줄곧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직원들에게 “세계 일류 기업이었지만 미래를 대비하지 않았기에 꼴찌 기업으로 전락한 예가 많다”며 “회사가 잘나갈 때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현대건설이 앞으로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라는 화두(話頭)로 미래전략 수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연말에 모습을 드러낼 ‘비전2015’가 그것이다. 김 사장은 여기에 ‘변화와 혁신으로 지속 성장을 이어가자’는 경영철학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김 사장은 꿈이 크다. 그는 “건설업에서도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기업이 나와야 한다”며 “현대건설이 향후 그런 위치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현대건설을 종합 디벨로퍼로 변신시키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가 건설대국이 되는 길은 고부가가치 분야로 진출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건설업의 패러다임이 급격히 전환되는 시대를 맞아 현대건설은 이제 시공 중심에서 첨단기술과 지식·금융이 결합되는 종합 디벨로퍼로서 성장해야 합니다. 사업영역도 과거 건축·토목·주택 분야 위주에서 환경·대체에너지·원자력사업 등과 같은 저탄소 녹색성장 분야와 기획제안형 개발사업 등 미래의 신수종사업 분야로 발굴·육성해야 합니다.”
김 사장이 취임 이후 매달 해외출장 길에 오르는 것도 변화와 혁신을 앞당기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해외 나들이가 불편하고 힘들어 꺼릴 만도 하지만 김 사장은 해외출장을 지인(知人)의 집을 방문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여긴다. 1년에 한두 번 가도 힘에 부칠 것 같은 해외출장을 그는 왜 그토록 즐기는 것일까? 정답은 회사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다.
김중겸 사장은 현대건설이 ‘글로벌 톱 리더’로 도약할 수 있다면 발주처 및 협력사 관계자, 그리고 진출국의 고위관료 등 그 누구와의 만남도 서슴지 않는다. 김 사장은 취임 후 지금까지 20여개국을 찾았다. 중동, 동남아, 유럽 등 세계가 좁게 느껴질 정도다. 김 사장의 글로벌 경영은 11월에도 계속된다.
‘속도’는 곧 ‘효율’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김 사장은 국내외 현장 및 지사와의 신속한 업무소통을 위해 화상회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로써 업무협의가 필요할 때 발빠른 대처가 가능해졌다. 양방향 소통경영도 활성화했다. 사장이 전자결재 때 내용을 입력하게 되면, 그것은 해당 중역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돼 즉각적인 피드백이 가능하다.
김 사장은 밤 11시에 자고 새벽 4시에 기상하는 ‘아침형 인간’이다. 웬만한 사람은 체력과 정신력에서 그를 따라가기 힘들다. 그러나 그는 직원들에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기보다 소통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점이 여느 CEO와 다른 대목이다.
현대건설은 올 9월 차장·부장급 직원 6명(토목·건축·플랜트·해외계약부 각 1명, 전기 2명)을 영국 런던 킹스턴대학으로 1년간 유학 보냈다. 이들은 퀀티티 서베이어(Quantity Surveyor) 자격을 갖춰 돌아올 예정이다. 기존에 단기 연수 과정으로 직원을 해외로 보내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여러 명을 해외로 유학 보낸 것은 현대건설 사상 처음이다. 내년에도 QS 2기 유학생을 보낼 예정이다. 김 사장이 많은 비용을 들여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은 ‘직원들도 해외에 가서 급변하는 경영환경을 몸으로 느껴야 경영진의 방침을 이해할 수 있다’는 지론에 따른 것이다.
그의 감성경영은 현대엔지니어링 시절부터 유명하다. 그는 현대건설 CEO에 취임한 후 감성경영을 확대하고 있다. 목적은 소통을 위해서다. 경영진의 신념을 직원이 이해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고 이를 위해 CEO와 직원 간의 스킨십에도 열심이다.
그는 ‘기업의 전부는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직원에게 쏟는 관심과 애정이 각별하다. 대면(對面) 대화를 확대하기 위해 매주 수요일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CEO 조찬간담회’를 마련하는가 하면 ‘CEO 런치이벤트’ ‘CEO 문화산책’ 등으로 스킨십을 확대하면서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워주고 있다.
김중겸 사장의 ‘열린 경영’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해외 출장 내용과 결과, 그리고 현재의 경영상황 및 전달 메시지 등을 파워포인트로 작성해 월례 조회(朝會) 때 임직원에게 강의 형태로 전달해 신선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중겸 사장은 기존의 기술교육에서 벗어나 감성적 지혜를 일깨우는 예술과 인문학, 철학 등에 대한 공부를 강조한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하에서 기존의 사고와 경영마인드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감성리더십교육 확대와 임직원 역량개발 지원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김 사장과 대화하다보면 도대체 “이 사람이 건설회사 CEO가 맞아?” 하는 의문이 절로 든다. 화제가 이공계뿐만 아니라 인문·사회학까지 자유자재로 경계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그가 매월 적어도 책 3권을 읽는 독서가라는 것을 알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독서를 권장하고 책 선물도 자주 하고 있다. 그가 시야가 넓다는 평을 듣는 것도 이런 성향과 노력 덕분이다. 그는 “현대건설을 ‘존경받는 글로벌 톱 리더’로 만들어 직원들이 가족과 국민에게 존경 받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박영철 차장대우 ycpark@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