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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과 종말론

화이트보스 2009. 11. 25. 11:49

현대인과 종말론
미래에 대한 공포가 종말론으로 구체화
대세 따르려는 집단심리도 한몫
▲ 일러스트 한규하
사이버 공간에 종말론이 득세를 하고 있다.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1999년의 종말론이 해프닝으로 끝난 지 그리 오래지 않은데 또 웬 종말론일까? 이번 종말론은 2008년 금융위기 확산 이후 점차 힘을 얻기 시작한 이야기이다. 종말론이라는 극단적인 이야기를 쉽게 공유하는 사회현상 또한 현대인의 심리 특성을 반영한다. 뜬금없이 2012년이라는 시점에 의미를 부여하여 종말론을 만들어내야 하는 역설적 상황은 바로 우리가 경험하는 현재의 혼란을 그대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 혼란은 어제에도 오늘에도 매일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2012년 종말론이 과거와 다른 것은 전방위적인 단서들이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널리 퍼지는 단서들에는 고대 마야의 달력, 노스트라다무스의 새 그림 예언서의 발견, 주역(周易)의 기록, 나아가 21세기의 특성에 맞게 할리우드 영화 시나리오와 유사한 행성 지구 충돌 시나리오도 있다. 수마트라 토바호에 있는 지구 최대 화산이 2012년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과 지구온난화로 인한 지구 멸망 이야기도 있다.


개인의 불안이 공유되면서 구체적 현실로
 
 
거창한 전설이나 과학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런 혼란을 그대로 찾을 수 있다. 최근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신종플루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신종플루 발병자나 이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종말론과 유사한 두려움을 야기한다. 이런 불안한 상태를 경험할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심리상태를 분명히 더 확인하려고 한다. 아니, 이런 불안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추종하고 따르려 한다. 그렇기에 서로 “종말론에 대해 들어 봤어?” “정말 종말이 곧 올까?” 등의 이야기를 나눈다. 종말론은 서로 공유하게 됨으로써 분명한 실체가 있는 사회현상이 된다. 막연한 불안이 구체적인 현실이 되기 시작한다. 현대인의 심리적 특성이 이런 상황을 더욱 패닉 상태로 악화시키고 있다. 
절대적 삶의 존재를 기대할 수 없거나 믿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반사적으로 절대적인 죽음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 ‘스스로 자신을 확신할 수 없어, 종말론과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자신의 파괴를 기대하는 현대인의 심리’는 분명 역설적 상황이다. 왜냐하면 근대정신이란 바로 절대적인 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말론을 미래로 믿으려는 현대인의 심리 상태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자 하는 성향이다. 


현재가 이해하기 힘들 때 재난 시나리오 찾아 

현대인들의 경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가 중요하다. 스스로 자신의 상황을 볼 수 없는 경우라면 미래의 불안은 더욱 증폭된다. 보통 극단적 행동이나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우울하고 어두운 성향으로 드러낸다. 또는 상황을 감내하고 견디려는 자책감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 주어진 상황과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을 맞추면서 그것으로 인정받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대세(大勢)가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된다. 종말론이 대세라면 그것도 추종하려 할 것이다.

2012년 종말론은 미국발 금융위기와 같은 불안요인이 절대적인 파국으로 진행되다가 점진적으로 상황이 전환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대중들은 자신이 속한 상황이 무엇인지, 또 어떤 일이 왜, 어떻게 일어나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을 때 나름 체계적인 방식으로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을 한다.

레온 페스팅거라는 심리학자는 이런 인간의 일종의 습관적인 행동을 ‘귀인(attribution)’이라 했다. 귀인현상은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지식이나 경험이 더 이상 봉착한 문제를 설명하거나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때 쉽게 나온다. 과거의 경험이나 과거에 축적했던 지식으로는 현재 일어나는 현상을 더 이상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을 때,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가장 분명하고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 최고의 재난 시나리오를 스스로 찾거나 만든다. 스스로 합리적이라 믿거나 현상을 논리적으로 잘 이해하려는 경우 가용한 다양한 정보나 단서들을 활용해 최고의 공포 시나리오를 만들게 된다. 


불안 상황에서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는 심리 

귀인행동은 나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현대인의 습관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발생한 문제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겉으로 뚜렷한 무엇이 눈에 띄지 않을 때 쉽사리 그럴 듯한 원인을 심리적 요인에서 찾는다. ‘내부 귀인’이 일어나는 것이다. 내부 귀인은 사건이나 문제가 바로 자신이 겪고 있는 것이거나, 외부에 분명한 이유가 눈에 띄지 않을 때 일어난다. 하지만 종말론은 외부귀인이다. 작년 미국발 금융위기 상황에서 ‘과거의 위기에 대한 현재의 불안’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을 때 자신의 불안한 감정을 내부가 아닌 외부로 귀인하려는 상황에서 종말론은 힘을 얻게 된다. ‘미래에 대한 공포’가 종말론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종말론을 추종하는 행동은 현대인의 삶의 방식과 비교적 잘 접목될 수 있다. 현대인의 성격은 바로 현실의 지배적 상황에 자신을 맞추려 하며 순응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일이나 인간관계를 항상 상황의 논리에 맞추고 또 그런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고 남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 한다. 상황과 상대에 따라 말과 행동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특정 인물이나 과제에 강한 열정이나 믿음으로 빠져들지는 않는다.

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단지 일상적이며 규범에 맞는 일들을 무리 없이 수행할 뿐이다. 남들에 비해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왕따가 되는 것을 두려워 한다. 현실적인 삶의 논리에 충실하다. 이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급작스런 변화이다. 신종플루의 급속한 확산도 이들에겐 종말론의 또 다른 증거가 될 것이다.

대중은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불안한 상황보다 적극적으로 따를 수 있는 분명한 상황 변화를 막연히 기대한다. 구체적 근거를 통해 분명한 미래가 설정되면 대중은 쉽게 추종한다. 이들에게 미래의 불안은 미래가 불안정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대세나 규범, 틀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불안을 경험하는 상황에서 대부분 자신을 희생자이거나 피해자로 지각한다. 이들이 불안을 이겨내는 방법은 자신의 조상이나 사회적 범주에 속하는 영웅적 인물의 자랑스러움을 통해 대리적 정서를 경험하는 것이다. 대세를 찾고 이를 따르는 한국인의 삶의 방식도 여기에 한몫한다. 종말론은 이들의 마음속에서 막연한 기대로 생겨난다.  


/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 교수 swhang@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