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텐마 새 이전지 검토 지시 파문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가 미.일 간 최대 쟁점인 주일미군 후텐마(普天間) 비행장 이전 문제와 관련해 새 이전지를 찾도록 각료들에게 지시한 것은 미.일 관계보다는 국내 정치를 우선시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하토야마 총리는 지난 9월 정권 출범 당시부터 1996년 미.일 간 이뤄진 ’2014년까지 오키나와(沖繩)현 나고(名護)시 주일미군 슈와브 기지로의 이전’ 합의를 이행하라는 미국과 현내 이전을 반대해 온 사민당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한때 미국측의 강력한 이의 제기로 종전 합의를 준수하는 쪽으로 검토하는 분위기도 감지됐지만 하토야마 총리 자신이 지난 8.30 총선 기간 현외 또는 국외 이전을 약속했다는 것에 발목이 잡혔다.
또 4일 당수 선거가 고시되는 연립여당인 사민당의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穗) 당수가 지난 3일 선거를 의식, 미.일간 기존 합의를 이행할 경우 연립여당 이탈 방침을 밝히면서 하토야마 총리는 ’새 이전지’ 선택 카드를 꺼내 들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는 하토야마 총리의 민주당이 지난 8.30 총선에서 대승하면서 중의원에서는 과반수를 장악했지만 참의원의 경우는 원내 1당이지만 단독 과반수에는 미달하기 때문에 사민당이 이탈할 경우 참의원에서 각종 법안 처리가 어려워지면서 사실상 식물 정권으로 몰락할 수도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하토야마 총리의 이번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속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우선 중의원 308석으로 3분의 2(320석)에 육박하는 민주당이 중의원에서 7석에 불과한 소수 정당인 사민당에 휘둘리는 모양새가 이어지고 있는 점은 그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면서 취임 이후 고공행진을 이어온 지지율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당정 분리라는 총선 공약을 준수하겠다면서 정책 결정 과정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간사장과의 역학 관계도 변수다.
하토야마 총리가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곤경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당내 최대 실력자인 오자와 간사장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요미우리(讀賣)신문과 아사히(朝日)신문은 4일 “오자와 간사장이 하토야마 총리와 거리감을 두고 있다” “방관하고 있다”고 두 사람의 소원해진 관계를 지적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일 관계다. 하토야마 총리가 미.일 간 합의 사항을 뒤집는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 관리들 사이에서는 “미.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국제사회에서 하토야마 정권의 입지가 약화될 경우 이것이 결국은 국내 정치에도 악재로 작용할 텐데 하토야마 총리와 측근들이 너무 쉽게 이런 결정을 내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토야마 총리나 주변에서 대미 관계 악화에 따른 부담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정부 대변인인 히라노 히로후미(平野博文) 관방장관은 “후텐마 문제가 잘못돼도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리는 그런 약한 미.일 관계가 아니다”라고 주변에 말해왔다. 그러나 하토야마 총리의 새 이전지 검토 발언이 나오면서 민주당 내에서도 “전략 부재 아니냐”는 비판론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하토야마 총리도 이전부터 현외 또는 국외 이전을 주장해 온데다, 과거 야당 의원 시절에는 주일미군 없는 안보론이나 미 해병대의 오키나와 주둔에 대한 회의론을 주변에 이야기했던 점도 최근 일련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여기에 하토야마 총리와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상, 기타자와 도시미(北澤俊美) 방위상 등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의 중심에 선 인물들이 외교 경험이 부족한 상태서 ’정치 주도’를 내세우며 관료들을 외교 문제에 대한 논의의 장에서 배제한 것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