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무림의 태두라고 하면 단연 소림을 들 수 있습니다. 소림에도 칼, 창 등 온갖 병장기가 다 있지만 대표적인 무기는 어디까지나 곤봉입니다. 소림사의 곤봉이 무림 일절(武林一絶)로 자리 잡게 된 데에는 명나라 말의 항왜 명장(抗倭名將)인 유대유(兪大猷)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다소 낯선 인물이지만 중국무술사에선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유대유가 활동하던 16세기는 중국의 절강, 복건 등 동남해 연안에 왜구들이 자주 출몰하여 약탈을 일삼던 시절이었습니다. 일본도로 무장한 왜구들은 치고 빠지는 기습전과 특히 단병 접전에 놀라운 솜씨를 보여 명나라 관군이 꽤나 애를 먹었지요. 명나라 건국 시기부터 중국을 괴롭히던 왜구들을 일제히 소탕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이 바로 유대유와 척계광 장군입니다. 『무예도보통지』를 통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척계광 장군이 지은 『기효신서(紀效新書)』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한 병법서로 중국 최고의 무예서라고 자타가 공인할 정도입니다. 척계광은 당시 중국에서 이름을 떨치던 무예 중에서 실전성이 높은 것들만을 엄선하여 실었는데 곤법으로는 자신의 상관인 유대유 장군의 곤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유대유의 곤법이 실전 무예로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이겠지요.
* 기본 공력을 연마중인 소림승. 뒤에는 당파 협도 화극 등이 보인다. 이들 장병기를 다루기 위해선 곤봉 수련이 필수다.
한 차례 왜구 토벌전이 끝나고 잠시 여유가 생긴 유대유는 병영을 떠나 소림사로 말을 몹니다. 소림사의 곤법이 유명하다는 것을 익히 들었기 때문에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픈 마음에서 입니다. 소림 무승 중에 무예가 출중한 이들을 선발하여 왜구 토벌에 참전시키려는 다급함도 있었지요. 왜구들의 검법이 대단히 뛰어났기 때문에 그들의 예기를 꺾을 한 명의 고수라도 아쉬운 때였으니까요.
대장군의 갑작스런 방문을 접한 소림사의 주지 소산 상인(小山上人)은 자못 긴장합니다. 전시(戰時)에 최고 지휘관이 산중의 절을 일부러 찾았다는 것은 필시 그만한 까닭이 있는 법. 소산 상인이 먼저 운을 뗍니다.
“왜적이 우리의 바다를 어지럽히고 있는 이때에 장군께선 어찌 산중으로 왔소이까. 산 구경 절 구경하러 오신 것은 아닐 터.”
* 이세민의 숙적인 왕세충을 포위한 소림의 무승들. 소림은 당 건국의 1등 공신이다.
“대사의 눈을 어찌 속이겠습니까. 소림사에 뛰어난 고수가 많다는 얘기를 진즉에 듣고 있었습니다. 대사도 아시다시피 왜적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니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소이다. 저들은 하나같이 어릴 때부터 검법을 연마한 검귀들이라 여간해서는 우리 병사들이 당해내지 못하더이다. 저들이 독을 품고 긴 칼 하나만을 달랑 들고 뛰어드는데 그 위력이 대단합디다. 어지간히 담이 크지 않은 자는 멀리서 왜구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줄행랑을 놓고, 설령 용기를 내어 칼을 들어 왜구의 긴 칼을 막는다 하더라도 우리 병사의 칼이 두 동강 나기 십상입니다. 그러니 저들을 꺾어 줄 무림 고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다음 번에 왜적을 토벌하는 데 소림의 힘을 좀 빌릴까 하고 이렇게 찾았습니다. 소림 무예는 천하의 태두로 모두 존경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곤법이 제일인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지요.”
“장(長)으로 단(短)을 제압하겠다는 말씀, 과연 일리가 있습니다. 장군 또한 곤법에 일가견이 있음을 소승도 잘 알고 있지요. 소림곤이 제일이라는 말씀은 과찬이 아닐런지요. 하하.”
소산 상인은 소림 무예에 대단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던 바라 유대유가 치켜 주는 말에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소림 무승들 중에서 곤법에 정통한 이들을 불러 유대유 앞에서 시연을 보이도록 했다. 소림 무예의 위력을 한껏 뽐낼 심사였다. 그런데 무승들의 곤법 시연을 찬찬히 보고 있던 유대유의 얼굴이 크게 어두워졌다. 주지가 물었다.
* 이소룡과 이연걸의 곤법
“장군의 얼굴이 어찌 그렇습니까. 소림 곤의 위력에 그만 질려 버렸소이까.”
“아니, 정반대입니다. 소림의 곤에 크게 실망했소이다. 솔직하게 말씀 드려 소림의 곤법은 비록 이름이 높지만 내용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크고 화려해 보이지만 실전에선 거의 사용할 수 없는 화법(花法)에 불과합니다.”
화법(花法)은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위력은 없는 그저그런 3류 무술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소림 무승들은 크게 노했다. 소림이라면 불가(佛家)를 대표하는 무술 집단으로 무림인의 우러름을 받고 있고 특히 곤법은 천하제일로 명성이 자자한데, 병가(兵家)의 일개 장군이 어찌 자신들의 면전에서 이렇게도 소림 곤을 무참히 깎아내릴 수 있단 말인가. 흥분한 젊은 무승들이 유대유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장군의 안목이 그렇게도 높다니 놀랍군요. 어디 장군의 곤봉도 그리 대단한지 한번 보여 주시지요.”
그러면서 열여덟 명의 승들이 저마다 봉 한 자루씩을 잡고 진법을 펼치니 그 유명한 소림 십팔나한진이다. 수많은 강적들을 만났을 때마다 소림에 불패를 안겨 준 무적의 진법이었다. 곤봉 열여덟 개가 서로 상하 전후좌우로 씨줄과 날줄이 되어 돌아가면서 적의 허점을 치고 빠지니 나는 새가 아닌 바에야 빠져나갈 수 없다.
유대유는 전혀 긴장하는 기색 없이 곤봉 하나를 들고 나한진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두 발은 땅을 움켜쥐고 양손으로는 봉을 가볍게 쥔 채 사방을 살피니 그 모습이 과연 수만 명의 대군을 거느리고 무수한 전쟁을 치른 역전의 명장다운 풍모였다.
(과연 유대유와 십팔나한진의 결투는 어떻게 될까요. 다음 편을 기대하시길...)
* 현대 중국군 특수부대들이 곤봉 훈련을 하고 있다. 곤봉은 모든 무예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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