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에게 2009년은 정치적으로 큰 변화와 기회를 가져다준 해였다. 지난 대선 당시 입당할 때는 혈혈단신이었지만 올해 169석 집권여당의 대표가 됐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은 아직 검증 과정에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 시험을 어떻게 치러내느냐에 따라 그의 정치적 장래도 좌우될 것이다./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나홀로 정치'에서 '169석 대표'된 정몽준
"뒤통수 치는 정치는 하지 않을 사람"
신선한 리더십엔 공감
"정치는 비정한 세계 자신의 브랜드가 없다"
꼬집는 의원들도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올 한해 정치적 진화의 변곡점을 찍었다. 무소속으로 '나홀로 정치'를 오랫동안 하다가 2007년 12월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 21개월 만인 지난 9월, 169석 거대 집권여당 대표가 됐다. 4개월도 안 된 '정몽준 체제'는 아직 "시험가동 중"(부산출신 한 중진 의원)이라는 평가지만, 정 대표의 성적을 일찌감치 매겨놓은 의원들도 있다. 일부는 "솔직하고 상식적인 리더십"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한 반면, 다른 의원들은 "카리스마 없는 맹맹한 리더십"이라고 혹평했다.
이들 모두는 그러나 정 대표가 "정말 부지런하고, 정열적"이라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 남경필 의원은 "지난 10월 수원 재보선 때 정 대표는 매일 새벽 서울에서 수원까지 내려와 출근 인사를 했다"며 "한번하고 말겠지 그랬는데 매일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스킨십도 열심히 했다. 입당한 뒤 지금까지 소속 의원들과는 대부분 1~2번씩 식사자리를 만들었고, 대표가 된 뒤에는 새벽부터 밤까지 시간과 상관없이 의원들이나 당직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있다. 최근에는 초대받지 않은 한 계파의 모임에까지 참석해 자신이 화합주를 한바퀴 돌리는 등 기존 정치인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조해진 대변인은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정 대표는 이처럼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데다 편하고 솔직한 점도 있어 누구와도 소통이 잘 된다"고 말했다. 한 핵심당직자는 "정 대표가 원내대표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과 갈등문제를 털어놓으면서 조언을 구하고 도와 달라고 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며 "그걸 보고 '뒤통수 치는 정치는 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격식파괴'도 정 대표의 트레이드마크다. 대표가 되자마자 대표실의 소파를 치우고 원탁을 가져다 놓았다. 최근 무산되긴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3자회담을 제의한 것도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허심탄회한 대화로 정국 현안을 풀어보자는 소신이었다는 게 정 대표 측의 설명이다.
정 대표의 이 같은 움직임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나라당과 정 대표 자신이 품고 있는 한계 때문이다. 정 대표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의원은 당내에 3~4명밖에 되지 않는데, 친이(親李)와 친박(親朴)계가 거대한 울타리를 친 채 정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조해진 대변인은 "여권 주변이 계파별로 워낙 꽉 짜여 있어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 대표와 가까운 전여옥 의원은 "계파의 벽에 대해 정 대표가 몹시 안타까워하고 있다"며 "당직인선이나 위원회의 현안들을 국민들의 뜻이 아니라 계파의 뜻에 따라 결정하는 것을 바꾸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가 정치상황을 너무 순진하고 안이하게 본다는 시각도 있다. 영남권의 한 의원은 "여당 대표가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가 종합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적절하게 안배하는 것"이라며 '3자회담 제안'의 무모함을 예로 들었다.
영남권의 한 초선의원은 또 "지나치게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장점도 되지만 단점이기도 하다"며 "정 대표가 소규모 모임에서는 말도 재미나게 하고 사람을 쏙 빨려들게 하는데, 돌아서면 남는 게 없더라"고 말했다.
축구에 너무 집착한다는 비판도 있다. 당 사무처의 한 직원은 "처음 대표가 된 뒤 실·국장들과 상견례하는 자리가 있었다. 정치적 비전을 기대했는데, 옆에 앉은 한 국장에게 출신대학을 묻더니, '내가 그 대학과 축구를 많이 했다'는 식으로 잡담수준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정 대표 측은 이런 비판에 대해 "전부가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식의 정치문화에서는 정 대표가 어울리지 않겠지만, 상식과 순리의 정치에서는 정 대표의 리더십이 빛을 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 대표의 한 핵심측근은 "헝그리정신, 배수진 등을 정 대표가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한 중간당직자가 "지금까지 정 대표가 살던 동네와 한나라당이라는 동네는 전혀 다르다"고 한 것처럼 정치의 비정함과 잔혹함을 본인이 느끼고 뭔가 자신의 브랜드로 승부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정 대표의 한 측근은 "전학생이 학생회장으로 우뚝 서려면 던질 줄을 알아야 한다"며 "월드컵이나 인지도에 의존하는 정치 대신 정주영 회장의 반값아파트 같은 정책과 대결구도의 정치에서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대안세력으로서의 정치적 비전 등을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