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홍성군만 해도 670명중 108명이 예산 빼돌려"…
검찰 특별팀 구성
李대통령 "걸핏하면 정치 수사라고 비난"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지방의 토착비리 척결에 정부가 대대적으로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법무부, 법제처, 국민권익위원회의 내년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기초자치단체장 216명 중 10%가 당선무효로 중도에 물러났고 공기업에 근무하는 임직원 180명 중 51명이 구속됐다"면서 "이 같은 비리의 온상에는 지역토착 세력과 사이비 언론이 결부돼 있다"고 했다. 그는 "(충남) 홍성군만 해도 670명 가운데 108명이 집단으로 예산을 빼돌리는 데 가담했다. 어떤 직원은 4496만원을 빼돌려서 유흥비로 쓰고, 어떤 직원은 3941만원을 빼돌려 1700만원을 고급 유흥주점에서 썼다고 한다"면서 "국민들이 볼 때는 우리 지역도 그렇지 않을까 의구심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며 토착비리의 심각성을 강조한 것은 국가 선진화를 위해 토착비리 근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김 대변인은 "사람은 심장에 병이 들면 죽지만 모세혈관이 썩어도 고사한다"면서 "이 대통령은 토착비리 척결 없이 투명한 법치사회 구현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도 토착비리 근절을 강조했으나, 사정기관들이 그동안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지는 않았다. 그러나 법무부는 내년부터 오는 2012년까지 전국 고검 및 주요 지검에 전문수사팀을 만들어 토착 세력의 이권 개입과 공무원 비리를 철저히 수사하는 한편, 기업의 대규모 비자금 조성이나 비자금 유출 행위를 근절키로 했다.
이 대통령은 또 "중앙에서 예산을 많이 내려 보내도 지역서 공무원이 빼돌리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단속을 해야 하는데 (사정기관도) 연고에 묶여서 제대로 단속이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특히 "어느 지역 군 단위에서는 주간지가 4~5개나 된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있다"고도 했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와 관련, "사이비 언론 문제는 오래된 숙제"라면서 "실제로 그런 사이비 언론의 횡포에 대해서는 지역 차원에서 기업들이 견디기 어렵다는 민원이 쏟아져 들어온다고 할 만큼 많다"고 했다. 이 수석은 "자치단체장, 지방의원, 지역 기업체, 사이비 언론들이 다 얽혀서 개혁이 되지 않고 있다"면서 "어떤 면에서는 사정기관들도 중앙서 각광받는 큰 수사는 열심히 하지만, 진짜 민생차원의 수사는 소홀히 하고 구석에 묻혀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날 업무보고에 참석한 인사들도 지역 토착세력의 부정부패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단속과 처벌을 촉구했다. 이효원 서울대 교수는 "고위공직자나 지역토착세력 등 구조적·고질적 부패 범죄를 근절할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예산 및 방위사업 관련 비리에 대한 집중 단속이 요망된다"고 했다. 이창재 대검 수사기획관은 "지역 공직비리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관용 없는 엄정한 처리로 토착세력과 부패공무원, 사이비언론과의 연계 등 뿌리깊은 부패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정기관의 지방비리 수사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중되면 경우에 따라 정치적인 논란이 생길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최근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요즘 수사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걸핏하면 정치수사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수사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지 않으냐"면서 "흔들림 없이 철저히 수사에 임해달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권력형 비리와 고위공직자를 포함한 사회지도층 비리와 범죄에 대해 검찰이 더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면서 "고위직 공직자들의 비리를 없애야 한다는 게 많은 국민의 바람"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최근 민주당의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한나라당의 공성진 최고위원 등에 대한 검찰 수사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다만 "1심, 3심까지 무죄가 선고된 사건은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 사람의 억울함을 어떻게 보상해줄 수 있겠는가"라며 "수사 검사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임해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