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는 적이 불리할 때는 싸움을 하지 않는 법
무슨 고매한 병법가나 공·맹자의 군자지도(君子之道)에 나오는 어록 같지만 그게 아니다.
송나라 양공이 전쟁터에서 한 말이다.
후세사람들이 송양지인(宋讓之仁)이라 하여 쓸데없는 겸양심이나 인정을 비웃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적과의 싸움은 무조건 이기고 보아야 하는데, 이길수 있는 전쟁을 군자의 도리를 따지며 적이 진형을 다 갖출 때를 기다린 후 싸워 졌다니 비웃음 당할 만도 하다.
송양공에 대해서는 인물편에서 설명한 바 있다.
☞ [송양공]
송나라 양공이 중원의 맹주가 되고자 하는 야심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패자인 제환공이 죽기 전 송양공에게 제나라 세자 소(昭)의 뒷일을 맡겨 놓았던 것이다. 패자나라의 후계를 송양공에게 맡겼으니 송양공은 이때부터 자신이 무슨 큰 인물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제환공이 죽고 자식들간의 골육싸움이 벌어지자 송양공은 이를 해결한다고 제나라를 공격해 세자 소를 제나라 군위에 앉혔으니 이가 제효공이다.
보기좋게 제나라 문제를 해결한 송양공은 이를 대단한 공로로 여기고 기고만장했다. 가슴속에 야심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환공이 맡아서 하던 맹주 자리를 자기가 차지해도 좋다는 터무니없는 망상을 했다.
「패자가 되는 첫째 요건은 도의에 있지. 과인은 언제나 도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야. 그렇다면 내가 패자가 되지 말란 법도 없잖은가.」
그리하여 각 제후를 모아 놓고 자기가 맹주가 되었노라 선포할 결심을 하고 있었다.
사마 벼슬을 하던 목이와 상담했다. 목이가 깜짝 놀라며 양공을 만류했다.
「우리나라처럼 국세가 미약한 소국이 맹주가 되려 하는 것은 화를 자초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양공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해 가을 양공은 각 제후들을 송나라 땅 녹상(鹿上)에 불렀는데 중원이 아닌 남방의 초나라도 함께 초대하였다.
초성왕은 군사들을 이끌고 와 「소국인 송나라가 어찌 감히 맹주를 하겠다는 말이냐... 건방진 짓이로구나..」하면서 이런 저런 트집을 잡다가 송양공을 체포하고 초나라로 압송해 가 버렸다.
겨울에 겨우 용서를 받아 양공은 송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정나라가 초나라와 내통하자, 송양공은 회맹의 조목을 위반한 행위라 하여 정나라를 공격했다. 초나라가 정나라를 구하러 오자, 양공은 초나라 군대와 홍수에서 맞붙게 되었다.
송나라 군대는 이미 포진을 끝내고 있었으나 초나라 군대는 아직 강을 건너고 있는 중이었다.
목이가 지금이야말로 공격할 기회이니 공격명령을 하여 줄 것을 간하였으나 송양공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안되오, 적군이 모두 강을 건너올 때 까지 기다립시다.」
이윽고 초군이 도강을 끝냈지만 아직 진형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전하, 어서 공격명령을 내리소서. 지금도 늦지 않았나이다.」
목이가 또 진언했지만 송양공은 역시 허락하지 않았다.
「피아간에 정정당당히 진형을 갖춘 다음에 싸우는 것이 군자가 취하는 전투법이거늘 어찌 이토록 서두르시오?
군자는 상대의 약점을 노리지 않소. 적군의 진용이 정비되지 않은 틈을 타서 치는 것은 비겁한 일이오.」
결국 양공은 초나라 군대가 진용을 정비한 뒤에 공격했다. 송나라 군대는 크게 패하고, 양공도 허벅다리에 중상을 입고 말았다.
참담한 패전을 들은 중신들이 화가 나서 송양공이 목이의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데에 패전의 원인이 있다며 대들자, 송양공은 부상당한 허벅다리를 손으로 감싼 채 의연히 말하는 것이었다.
「들으시오. 군자는 적이 불리한 위치에 있을 때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며, 적이 진형을 갖추지 않았을 때도 전쟁을 해서는 안되는 법이거늘 덮어놓고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우매한 것들의 생각이오.」
목이가 말했다.
「전하, 지당하신 말씀이오나 전쟁은 이기고 보아야 하는 것이니이다. 전하의 말씀대로라면 아예 싸우지 말고 처음부터 적에게 항복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옵니다.」
양공이 정말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부상입은 허벅다리의 상처가 악화되어 다음해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송양공을 오패의 하나로 꼽는 사람들은 아마도 송양공의 군자적인 면과 그런대로 회맹을 주선하여 주왕조에 충성토록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난세일수록 실력이 필수조건이다.
뜻은 순수하고 고매하지만 송양공은 힘이 부족했고 또 시세의 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송양공이 한 행동은 후세에 비난 받을 만한 분수없는 돌출행동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쓸데없이 어진 체하고 명분만 내세우는 임금이 백성에게 얼마나 큰 손실을 주는가를 후세 사람들은 양공을 통해 경계로 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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