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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장 꼭 가려고 했는데…' 용산참사 순직 경찰 父

화이트보스 2010. 1. 10. 04:08

'영결식장 꼭 가려고 했는데…' 용산참사 순직 경찰 父

입력 : 2010.01.09 14:19 / 수정 : 2010.01.09 18:19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범국민장이 열리는 9일.

참사가 낳은 또다른 희생자인 고(故) 김남훈 경사의 아버지 김권찬씨(57)는 전날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단다. 일반인의 관심이 범국민장에 쏠린 이날 새벽 그는 홀로 아들이 묻힌 대전 현충원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김씨는 뉴시스와 전화인터뷰를 갖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격렬함과 회한, 평온함이 한데 섞여있었다.

용서와 화합을 실천하기 위해 영결식장을 찾을 계획이었던 김씨는 이날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자신의 헌화가 용산참사에 대한 경찰 측의 잘못을 일방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될까봐 두려워서다.

김씨는 임무에 충실했을 뿐인 아들이 일부 언론 등을 통해 가해자로 매도되는 것을 억울해 했다. 하지만 동시에 철거민들의 절박한 처지를 동정하기도 했다. 그는 화해와 용서를 말했다.

용산 철거민 참사 당시 경찰특공대원으로 진압작전에 참여했다가 숨진 고 김남훈 경사의 아버지 김권찬씨가 2009년 3월 9일 오전 관악구 원불교 신림교당에서 열린 '故 김남훈 영가 종재식' 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당초 영결식장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포기한 이유는?

"용서하고 화합하는 국민이 되고자 영결식장에 참석하려 했다. 그러나 경찰이 잘못했으니까 사죄하러 간다고 보여지는 게 두려워 포기했다. 경찰이 잘한 것은 빼고 경찰이 못한 것만 알려졌다. 우리 국민이 경찰 없이 편하게 잠들고 쉴 수 있나? 경찰이 있기에 편하게 쉴 수 있는 것이다."

"조용히 다녀오려 했다. 기사가 나가서 부담스러웠다. 영결식장 참석을 위해 경찰에 경호를 요청했었다. 경찰 아버지가 자식이 잘못해서 죽었다고 경찰이 뭘 잘못했기 때문에 사과하러 오는 것처럼 알려져 포기했다."

-경찰 특공대 투입으로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이 있다.

"질서를 어지럽히면 경찰이 투입된다. 경찰 투입됐다고 용산서 많은 희생이 발생했다는 말은 잘못 됐다. 8차선 도로에 벽돌을 던지고 새총을 쏘고 화염병을 던지는 현장에 경찰이 투입되지 않을 수 있나? 경찰이 가해자가 되고 이들이 피해자가 됐다."

-가족들 현황은 어떤가?

"아직 안정되지 못했다. 집사람은 아들이 죽은 뒤 심장병 그러니까 공포증이 생겨 누가 말 하나만 해도 깜짝깜짝 놀란다. 불만 켜기만 해도 마찬가지다. 대인 공포증도 있다. 딸이 항상 옆에서 따라다녀야 한다. 나도 아직 힘들지만 남자니까 견디고 있다."

-오늘 범국민장이 열리는 철거민 유족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제가 볼 때 용산참사 가해자들은 철거민이고 피해자는 경찰이다. 그러나 잘잘못을 떠나서 사람이 죽었다. 생활터전이 없어지니 시위를 하는 것을 이해한다. 단, 너무 과격했다는 점이 아쉽다. 새해 시작 전인 지난해 말 협상이 타결됐다는 것에 마음은 가볍다. 새해부터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이해하고 화합하는 국민이 됐으면 한다. 우리가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해해 이 모든 것들을 접고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으면 한다. 새해는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한다.

"용산참사유족과 경찰 모두 누가 피해자냐, 가해자냐 서로 주장하고 있지만 경찰은 맡은바 임무 따라 자리에 섰고, 그 분들은 생존권을 잃고 갈 곳도 의지 할 곳도 없기 때문에 그곳에 있었을 뿐, 타결이 된 이상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합된 국민이 됐으면 좋겠다."

-일각에선 철거민측 보상금과 경찰 보상금과의 형평성을 제기하고 있다.

"돈 문제는 자식을 보낸 아비 입장에서 할 말은 없다. 단 철거민측 유족은 대부분 50대를 넘긴 것으로 알고 있다. 제 자식은 32살이다. 어렵게 키웠는데 피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철거민이 많이 받고 경찰유가족은 적게 받았다는 것은 아직 생각하지 않았다. 그분들이 100억을 받든 200억을 받든 지금은 아들 생각밖에 없다. 생각 안 해 봤고 경찰에서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만 1년 동안 견뎌오면서 명성교회 김상호 목사님과 봉은사 명진 스님, 관악경찰서장님이 배려해 주셔서 그분들 덕에 견딜 수 있었다. 보상 문제는 용산사건이 모두 정리된 뒤 생각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