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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무덤

화이트보스 2010. 1. 13. 11:46

조조의 무덤

입력 : 2009.12.29 02:36

조조(曹操)가 어려서 방탕한 짓을 일삼자 삼촌이 조조 아버지 조숭에게 일러바친 일이 있다. 난감해진 조조는 어느 날 삼촌이 보는 앞에서 사지를 버둥거리며 "풍을 맞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동생으로부터 이를 전해 들은 조숭이 놀라 달려와 "풍을 맞았다니 웬일이냐"고 묻자 조조는 "풍이요? 삼촌이 제가 미워 꾸며댄 모양입니다"라며 시치미를 뗐다. 그 후 조숭은 동생의 말을 믿지 않게 됐고, 조조는 더욱 활개를 치고 다녔다.

▶조조가 포악한 동탁의 휘하에서 도망치다 친구 여백사의 집에 묵을 때였다. 밖에서 칼을 가는 듯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조조는 여백사의 아들들이 자기를 죽이려는 줄 알고 칼을 빼 모두 죽여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들은 조조를 대접하려고 음식을 장만하는 중이었다. 조조는 무안하고 비참한 기분에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남을 배신할지언정 남이 나를 배신하게 하지는 않겠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그려진 조조는 7척(당시 척도로 161㎝가량) 키에 볼품없는 빈상이다. 8척(184㎝) 유비에 훨씬 못 미치는 풍채다. 게다가 아무도 흉내 못 낼 꾀와 냉혹·비정함을 갖춘 인물이니 어느 모로 보나 소설에서의 인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 조조의 위(魏)나라는 중국 14개 주 중 10개 주(650만명)를 차지해 오나라 3개 주(230만명), 촉나라 1개 주(95만명)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역사의 승자였다. 결국 3국을 통일한 것도 위나라였다.

▶역사 속 조조는 군사전략가나 정치가로서는 유비나 손권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릇의 인물이었다. 그는 난세에서의 행동과 치세(治世)에서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알았다. 난세에선 도덕보다 능력이 중요하다며 인재가 있으면 적과 아군 가리지 않고 골라 썼다. 사람들을 때맞게 칭찬해 감동시킬 줄 알았고, 천하를 도모하려면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며 적은 물론 부하까지 태연히 속였다.

▶중국 허난(河南)성에서 조조의 진짜 무덤이 발굴됐다고 한다. 조조는 죽기 전 자기 무덤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72개 가묘(假墓)를 만들라고 유언해 그동안 진짜 무덤이 어디인지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지략과 임기응변으로 난세의 승자가 됐던 조조다운 마지막이 후세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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