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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경계를 넘어 미지의 땅에 서다

화이트보스 2010. 1. 17. 19:05

생사의 경계를 넘어 미지의 땅에 서다 [조인스]

2010.01.15 00:00 입력 / 2010.01.15 00:00 수정

2009 월간 <사람과 산> 동부 티베트 탐사대 3신
전 대원 동상 속에서 세계 최초 티베트 제푸초 빙하 탐사

12월 13일, ‘월간 <사람과 산> 동부 티베트 탐사대’가 세계 최초 제푸초 빙하 탐험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계속된 악천후 때문에 전 대원이 심각한 동상에 걸려 발가락을 절단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위험과 불확실성은 이미 각오한 터였지만 병상에서 세계 최초의 대가로 내주어야 할지도 모르는 검게 변한 발가락을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직도 시시각각 덮쳐오는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던 순간이 떠오른다는 대원들.
하지만 우리는 그 절박한 순간에도 미지의 땅을 가슴에 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혼미한 정신 속에서도 대원들은 반사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는 지도의 공백지를 최초로 알리려는 섬험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며, 기록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절박한 심정 때문이기도 했다.

5000미터 사면을 횡단 중인 탐사대 뒤로 제푸초빙하가 펼쳐진다.

금단의 땅을 세상에 알리고자 11월 25일 출국한 탐사대는 탐사 전 과정을 <월간 사람과 산> 홈페이지와 ‘조인스닷컴’을 통해 위성 중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 누구도 위치를 확정 지을 수 없는 곳으로 가기위한 통과의례인 원시림과 험한 지형은 첨단 기기들은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더군다나 나흘 동안 내린 폭설은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종일 눈을 헤치며 걸어보았지만 운행거리 4킬로미터를 넘지 못했다.
예상보다 탐사 기간에 길어지자 자연히 식량도 모자랐다. 설상가상! 빙하 끝에 다다랐을 때는 전 대원이 동상에 걸렸다. 발가락 색이 검게 변해가는 것을 보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퉁퉁 부은 발은 언 등산화에 밀어 넣고 일주일을 굶으며 탈출을 감행, 마지막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렇듯 뜻하지 않은 사고 탓에 위성중계에 차질을 빚은 점을 독자들에게 사과드리며 생사를 넘나들었던 이번 탐사기를 ‘조인스닷컴’을 통해 기고한다.

고난의 전주곡
“탐험은 지적 호기심에 대한 육체적 행위이다.” 영국의 전설적 탐험가이자 등반가인 크리스 보닝턴 경의 말이다.
12월 1일, 동부 티베트 유리(玉人 3100m)에 도착한 탐사대의 지적 호기심은 최고조에 달했다. 출발 전 지도가 닳도록 연구하고 상상했던 미지의 빙하가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맑고 온화한 날씨 속에서 우리는 내일부터 시작될 카라반을 준비했다.
제푸초 빙하는 운행거리 56킬로미터의 긴 계곡이다. 현지인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 바로는 차세(4000m)까지 이틀간 말을 타고 갈 수 있고 이후부터는 빙하지대라 현지인들도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말을 구하기 위해 말몰이꾼과 가격흥정을 마친 후 출발 시각을 다음날 오전 7시로 결정했다. 하지만 말몰이꾼으로부터 “빙하에 들어가면 신체 일부를 잃는다”는 이 지역 전설을 전해들은 가이드는 계속해서 불길한 징조라며 안절부절 하지 못한다.
험한 지형이 처음이라는 그에게 전설은 전설일 뿐이라고 안심시키고 별이 쏟아지는 유리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쿠룬나패스 정상에 선 대원들. 왼쪽부터 차정호, 김용남(가이드), 지현호 PD.


12월 2일, 탐사대는 이른 아침 말 세 마리를 타고 출발했다. 4시간의 운행으로 제푸마을에 도착한 우리는 점심을 먹은 후 제푸초계곡으로 향했다.
계곡에 들어서자 거대한 원시림은 장관이었다. 동부 티베트에서 수림이 가장 많은 곳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은 과장이 아니었다.
길은 수림사이로 비교적 잘 나있었다. 탐사 전 이곳에 길이 없으면 탐험 기간이 길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가 되었다. 현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 길이 난 것은 몇 해 전. 내다 팔 것이 없는 이 지역 사람들이 돈벌이를 위해 벌목을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계곡에는 쓰러진 나무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계속 숲길을 따라 고도를 올린 지 10시간, 우리는 3600미터의 첫 번째 막영지에 도착했다. 작은 오두막 앞에 있는 초지에 텐트를 친 탐사대는 오늘 운행 루트를 지도에 그려 넣었고 앞으로 갈 길을 예상해 보았다.
계획대로라면 내일 오전 우리는 일본의 탐험가 나카무라 다모츠가 2000년대 초 탐사한 자롱빙하를 넘어서 미지의 세계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12월 3일, 흥분과 불안감을 안고 4시간의 운행으로 자롱빙하 입구에 섰다. 나카무라는 이곳까지 4일이 걸렸다고 일본 <알파인 뉴스> 특별판 에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유리마을에서 이곳까지는 이틀도 안 되는 거리였고 접근 또한 쉬운 편이었다.
우리는 자롱빙하의 6000미터급 미등봉들을 사진에 담은 후 2시간을 더 운행해 넓은 개활지 앞에 섰다. 티베티안 외에는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땅이었으며 지도의 공백지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우리는 이번 탐험이 끝나면 영국의 왕립지리협회와 <내셔널지오그래픽> 지를 통해 탐험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었다. 그래 전 대원이 지형분석에 더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주위에 솟은 5-6000미터급 미등봉들의 사진을 찍고 수첩에 꼼꼼하게 산 모양을 스케치했다. 수없이 상상했으며 간절히 원하던 미지의 세계가 우리의 탐험 노트에 기록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4시간을 오르자 말몰이꾼이 오두막 앞에서 운행을 멈춘다. 이유를 묻자 이곳이 차세라고 한다.
하지만 말이 더 갈 수 있을 것 같아 내일 조금만 더 운행하자고 하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오두막 위쪽으로는 제푸호수가 있고 호수를 넘으면 빙하지대라 말이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숨기지 못한 빙하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듯 보였다. 짐을 푼 말몰이꾼들은 내일 아침 일찍 유리로 내려가겠다고 한다.

금단의 지역인 유리로 향하는 탐사대의 지프가 힘차게 고개를 오르고 있다.

12월 4일, 이른 새벽 인기척에 깨어나니 말몰이꾼들이 하산을 서두른다. 우리도 본격적인 도보 탐사를 위해 장비와 식량을 정리했다. 꼭 필요한 만큼만 챙겼기에 가이드는 남은 식량을 말몰이꾼에게 주자고 했다. 하지만 필자는 순간적으로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것은 마치 폭풍을 예측하는 동물들의 직감 같은 것이었다. 남은 식량과 장비를 오두막에 데포시킨 후 제푸호수를 향해 출발했다.
“쉬윅~”
탐사대가 운행을 시작하자마자 하늘이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 온화하던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강한 눈보라를 퍼붓기 시작한다.
음침한 기운은 점점 고조되었고 이는 앞으로 다가올 고통과 고난의 전주곡 같았다.

글 임성묵 월간 <사람과 산> 기자 사진 탐사대


→세계최초 동부티베트 보토이창포 횡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