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수적인 그들이 논쟁속으로…대한민국 판사의 세계
매일경제 | 입력 2010.01.23 04:03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에는 판사가 재판을 하는 원칙을 담고 있다. 국회 폭력사태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당직자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진 데 이어 강기갑 의원에 대한 공무집행 방해 무죄 판결과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로 법원과 검찰 간 갈등이 촉발되더니 'PD수첩' 무죄 판결로 인해 법ㆍ검 갈등은 전 사회를 흔드는 문제로 번지고 있다.
이에 대해 좌파 판사들이 득세하면서 사법 정의가 흔들린다는 지적이 높지만 법원 내부에서는 오히려 법원이 사회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건강함의 표시라고 보고 있다. 법조계 내부에서는 이 문제를 좌편향 판사들의 농단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경직된 법원 사회의 특수성이 사회 분위기와 동떨어진 판결을 낳았다고 보고 있다.
◆ 심판하는 자의 피할 수 없는 엘리트 의식
="심판을 당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심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소위 잘나간다는 법원행정처 중진 판사가 사법연수원 연수생들에게 판사가 될 것을 권유하며 이같이 이야기했다.
판사는 헌법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국민의 잘잘못을 가리고 갈등을 해결한다. 그만큼 높은 도덕성과 판단력이 요구된다. 한국 사회는 이러한 자질을 갖춘 판사를 선발하기 위해 사법시험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을 통과한 후에도 소수 사람들에게만 판사라는 명예가 돌아간다.
해마다 선발하는 판사는 100여 명. 사시 통과자가 1000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엘리트 중 엘리트만이 모인 집단인 셈이다.
법관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법관 14명 중 서울대 법대 출신이 아닌 사람은 김지형 대법관이 유일하다. 심판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판단력이 우수해야 하며 높은 도덕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사람을 선발하기 위한 방법을 찾다 보니 비교적 동질한 엘리트 집단이 형성되었고 판사 세계는 사회 일반과는 유리된 그들만의 리그가 만들어진 것이다.
◆ 외부와 접촉 없는 판사 세계
=한 새내기 판사는 "임용 후 한동안 밥 먹으러 가자는 전화 말고는 거의 전화를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판사 사회가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검사만 하더라도 변호인이나 민원인, 피의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접촉한다. 수사를 하다 보면 주변 관계를 알기 위해, 정보를 캐기 위해 만나야 하는 사람은 더욱 많아진다.
하지만 판사는 그렇지 않다. 판결을 앞두고서는 더욱 그렇다. 검토해야 할 서류도 많거니와 자칫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없다는 우려에서다. 상당수 판사들은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법ㆍ검 갈등이나 사법부 독립 논란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보수단체 회원이 이용훈 대법원장의 관용차량에 계란을 던진 사건을 모르는 판사도 있었다. 일반 기업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관의 조직문화를 묻자 '따로 놀기'라고 답했다. 법원장이나 부장판사가 평판사에게 판결에 대한 지시는 물론 서류작업조차 부탁하지 않는다.
후배 판사에게 존칭을 쓰는 것도 판사들만의 문화다. 법원 전체 회식이 잡혀 있더라도 개인적인 일이 있거나 가고 싶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불참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곳이 판사 조직이다. 최근 법원이 국민 정서와는 다소 동떨어진 판결을 한 데에도 이와 같은 정서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 성적 지상주의가 낳은 괴리감 여전
=초엘리트 집단인 판사 세계에서도 서열은 정해진다. 바로 연수원 성적이다. 독립된 재판을 할 수밖에 없는 법원 조직의 특성상 개인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척도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조인들 사이에는 "판사들은 산에 갈 때도 성적 순으로 줄을 지어 간다"는 말이 나온다.
법원 내부에서는 이러한 성적주의 때문에 법관들이 법원장이나 부장판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립된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어차피 연수원 성적으로 이미 어느 정도 서열이 정해졌기 때문에 승진을 위해 코드 맞추기 판결을 내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명백한 법리 적용의 오류가 아닌 한 하급심이 상급심에서 뒤집어진다고 인사상 불이익도 없다. 법관의 임기는 헌법으로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판사들은 임기를 채우는 것은 물론 채우지 않고 나가도 판사 때보다 훨씬 높은 보수를 받는 변호사로 변신할 수 있다. 전관 예우라는 비판도 있지만 재판관의 심리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변호사가 판사 출신 변호사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뢰인들은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판사 출신 변호사를 선호한다.
하지만 헌법에 의해 보장된 임기와 독립권으로 인해 생기는 안정성이 성적 지상주의와 만나 일으키는 화학반응은 상당히 심각하다. 성적을 제외하면 상급자의 눈치를 볼 일도 적은 데다 나가서도 생활이 보장되니 법원 조직은 그야말로 성역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판사들의 고뇌도 심각
=판사들의 술자리는 검찰만큼 강압적(?)이지는 않지만 그 강도는 검찰만큼 세다. 알아서 마신다는 의미다. 신분도 안정되고 상사 눈치도 보지 않는 꿈 같은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이처럼 심하게 술을 마시는 이유는 그만큼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이다. 한 중견 판사는 "판사는 매일 심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심판을 받는 사람"이라며 판사라는 직업의 고충을 말했다. 실체적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당사자는 물론 상급심과 역사로부터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 중견 판사는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자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법 격언을 해가 바뀔 때마다 다이어리에 적어 놓고 산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정 아래에 서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법관의 모습은 혹시라도 잘못된 판결을 내리지 않을까 고민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강압적이고 독선적인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판사의 판결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물론 국가를 뒤흔든다는 점을 생각하면 판사가 권위만 내세울 게 아니라 국민에게 더욱 진솔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초임 판사는 "독립된 재판을 위한 판사들의 문화가 자칫 국민과 괴리된 우리만의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든다"며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력법관제 도입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용훈 대법관은 과거 신임 판사들에게 "재판권을 수여한 주체는 국민이고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을 해야 한다"며 "결과가 공평하고 타당하다고 해서 훌륭한 재판이 아니라 사람의 뜨거움 숨결이 느껴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최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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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판하는 자의 피할 수 없는 엘리트 의식
="심판을 당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심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소위 잘나간다는 법원행정처 중진 판사가 사법연수원 연수생들에게 판사가 될 것을 권유하며 이같이 이야기했다.
판사는 헌법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국민의 잘잘못을 가리고 갈등을 해결한다. 그만큼 높은 도덕성과 판단력이 요구된다. 한국 사회는 이러한 자질을 갖춘 판사를 선발하기 위해 사법시험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을 통과한 후에도 소수 사람들에게만 판사라는 명예가 돌아간다.
해마다 선발하는 판사는 100여 명. 사시 통과자가 1000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엘리트 중 엘리트만이 모인 집단인 셈이다.
법관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법관 14명 중 서울대 법대 출신이 아닌 사람은 김지형 대법관이 유일하다. 심판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판단력이 우수해야 하며 높은 도덕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사람을 선발하기 위한 방법을 찾다 보니 비교적 동질한 엘리트 집단이 형성되었고 판사 세계는 사회 일반과는 유리된 그들만의 리그가 만들어진 것이다.
◆ 외부와 접촉 없는 판사 세계
=한 새내기 판사는 "임용 후 한동안 밥 먹으러 가자는 전화 말고는 거의 전화를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판사 사회가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검사만 하더라도 변호인이나 민원인, 피의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접촉한다. 수사를 하다 보면 주변 관계를 알기 위해, 정보를 캐기 위해 만나야 하는 사람은 더욱 많아진다.
하지만 판사는 그렇지 않다. 판결을 앞두고서는 더욱 그렇다. 검토해야 할 서류도 많거니와 자칫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없다는 우려에서다. 상당수 판사들은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법ㆍ검 갈등이나 사법부 독립 논란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보수단체 회원이 이용훈 대법원장의 관용차량에 계란을 던진 사건을 모르는 판사도 있었다. 일반 기업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관의 조직문화를 묻자 '따로 놀기'라고 답했다. 법원장이나 부장판사가 평판사에게 판결에 대한 지시는 물론 서류작업조차 부탁하지 않는다.
후배 판사에게 존칭을 쓰는 것도 판사들만의 문화다. 법원 전체 회식이 잡혀 있더라도 개인적인 일이 있거나 가고 싶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불참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곳이 판사 조직이다. 최근 법원이 국민 정서와는 다소 동떨어진 판결을 한 데에도 이와 같은 정서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 성적 지상주의가 낳은 괴리감 여전
=초엘리트 집단인 판사 세계에서도 서열은 정해진다. 바로 연수원 성적이다. 독립된 재판을 할 수밖에 없는 법원 조직의 특성상 개인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척도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조인들 사이에는 "판사들은 산에 갈 때도 성적 순으로 줄을 지어 간다"는 말이 나온다.
법원 내부에서는 이러한 성적주의 때문에 법관들이 법원장이나 부장판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립된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어차피 연수원 성적으로 이미 어느 정도 서열이 정해졌기 때문에 승진을 위해 코드 맞추기 판결을 내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명백한 법리 적용의 오류가 아닌 한 하급심이 상급심에서 뒤집어진다고 인사상 불이익도 없다. 법관의 임기는 헌법으로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판사들은 임기를 채우는 것은 물론 채우지 않고 나가도 판사 때보다 훨씬 높은 보수를 받는 변호사로 변신할 수 있다. 전관 예우라는 비판도 있지만 재판관의 심리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변호사가 판사 출신 변호사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뢰인들은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판사 출신 변호사를 선호한다.
하지만 헌법에 의해 보장된 임기와 독립권으로 인해 생기는 안정성이 성적 지상주의와 만나 일으키는 화학반응은 상당히 심각하다. 성적을 제외하면 상급자의 눈치를 볼 일도 적은 데다 나가서도 생활이 보장되니 법원 조직은 그야말로 성역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판사들의 고뇌도 심각
=판사들의 술자리는 검찰만큼 강압적(?)이지는 않지만 그 강도는 검찰만큼 세다. 알아서 마신다는 의미다. 신분도 안정되고 상사 눈치도 보지 않는 꿈 같은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이처럼 심하게 술을 마시는 이유는 그만큼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이다. 한 중견 판사는 "판사는 매일 심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심판을 받는 사람"이라며 판사라는 직업의 고충을 말했다. 실체적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당사자는 물론 상급심과 역사로부터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 중견 판사는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자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법 격언을 해가 바뀔 때마다 다이어리에 적어 놓고 산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정 아래에 서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법관의 모습은 혹시라도 잘못된 판결을 내리지 않을까 고민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강압적이고 독선적인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판사의 판결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물론 국가를 뒤흔든다는 점을 생각하면 판사가 권위만 내세울 게 아니라 국민에게 더욱 진솔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초임 판사는 "독립된 재판을 위한 판사들의 문화가 자칫 국민과 괴리된 우리만의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든다"며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력법관제 도입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용훈 대법관은 과거 신임 판사들에게 "재판권을 수여한 주체는 국민이고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을 해야 한다"며 "결과가 공평하고 타당하다고 해서 훌륭한 재판이 아니라 사람의 뜨거움 숨결이 느껴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최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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