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약속 지키지 않는 대법원장
이상한 무죄, 억울한 옥살이 … 대혼란
법원 권위 지킨 20년
권위는 누가 지키나. 총칼도 법전도 아니다. 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지켜주지 못한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무너지니까 권위도 따라서 무너져 내렸다. 이명박 대통령도 광우병 촛불난동 때 권위의 위기를 겪었다. 법과 질서를 지켜내지 못하니 대통령 권위가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원칙으로 불법 파업을 이겨내니 권위가 살아났다. 김형오 국회의장도 그러했다. 점거세력으로부터 국회를 지켜내지 못했을 때 권위는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결연히 의장석을 지키며 밤을 새우니 권위가 다시 살아났다. 야당이 점거할 수가 없었다. 대법원장이라고 다를까. 대법원장의 권위, 사법부의 권위는 스스로 지켜내는 것이다.2005년 9월 국회 인사청문회장.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이 이용훈 대법원장 후보자에게 물었다. “우리법연구회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후보자는 답했다. “제가 지명이 된 다음에 우리법연구회의 연장자들한테 ‘법원에 소위 이런 단체가 있어선 안 된다. 젊은 법관들은 모르겠지만 법원의 소위 부장판사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젊은 법관들 하고 어울려서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래서 젊은 법관들은 모르지만 연장자들은 탈회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법원장이 국민 앞에 천명한 방침은 그러나 지금 실현되지 않고 있다. 우리법연구회에는 부장판사급 회원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오재성 회장은 성남지원, 문형배 전 회장은 부산지법 부장판사다. 대법원장은 법관 인사권이란 결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강력한 지휘자가 왜 국민에게 한 약속을 실현하지 못하나. 법원의 기강을 세우려는 의지가 없는가, 아니면 영(令)이 서지 않는 것인가. 청문회에서 이용훈 후보자는 우리법연구회를 “법원에 있어선 안 되는 단체”로 규정했다. 그러나 그 단체는 오히려 ‘이용훈 시대’에 부흥기를 맞았다. 문형배 전 회장은 “다수 회원이 지지하는 대법원장이 취임하셨고 우리 연구회는 주류의 일원으로 편입됐다”고 썼다.
사법부 권위는 공정과 균형에서 나온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화이트 칼라(white collar·사무직) 범죄에 대한 엄단을 강조했다. 이런 건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다른 범죄도 똑같이 제대로 벌을 받아야 균형 있는 사법부다. 그런데 이 균형이 위협받고 있다. 강기갑, 시국선언 전교조, 광우병 PD수첩은 무죄를 받았다. 촛불난동 주동자 중에서도 감옥에 간 이는 거의 없다. 반면 현대차 로비 사건의 ‘화이트 칼라’ 피고인들은 대법 무죄판결까지 수백일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유죄판결이 ‘화이트 칼라 범죄 엄단’ 지침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조되는 판결들이 나오니 사법부 균형이 의심을 받는 것이다.
2000년 12월 미국의 역사는 플로리다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대선투표 후 한 달이 지났건만 플로리다 검표가 여전히 혼란이었기 때문이다. 국민은 부시와 고어로 두 동강 나 있었다. 플로리다 주법원이 수(手)검표를 결정하면서 선거 결과는 짙은 안갯속으로 들어갔다. 바로 그때, 연방대법원이 5대4로 수검표를 중단시켰다. 고어 지지자들에겐 충격이었다. 수검표를 하면 고어가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고어와 민주당은 깨끗이 승복했다. 연방대법원의 권위를 거스를 수 없었던 것이다. 연방대법원이 분열로부터 미국을 구했다.
대법원장은 윌리엄 렌퀴스트였다. 그는 1986년부터 20년 동안 대법원장을 지냈다. 그의 재임 중 대법원의 보수적인 판결에 대해 진보세력이 비판을 한 적은 많다. 그러나 누구도 ‘렌퀴스트 사법부’의 권위를 의심하진 않았다. 있는 법을 없는 것으로 하거나 눈에 보이는 증거에 눈감아 버리는 이상한 판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판사는 상원 청문회가 미리 걸러냈겠지만 청문회를 빠져나와도 렌퀴스트가 그냥 두질 않았을 것이다.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