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의 연구시설 2011년 준공 목표
○ 파이로프로세싱은 왜 등장했나?원자력발전소는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핵연료(우라늄)를 사용한다. 핵연료는 원자로에서 3년쯤 태우면 수명이 다한다. 그 뒤에는 ‘쓰레기’가 되기 때문에 버려야 한다. 이 쓰레기를 ‘사용 후 핵연료’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용 후 핵연료를 아무 데나 버릴 수 없다. 타지 않은 우라늄을 비롯해 플루토늄 넵투늄 아메리슘 퀴륨 같은 방사능 물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사용 후 핵연료를 버릴 쓰레기장을 마련하지 못했다. 방사능 유출을 막기 위해 원자로 내부에 물을 가득 채운 ‘수영장’을 만들고 그 안에 차곡차곡 쌓아두기만 했다.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사용 후 핵연료에 손끝 하나 대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는 원전 20기가 있는데, 2009년 기준으로 사용 후 핵연료가 1만 t을 넘었다. 수영장에 쌓을 수 있는 사용 후 핵연료는 1만2561t에 불과하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2016년엔 수영장이 포화된다. 수영장을 대신할 새로운 쓰레기장을 짓거나 사용 후 핵연료의 양을 대폭 줄여야 한다. 전문가들은 파이로프로세싱으로 사용 후 핵연료의 양을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 파이로프로세싱은 어떤 기술인가?파이로프로세싱의 핵심은 마치 종이나 캔, 유리를 재활용하듯 사용 후 핵연료를 재활용하는 것이다. 사용 후 핵연료에는 우라늄(93%)이 가장 많고 플루토늄(1.2%)을 비롯해 넵투늄 아메리슘 퀴륨(이상 0.2%) 등 30여 종의 원소가 들어 있다. 이들은 일종의 고체 상태다. 이들을 금속으로 바꾼 뒤 500도 이상의 고온에서 끈적끈적한 용융염에 넣고 전기를 흘려주면 금속이 전극에 붙어 나온다. 즉 우라늄과 플루토늄 넵투늄 아메리슘 퀴륨 등 방사능 물질을 다시 추출해 핵연료로 재활용한다는 것이 파이로프로세싱의 핵심이다. 가정에서 나온 쓰레기에서 종이 페트병 캔 등을 분리해 재활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정말 핵폭탄을 만드는 데 쓰이지 않을까?좋은 기술인 것 같은데 미국은 왜 이 기술에 흔쾌히 동의하지 않는 걸까. 사용 후 핵연료에 들어 있는 플루토늄과 관계가 있다. 미국은 파이로프로세싱을 하는 과정에서 플루토늄을 따로 추출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사용 후 핵연료에 들어 있는 우라늄(U238)은 핵분열을 하지 않아 핵무기로 바로 사용할 수 없지만 플루토늄은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원자력연구원 김호동 부장은 “열역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플루토늄은 사용 후 핵연료 안에서 넵투늄 아메리슘 퀴륨 등과 함께 초우라늄원소(우라늄보다 원자번호가 큰 원소)로 한데 섞여 있다. 이들은 전위차가 0.1mV(밀리볼트·1mV는 1000분의 1V) 이하로 거의 같아 파이로프로세싱 기술로는 하나씩 분리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김 부장은 “파이로프로세싱은 아직 개발 단계의 기술”이라면서 “세계 어디에서도 파이로프로세싱 시설을 지어 실험으로 검증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우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핵연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파이로프로세싱의 기술력을 검증할 수 있는 연구시설(PRIDE)을 2011년까지 지을 방침이다.
○ 사용 후 핵연료를 처리하는 다른 방법은 없나?파이로프로세싱 대신 지하 500∼1000m 깊이에 처분장을 만들어 사용 후 핵연료를 묻을 수도 있다. 실제로 핀란드는 수도 헬싱키의 서북쪽에 있는 올킬루오토 섬에 2012년을 목표로 세계 최대 규모의 원전을 지으면서 사용 후 핵연료 처분장도 함께 건설하기로 했다. 스웨덴도 작년 6월 지하 처분장이 들어설 지역을 확정했다. 하지만 지하 처분장은 일시적인 방편일 뿐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지하 처분장도 언젠가는 포화되기 때문이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지하 처분장은 1만 t 규모이며, 미국이 추진했던 유카 산 처분장은 6만3000t 규모다. 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2100년경 우리나라가 배출할 사용 후 핵연료는 10만 t에 이른다.
늘어나는 사용 후 핵연료의 양을 줄이기 위해 재처리 기술을 사용할 수도 있다. 재처리는 사용 후 핵연료를 질산에 녹여 액체 상태로 만든 뒤 유기용매를 이용해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추출한다. 사용 후 핵연료를 다시 핵연료로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파이로프로세싱과 같지만 재처리 과정에서는 핵폭탄의 원료가 되는 순수 플루토늄을 분리해낼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방법은 공식적으로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일본에만 허용돼 있다.

사용 후 핵연료는 우라늄을 비롯해 플루토늄 넵투늄 아메리슘 퀴륨 등 30여 종의 원소로 구성된다. 이들 원소를 금속으로 바꾼 뒤 500도 이상 고온의 용융염에 넣고 전기를 걸어주면 금속이 녹아 전극에 붙는다. 이를 회수하면 원하는 원소를 얻을 수 있다. 우라늄이 가장 먼저 녹아 나오고, 플루토늄 등이 한데 섞인 초우라늄원소가 뒤이어 추출된다. 자료 한국원자력연구원 |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