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대한민국 의료계의 트렌드는 '첨단 의술'이다. 대형병원마다 로봇 수술, 첨단 방사선 장비 등을 경쟁하듯 들여오고 있다. 환자는 첨단 장비를 이용한 시술을 통해 우수한 치료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일부 첨단 시술법은 검증이 끝나지 않았다는 우려도 있다. 첨단 기기를 이용한 다양한 최신 의술을 분석했다.
우리나라는 로봇 수술의 세계적 '메카'이다. 현재 아시아 전체에 보급된 수술용 로봇의 50% 이상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다. 의료계는 22개 병원에 25대 정도가 도입돼 있다고 추정한다. 모두 미국 인튜이티브사의 다빈치 기종이다. 수술 건수도 압도적이다. 2005년 세브란스병원에서 로봇 수술을 처음 시행한 뒤 지금까지 최소 6000건 이상의 암 수술을 로봇이 한 것으로 추산된다. 외국에선 대부분 전립선암에만 로봇을 활용하는데, 우리나라는 갑상선암, 위암, 대장암, 두경부암 등 '못 하는' 로봇 수술이 없을 정도다. 세계 최고 의술을 공인받는 미국 대학병원 의료진이 로봇 수술을 견학하러 서울행 비행기를 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 ▲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로봇 수술이 가장 활발하다. 세브란스병원 외과 의료진이 지난 5일 다빈치 로봇으로 직장암 수술을 하는 모습. 고가인 로봇을 보호하기 위해 비닐커버를 씌웠다. /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spphoto@chosun.com
- ▲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로봇 수술이 가장 활발하다. 세브란스병원 외과 의료진이 지난 5일 다빈치 로봇으로 직장암 수술을 하는 모습. 고가인 로봇을 보호하기 위해 비닐커버를 씌웠다. /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spphoto@chosun.com
- 왜 한국이 세계에서 로봇 수술이 가장 활발한가?
한국이 로봇 수술 분야 선두주자로 떠 오른 이유는 1990년대부터 축적된 복강경 수술 노하우 덕분이다. 로봇 수술은 원리상 '업그레이드된 복강경 수술'이라 할 수 있어, 복강경에 익숙한 한국 의사들은 기본적으로 이 수술법에 친숙하다. 서양인은 동양인보다 환자의 체구가 커서 복강경 수술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일본은 이제 복강경 수술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한국 환자가 최신 의료 장비를 선호하는 '얼리 어답터'라는 점도 이유다. 대학병원 관계자들은 "우리나라 환자들은 병원이 갖춘 의료 장비로 병원 수준을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이유로, 요즘은 중소 대학병원도 앞다퉈 수술용 로봇을 도입하고 있다.
로봇 수술 적용 범위가 외국보다 넓은 이유는?
로봇 수술의 90% 이상을 전립선암 등 비뇨기암에 쓰는 미국·유럽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암에 로봇을 활용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30억원이 넘는 로봇 가격 때문이다. 매년 로봇 1대당 150~200건 이상 수술해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다. 서양은 전립선암이 남성암 1위이지만, 한국은 비뇨기계통 암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낮아 다른 암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우리나라 젊은 의사들이 새로운 수술법 개발과 도입에 적극적이라는 점도 이유이다. 많은 대학병원에서 같은 진료과목 중 노장 교수보다 소장 교수들이 적극적으로 수술한다. 이런 수술 경험이 충분히 쌓이고 학문적으로 인정 받으면 향후 우리나라 의료산업의 국제 경쟁력 확보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유행처럼 퍼지는 로봇 수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타당성이 있다. 전립선암을 제외한 대부분 암의 경우 아직 재발률, 장기 생존률 등에 대한 엄밀한 학술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등 의료 선진국은 로봇 수술을 확대 적용하지 않고 우리나라를 지켜보고 있다. 한국이 외국의 안전성 시험 대상이 되는 셈"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로봇 수술이 모든 암에 무조건 효과적인 것도 아니다. 난소암, 폐암, 간암 등 외과 수술 외에 장기간의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가 필요한 암은 로봇 수술을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강하다. 로봇은 장기를 모두 떼어내는 수술보다 세밀하게 절개하고 꼬매는 것이 필요한 부분 절제수술에 더 유용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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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복 수술보다 수술 결과가 좋은가?
로봇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들은 대체로 "개복수술 보다 5~7배 비싼 비용만 빼면 단점은 없고 장점은 많다"고 말한다. 로봇 수술은 출혈·감염 등의 위험이 적고, 개복 수술보다 신경을 잘 보존할 수 있다. 따라서 회복도 빠르다. 전립선암의 경우, 요실금이나 발기부전 등 수술 후 나타날 수 있는 후유증에서 회복되는 기간이 일반 수술은 6개월~1년, 로봇수술은 조금 더 빨리 회복된다.
또, 일반 수술은 수술 시간과 집도 중 수혈 여부, 환부의 육안 관찰 등으로 수술이 성공적으로 되고 있는지 파악하지만, 로봇 수술은 수술 전 과정이 영상 정보로 정확히 기록되기 때문에 수술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실수는 없었는지 등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미용 측면에서도 긴 수술 자국을 남기지 않는 로봇 수술이 탁월하다. 특히, 갑상선암에 걸린 여성의 경우 목에 흉터를 남기지 않아도 되는 로봇을 선호한다.
로봇 수술 결과를 개복 수술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전립선암의 경우, 로봇 수술 결과는 개복 수술과 동일하거나 우수하다고 국제적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다른 암의 경우, 로봇 수술과 일반 개복 수술의 성적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로봇 수술의 역사가 짧은 이유도 있지만, 로봇 수술은 초기 암이나 젊은 환자가 많은 반면 개복 수술은 병기가 오래 되거나 나이가 많은 환자가 많아 예후를 직접 비교 평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봇을 들여놓은 병원끼리 수술 건수 경쟁에 집착하기보다 의료계 전체가 로봇 수술의 정확한 효과와 장단점, 적용 범위 등을 체계적으로 연구 분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금숙 헬스조선 기자 lks@chosun.com
※ 도움말=나군호 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교수, 홍준혁 서울아산병원 비뇨기과 교수, 김선한 고대안암병원 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