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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바위~천왕봉~세석~한신골

화이트보스 2010. 2. 25. 12:41

하동바위~천왕봉~세석~한신골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 백무동마을은 함양 마천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산행기점이다. 무엇보다 88올림픽고속도로 지리산 나들목에서 30분이면 닿을 수 있을 만큼 교통이 좋고,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과 철쭉과 설화로 이름난 세석평전을 경남에서 가장 빨리 오를 수 있는 하동바위 코스와 한신계곡 코스의 기점이기 때문이다.

백무동 기점 원점회귀 산행은 대개 하동바위 코스와 한신계곡 두 가닥을 잇는 식으로 한다. 천왕봉 일출이 목표라면 하동바위 코스를 따라 장터목대피소에 오른 뒤 천왕봉에 올랐다 다시 장터목으로 내려와 주능선을 타고 세석대피소까지 뽑은 다음 한신계곡으로 하산하도록 한다.

반면 세석대피소를 숙박지로 예약했다면 한신골을 타고 세석평전에 올라선 다음 대피소에서 하룻밤 묵고 이튿날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에 올라섰다 다시 장터목으로 내려와 하동바위 코스로 하산하도록 한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기회가 주어진다는 천왕일출이 단연 압권이기는 하지만 세석대피소에서 20분 거리인 촛대봉에서 맞이하는 일출 또한 오랜 추억으로 남을 만큼 감동적이다.

▲ 하동바위를 지나 참샘으로 향하는 등산인들.

참샘에서 식수 준비하든지 생수 구입

산행 기점인 백무동은 하얀 안개가 수시로 낀다는 의미의 ‘白霧’, 예전부터 무당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라 하여 ‘百巫’, 가까이 있는 하봉~중봉 능선이 삼국시대 국경으로서 무기와 관련된 ‘武’자를 사용해 ‘百武’동이라 불리기도 한다.

서울발과 함양발 노선버스가 서는 대형 주차장에서 펜션과 식당 사이로 난 널찍한 찻길을 따라 300m쯤 오르면 백무동 탐방안내소가 나타나고 곧 이어 한신계곡과 하동바위 코스가 나뉘는 산악인의 쉼터 갈림목(장터목 5.8km, 세석 6.5km)에 닿는다. 여기서 산악인의 쉼터를 끼고 왼쪽 오르막길로 접어들면 야영장을 지나 계곡으로 들어선다.

참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수종이 숲을 이룬 평범한 계곡 길을 따라 약 1시간 오르면 제법 거대한 바위가 우뚝 솟아 앞을 가로막는다. 옛날 지리산 탐승에 나섰던 하동군수가 떨어져 죽었다는 데에서 이름이 유래한 하동바위(해발 900m, 참샘 0.8km, 장터목 4km, 백무동 1.8km)다.

▲ 하동바위 코스에서 유일하게 식수를 구할 수 있는 참샘. 샘터를 지나면서 산길이 가팔라진다.

하동바위에서 철다리를 건너면서 산길은 사뭇 가팔라진다. 급경사 사면에 난 길이 대부분 크고 작은 돌멩이 턱을 이루고 있는 데다 겨울이면 눈이 녹았다 얼었다 하여 매우 미끄러운 구간이다. 급경사 오르막을 따르는 사이 어느 샌가 계곡이 사라지고 된비알이 한 풀 꺾일 즈음이면 널찍한 공터가 나오고 한쪽에 맑은 물이 파이프를 통해 흘러나오는 참샘(해발 1,125m, 백무동 2.6km, 장터목 3.2km)에 닿는다. 장터목에 오르기까지 유일한 샘인 데다 장터목 샘은 얼어붙어 있을 가능성이 많으므로 이곳에서 식수를 충분히 준비하도록 한다. 물론 장터목대피소에서는 생수(500ml 1,500원, 2l 3,000원)를 팔고 있다.

▲ 1 한신계곡 코스로 주능선에 올라선 뒤 세석대피소로 향하는 등산인들. 2 깊은 눈 속의 한신계곡 산행. 3 한신계곡과 하동바위 코스 기점인 백무동 마을. 들머리를 따라 펜션과 식당이 들어서 있다.
참샘에서 능선마루 격인 소지봉(1,312m)까지는 거리가 400m밖에 안 되지만 표고차가 200m 가까이 나 제법 힘겨운 구간이다. 하지만 참샘을 지나면서 능선길은 한결 유순해지고 제법 굵고 무성한 숲 사이로 중봉~하봉 능선이 바라보여 마음이 상쾌해진다. 이어 장터목을 1.5km 남겨놓고 봉긋 솟은 둔덕을 넘어서면 완경사 길이 다시 가팔라진다. 눈이 많을 때는 엉덩이 썰매 자국 때문에 애를 먹고, 눈이 적을 때는 빙판을 이뤄 아이젠을 차는 게 유리한 구간이다.

급경사 오르막을 30분쯤 올려치면 서서히 오른쪽 조망이 터지고 연하봉에서 촛대봉~연신봉을 거쳐 반야봉까지 뻗어나가는 지리 주릉이 한눈에 바라보이면서 지리 주릉이 가깝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어 소지봉에 이어 두 번째 능선마루 격인 공터에 도착하면 제석봉 남서쪽 안부에 자리 잡은 장터목대피소가 빤히 바라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연하봉에서 노고단 구간뿐 아니라 만복대와 고리봉을 거쳐 바래봉으로 뻗어 나아가는 지리 주릉이 거침없이 펼쳐진다.

장터목대피소는 한낮에는 거의 텅 빌 정도로 사람이 없지만 저녁 무렵이면 어느 순간 사람이 꽉 들어찰 만큼 등산객의 인기를 누리는 산장이다. 무엇보다 천왕일출을 고대하며 하룻밤 묵는 등산인이 많기도 하고 이튿날 노고단을 향해 능선종주 산행을 하기 위해 머무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피소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5시가 안 돼 자리를 배정받지 못했더라도 미리 취사준비를 해놓는 게 한적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천왕일출이 목표라면 대피소 매점 위쪽에 설치된 일출 시각을 확인하고, 이튿날 일출을 1시간 이상 남겨놓은 시점에 천왕봉을 향하도록 한다. 거리는 1.7km밖에 안 되지만 가팔라 뜻밖에 시간이 길게 걸리는 구간이다. 제석봉에 올라서고 통천문을 빠져나간 다음 천왕봉 정상에 이어지는 구간이 바위를 이루고 있지만 안전시설물이 잘 설치돼 큰 위험 없이 오를 수 있다.

겨울철 천왕봉 일출맞이를 위해서는 보온·방풍 의류를 꼭 착용하도록 한다. 대신 천왕봉까지 오르는 사이 땀에 젖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고, 추위에 대비해 보온병 하나쯤 준비하도록 한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세석까지 이어지는 능선 구간은 지리 주능선에서도 백미로 꼽힐 만큼 아름답고 경관이 뛰어나다. 대피소에서 안부로 내려선 다음 완경사 능선길을 따라 30분쯤 오르면 암봉 두 개가 정상을 이룬 연하봉 안부(세석 2.6km, 장터목 0.8km)에 도착한다. 안부에서 두 번째 암봉을 오른쪽에 끼고 돌아서면 널찍한 안부로 내려서고, 이어 숲 무성한 능선을 따라 된비알을 올려치면 360도 조망이 펼쳐지는 암봉 위로 올라선다. 암봉 한쪽에 외로우면서도 괴이한 형상으로 서 있는 구상나무도 인상적이다. 특히 눈과 상고대가 켜켜이 덮여 있을 때는 그로테스크하고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구상나무다.

암봉을 내려서면 한동안 숲이 우거진 능선길을 따른다. 남쪽으로 터진 안부로 내려서면 황금능선을 비롯한 지리산 남부의 산세와 더불어 멀리 남해와 삼천포 앞바다까지도 바라보인다. 안부에서 서서히 가팔라지는 능선길을 따르며 설경에 취해 있다가 차갑고 강한 바람이 얼굴을 때려 정신을 차려보면 촛대봉 안부에 올라서 있기 마련이다. 아침 일출과 저녁 일몰 풍광이 아름다운 곳으로, 여기서 세석대피소까지는 10분 거리다.

▲ 등산인들에게 안락한 쉼터 역할을 하는 세석대피소. 1일 정원 190명으로 지리산에서 가장 큰 산장이다.

한신지계곡 갈림목 이후 산길 순해져

세석대피소에서 한신계곡으로 접어들려면 세석대피소로 내려서다 첫 번째 갈림목에서 오른쪽 길을 따른다. 능선에 다가선 다음 ‘국립공원 특별보호구’ 안내판 왼쪽 길로 들어서면 곧 구상나무 우거진 숲길을 45도 방향으로 가로지르다 데크를 내려서면서 급경사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두 번째 데크를 내려선 다음부터 하얀 로프가 길을 인도하지만 폭설이 내린 직후에는 로프가 눈에 묻힐 가능성이 있으므로 경험자가 방향을 잘 잡도록 해야 한다. 산길은 목연폭포를 거쳐 커다란 바위가 골짜기를 가로막고 있는 지점에 이를 때까지 특별한 시설물 없이 이어지다가 바위 아래 철다리를 건너면서 안전시설물이 간간이 나타난다.

두 번째 철다리에서 백무동까지의 거리는 약 5.2km로, 한신지곡 갈림목까지 다리를 4개 더 건너며 급경사와 완경사가 반복되는 계곡 길을 따라 내려선다. 도중에 한신계곡을 대표하는 한신폭포와 오층폭포, 가내소폭포 등이 골짜기를 아름답게 꾸미고 있지만 한겨울에는 눈에 덮여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가내소폭포(세석 3.9km, 백무동 2.6km) 바로 아래 한신지계곡 갈림목에 내려서면 백무동까지 2.5km 거리가 남아 있지만 힘겨운 산행은 거의 다 끝난 셈이나 다름없다. 이후 부드러운 계곡 길을 따라 30분쯤 내려서면 식당과 펜션이 타운을 이룬 백무동마을이다.

백무동을 기점 삼아 하동바위 코스와 한신계곡 길을 잇는 산행은 전형적인 1박2일 코스로, 대개 어느 대피소를 예약했느냐에 따라 방향을 잡는다. 대개 장터목대피소를 예약했을 경우 하동바위 코스를 따르지만 눈길이 잘 나 있는 상태에서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한다면 한신계곡을 타고 세석대피소로 올라선 다음 주능선을 타고 장터목까지 당일에 갈 수 있다(약 7시간). 촛대봉 일출 또한 장관이라는 면에서 세석대피소에서 머물더라도 멋진 일출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교통·숙식은 한신계곡~세석대피소~남부능선~청학동 르포 기사 참조. (p.171 )

▲ 남해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맞기 위해 천왕봉 정상에 오른 등산인들.

[ 천왕봉서 만난 사람들 ]


‘남자의 조건’ 김국진·윤형빈
“산정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정말 장관입니다”


▲ 천왕봉에 오른 김국진·엄홍길·윤형빈씨(왼쪽부터).
1월 8일 새벽 지리산 천왕봉은 모처럼 하늘을 열고 남해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볼 기회를 주었다. 그 날 천왕봉에 오른 등산인 가운데는 TV에서나 볼 수 있는 유명 개그맨들도 있었다. KBS2 TV의 주말 인기 프로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 ‘남자, 지리산을 가다!’ 팀의 김국진(45)씨와 윤형빈(30)씨였다.

하루 전날 중산리 유암폭포 길을 따라 산악인 엄홍길씨와 함께 장터목대피소에 올라온 이들 두 사람은 원래 화엄사에서 출발해 노고단에서부터 능선을 타고 오는 ‘골골 3인방’ 이경규·김태원·이윤석씨 등의 일행과 장터목에서 만나 천왕봉을 함께 오르기로 돼 있었다. 아쉽게도 1월 3일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퍼부은 눈이 종주 팀의 발목을 노고단에서 붙잡는 바람에 이들의 ‘천왕봉 랑데부 등정’ 목표는 깨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김국진씨와 윤형빈씨는 침낭과 비상용 의류에 이틀치 식량까지 짊어지고 올라오느라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파김치 상태에 이르렀음에도 이튿날 새벽 어둠을 가르며 천왕봉에 올라섰다. 난생 처음 지리산 정상 천왕봉에 올라선 두 사람은 “산정에서 맞는 일출은 바닷가 일출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장관”이라며 즐거워했다.

두 사람은 천왕봉에서 장터목대피소로 내려와 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한 뒤 하동바위 코스로 하산, 이경규씨 일행과 ‘백무동 랑데부’의 기쁨을 누렸다.


/ 글 한필석 차장
  사진 허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