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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선제는 정치의 지형과 틀을 바꿔놓았다. 정치에 실질적인 경쟁이란 요소가 도입되면서 정치세력 간 견제와 경쟁이 본격화됐다. 선거를 통한 두 차례의 정권교체(1997년, 2007년)도 이뤄졌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제가 부활(95년)되면서 주민이 지역 일꾼을 뽑는 게 제도화됐다.
중앙일보와 중앙SUNDAY는 87년 대선부터 2008년 총선까지 치러진 15번의 각종 선거를 심층 분석했다. 새로운 번영의 100년을 이끌어 갈 국가 리더십을 모색하기 위한 작업의 하나였다.
그 결과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 23년을 관통하는 몇 가지 흐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선거의 승자와 패자, 그 승인과 패인을 분석하는 과정은 민심의 변화와 흐름을 추적하는 작업이자 동시에 권력 획득을 꾀하는 정치세력에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첫 번째 교훈은 ‘연대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패한다’는 평범한 진리였다. 지난 다섯 차례 대선이 이를 보여준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3당(민정+통일민주+신민주공화당) 합당으로,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충청권의 맹주인 김종필(JP) 전 총리와의 DJP연대로 집권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데는 당시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현 한나라당 대표)와의 단일화가 발판이 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승리 역시 경쟁자였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협력이 힘이 됐다.
반면 15대 대선 때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득표율 38.7%)는 한솥밥을 먹던 이인제 후보(국민신당, 득표율 19.2%)와 결별하는 바람에 집권에 실패했다. 둘이 협력했다면 DJ(득표율 40.3%)를 17.6%포인트 차로 누를 수도 있었다.
13대 대선 때 노태우 후보(36.6%)가 당선된 데도 양김(DJ·YS)의 분열이 영향을 미쳤다. YS(28%)와 DJ(27%)의 득표율을 합치면 55%다.
여섯 차례의 총선을 관통하는 흐름은 자신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일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려는 경향이다.
유권자들은 대통령이 속한 집권당에 승리를 가져다 줬다. 노무현 대통령 때 치러진 17대 총선과 이명박 대통령 집권 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각각 여당인 열린우리당(152석)과 한나라당(153석)이 압승했다.
DJ는 16대 총선을 앞둔 2000년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해 115석을 얻었다. 야당인 한나라당(133석)엔 못 미쳤지만 DJ가 이끌었던 정당 중에서 100석을 넘긴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YS는 당명을 민자당에서 신한국당으로 바꿨다. 그해 4월 총선에서 신한국당은 139석을 얻어 승리했다.
지방선거는 정권에 대한 심판 내지 중간평가적 성격이 강했다. 95년부터 치러진 네 차례의 주요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집권당은 패배했다. DJ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 넉 달 만에 있은 지방선거(98년 6월)에서 국민회의가 승리한 게 유일한 예외였다. IMF라는 환경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 같은 흐름과 경향은 한국형 민주주의가 정착 단계를 거쳐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선거를 통한 경쟁과 심판의 원리가 작동하는 단계로 진입한 것이다.
박찬욱(정치학과) 서울대 교수는 “87년 이후 한국 정치는 정당 간 권력 교체를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가 숙성하고 공고화돼 온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키기 위한 과제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개헌”이라며 “이제는 개헌을 헌법 개혁이란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운영의 효율성, 기본권 신장,권력분립을 제대로 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헌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