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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야성·경쟁본능 죽이면 국운도 끝난다

화이트보스 2010. 3. 17. 11:21

한국인 야성·경쟁본능 죽이면 국운도 끝난다

  •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

입력 : 2010.03.16 21:55 / 수정 : 2010.03.16 23:12

그리스, 스페인…. 요즘 유럽은 회복되는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는 존재다. 작년 4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5.7%, 일본도 1.1%의 회복세를 보였지만 EU 27개국 평균성장률은 0.1%로 정체했다. 작년 말 실업률은 9.8%, 25세 이하 청년실업률은 21.8%, 요즘 문제 되는 스페인의 실업률은 19.5%, 청년실업률은 참혹한 44.5%다. 유럽은 세계 경제가 4%대 성장을 하던 2004~5년의 초(超)호황기에도 1.5% 성장에 머물렀다.

1960~70년대 유럽이 건강할 때 유럽의 정치가들은 경쟁적이고 개인적인 '미국식 삶' 대신 모든 시민에게 고용안정과 생활보호를 보장하는 '통합된 사회'를 미래 비전으로 제시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유럽 사회모델이다. 유럽 각국은 경쟁적으로 복지와 재정을 늘렸다. 1960~69년 평균 32%던 독일의 GDP 대비 정부 지출의 비율은 1996년 56%로, 스웨덴은 31%에서 66%로 치솟았다. 그리스는 17%에서 49%, 스페인은 14%에서 45%로 늘었다.

그 결과로 오늘날 유럽인들은 더 이상 안전한 직장과 삶을 보장받지 못한다. 적자예산과 국가채무는 산처럼 쌓여가고 국가 신용등급은 추락하고 일부 국가는 부도위기다. 유럽에 남은 것은 쇠락하는 산업경쟁력, 노령화인구와 정부 의존에 중독된 노동자들이다. 유럽은 이제 줄어드는 노동력으로 더 나쁜 환경에서 과거 세대가 만든 복지통합사회의 비용을 치러야 한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우리는 지금 국운 융성기를 맞고 있지만 아무리 기회가 흐르고 운이 넘쳐도 그릇이 없으면 담을 수 없다. 지금이 바로 국가 운용의 틀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지 돌아볼 때일 것이다. 2년 전 집권 때 이명박 정부의 상징은 '747 공약'(7% 성장, 4만달러 소득, 7대 경제대국 달성)이었다. 현실성이 떨어졌지만 내용은 틀림없는 '작은 정부 큰 시장, 성장 우선주의' 국가발전 모델이었다.

그러나 이 모델은 정부가 촛불시위·용산사태 등에 밀리고 세계 금융위기가 닥치자 시들어버렸다. '친(親)서민'으로 정부 지지율이 올라가자 수많은 복지정책이 개발되고 시혜(施惠) 대상은 넓혀졌다. 최근 정부는 전 대학생 대상의 취업 후 학자금상환 대출제도를 만들었고, 야당은 전 초·중·고생 무상급식을 공약하는 중이다. 이들은 한국의 GDP대비 사회복지지출 11%(2008년)가 OECD 평균 24%에 미달하고 국가부채 36%도 OECD 평균 75%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복지지출이 많고 국가부채도 높은 선진국들이 지금 과대 재정(財政) 과대 부채구조라는 암(癌) 덩어리를 갖고 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자비로운 정부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에게도 이 암 덩어리가 생길 수밖에 없고 그 암 덩어리는 출산율 1.19명에 불과한 우리의 후(後)세대가 물려받아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전기(前期)는 이렇게 복지주의자들의 승리로 마감됐다. 후기에도 이 구도가 계속된다면 우리나라에도 유럽식 사회모델이 거의 '정착'할 것이다. 커지는 정부는 경제성장도 고용도 이끌어낼 수 없다.

한반도에 천운(天運)이 왔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간 유럽 일본 미국의 실패가 만든 반사 이익을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며, 혹독한 시장경쟁에서 단련된 한국인의 경쟁 본능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결과다. 유럽식 복지모델의 걱정은 무엇보다 이런 한국인의 모험적 야성이 죽어 미래 가망이 없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