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개인개인이 할 일을 정부가 대신해준다면 국민이 싫어할 까닭이 없다. 할 수만 있다면 학생들에게 점심만 공짜로 줄 게 아니라 학용품도 공짜로 주고, 방과 후 수업도 무료로 해주면 좋을 것이다. 대학생 등록금은 절반으로 깎고 노인들 기초연금액을 팍팍 올려주는 것도 좋다. 전 국민의 점심을 국가가 제공하는 것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모든 국민이 박수를 칠 것이다. 문제는 그러려면 세금을 지금보다 훨씬 더 걷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잣집 자식에게까지 '무상급식'을 하면 진짜 평등사회가 도래할 것처럼 생각하는 건 심각한 착각이다. 현재 기초생활수급자, 복지시설 수용학생, 한 부모 자녀, 소년소녀 가장, 차상위 계층 등 88만명만 무상급식 혜택을 받고 있다. 여기에 드는 예산이 연간 5400억원이다. 이런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무상급식을 하는 것을 문제 삼을 사람은 없다. 만일 초·중학생 548만명 모두에게 무상급식을 해준다면 해마다 2조원이 든다. 1조5000억원의 예산이 더 필요하다. 1500만 가구가 연간 10만원씩 세금을 더 내거나 노후 학교 시설의 보수 등 다른 용도로 쓰던 그만큼의 복지·교육예산을 무상급식으로 돌려써야 한다.
복지엔 생산적(生産的) 복지도 있고 낭비적(浪費的) 복지도 있다. 집이 가난해 정상 교육을 못 받을 형편의 아이들을 그냥 방치해둬서 그 아이들이 가난의 악순환에 빠지거나 범죄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사회에 커다란 부담이 된다. 국가가 그런 아이들을 지원해 교육을 시켜줘 성실한 납세자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생산적 복지다. 반면 넉넉한 환경에서 자라 한달 수백만원씩 사교육비를 쓰는 아이들까지 한달 5만~6만원의 급식비를 공짜로 해준다고 그 아이들이 더 행복해지거나 장래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그걸 고집하는 것은 '복지'라는 단어를 끌어다 사용하기 위한 포퓰리즘의 전형적 수법이다. 그런 정책은 진짜 중요한 다른 복지의 질(質)을 떨어뜨리는 '낭비적' 복지다.
포퓰리즘이 무서운 이유는 일단 인기영합적 복지정책을 시행할지 말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면 그것이 국가 장래를 망친다는 사실을 다 알면서도 거기 끌려 다니게 된다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한번 포퓰리즘의 맛을 본 국민들은 다시는 정상적 국민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점이다. 여·야의 무상급식 경쟁은 바로 국민 망치기 경쟁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