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ㆍ美의 총성없는 환율전쟁
성장 위해 뿌리치기 힘든 유혹… 단행 가능성
부동산버블 붕괴ㆍ亞금융시장 혼란‘숨은 덫’
통상마찰 심화… 오바마 정부 압력도 큰 부담
100년 만의 경제 위기라는 최악의 상황을 놓고 중국과 미국의 환율전쟁 판도가 바뀌고 있다.
그동안 양국의 환율 전쟁에서 미국은 언제나 공격수였고, 중국은 수비수였다. 미국은 환율조작국 운운하며 중국이 사실상 수출보조금에 해당하는 위안화 저평가를 용인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 통계국에 따르면 2001년 830억달러 수준이던 대(對) 중국 무역적자액은 2005년 처음으로 2000억달러를 돌파했으며 지난해에는 약 27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중국은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 덕분에 지난해 외환보유액이 1조9500억달러를 기록, 2조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중국은 세계 1위 외환보유국과 미 국채 최대보유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미국에 대한 환율 공격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위안화 절하의 유혹=지난해 12월 미 재무부는 부시 행정부 임기 내 마지막 환율 조작국 관련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좀 더 탄력적인 환율제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위험이 있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정작 환율조작국 리스트에는 올리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열린 ‘중미경제전략대화’에서도 천더밍(陳德銘) 중국 상무부 부장은 “(대화 당시의) 미세한 위안화 절하는 정상적인 것이며, 위안화 약세라기보다는 달러 강세라고 불러야 적절하다”고 반격하면서 중국이 이제는 미국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하지 않을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중국은 지난 2005년 7월 21일 달러당 8.2765위안의 런민비(人民幣)를 8.11위안으로 절상한다며 달러페그제에서 복수통화바스켓 관리변동환율제로의 변화를 선언했다. 위안화 가치는 2005년 2.56%, 2006년 3.35%, 2007년 6.9%, 2008년 7.05%씩 매년 올라 당시에 비해 20%가량이 절상됐다.
그러나 지난해 금융위기로 11월 수출이 7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하자 절상 속도가 둔화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시적으로 절하 기조를 보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수출 부양을 위해 중국 정부가 위안화 절하를 유도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자오상(招商)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위안화가 계속 절상될 가능성은 크지 않으며 수출 진작을 위해 절하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골드먼삭스도 지난 12일 “중국 정부가 취약해진 글로벌 수요 등을 감안해 작은 폭의 환율변동 방침을 유지할 것”이라며 향후 12개월 동안 달러당 위안화가 최근의 6.83위안에서 가치가 떨어져 6.87위안에서 움직일 것으로 내다봤다.
▶위안화 절하의 함정=수출 감소로 경제성장률 8%를 위협받는 상황에서 위안화 절하를 통해 수출을 부양하고픈 유혹이 큰 중국이지만 간단치만은 않다. 위안화를 절하할 경우 ▷미국과의 통상 마찰 심화 ▷외자 유출로 인한 증시와 부동산 버블 붕괴 우려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 동반 하락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천더밍 상무부장은 “외부 수요가 위축된 상황에서 환율의 평가절하를 이용해 수출을 자극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최근 일부 국가 통화가 대폭 평가절하됐음에도 불구하고 수출 하락세가 반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통화가치 하락을 통한 수출 부양은 효능이 없음을 시사한 것이다.
위안화 절하는 기타 아시아국 통화의 경쟁적인 가치 하락을 불러올 수 있어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 JP모건체이스의 궁팡슝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위안화 가치가 10% 절하될 경우 아시아 국가의 통화는 전체적으로 50% 이상 절하되게 될 것”이라며 이 경우 아시아 국가 전체가 공멸할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이다. 미국이 최근 10년간 1조4000억달러에 달하는 대 중국 무역적자의 주범을 저평가된 위안화라고 단정 짓고 있는 만큼 미국과의 무역 분쟁이 더 심화될 수 있다.
최근 수출 활성화를 위해 중국이 전체 수출제품의 27.9%에 달하는 3770개 제품에 대해 수출환급세율을 높였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모든 중국 철강업체에 37.84% 수준의 상계관세 부과를 결정하는 등 양국의 보호무역 장벽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중국의 환율정책에 대해 강경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상황은 불 보듯 뻔하다.
이런 이유로 중국은 올 한 해 수출을 위한 절하도, 미국의 요구에 응한 절상도 하지 않는 중용적 태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2009년 한 해의 경기 운용 방향을 결정짓는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도 올해 위안화는 적절한 수준에서 안정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선희 기자/sunny@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