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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수출국들 vs 미국, 치열한 氣싸움
한국·브라질 등 신흥국 수출감소 막느라 안간힘
美는 달러 약세로 '재미'
"저마다 무역흑자 추구땐 공멸 위기 가능성 커져"
주요 해외 언론이 갑자기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 정책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 영국 로이터통신 등이 "한국,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 수출국들의 정부가 일제히 외환 시장 개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들 나라의 외환당국이 수출 감소를 막으려고 환율 방어(환율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 것)에 나섰다는 것이다.
WSJ는 지난 8일(미국 현지시각) "필리핀 중앙은행은 달러당 46.5페소, 싱가포르 중앙은행은 1.4020싱가포르달러를 마지노선으로 삼고 달러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며 "각국 정부는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일선 외환 딜러들 사이에선 이미 공론화된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최악의 경제난에 빠진 미국과, 미국에 상품을 파는 수출국들 사이에서 '환율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린 것이다.
실제로 주요 수출국들의 최근 환율 정책을 들여다보면 '국가 간 총성 없는 경제전쟁'인 환율전쟁이 이미 시작됐다. 현재 미국과 환율전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는 중국·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국가와 브라질·러시아 등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신흥국들이다. 이들 나라는 최근 미국 달러화의 약세 기조로 인해 자국 통화의 환율이 떨어져(통화가치 상승) 수출이 타격을 받을까봐 환율의 추가 하락을 막으려고 총력을 쏟고 있다.
◆한국, 환율 하락 막기 안간힘
환율 하락 방어에 나서는 아시아 국가 중 대표 주자로 외신이 꼽는 나라 중 한 곳이 한국이다.
우리나라는 이달 초 달러당 1170원 선이 무너지려고 할 때부터 적극적으로 환율 방어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일엔 외환당국이 "최근 외환시장 쏠림이 다소 과다하다"며 구두(口頭) 개입을 하기도 했다. 올 초 이후 첫 구두개입이다. 이날 환율은 달러당 1166.6원까지 떨어졌다가 1178.3원에 마감했다. 그 후에도 구두개입이 지속되고 있다. 외환시장에선 외환당국이 시중에서 달러를 사들이며 환율 방어에 착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 15일 달러당 1155원까지 떨어졌다가 19일엔 달러당 1171원에 마감했다. 시장에선 외환당국의 환율 방어 마지노선이 1150~1170원 사이에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브라질, 외환거래세까지 검토
미국과 환율전쟁을 벌이고 있는 브라질은 세금 정책까지 동원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브라질 헤알화는 올해 달러 대비 37%나 환율이 떨어졌다. 지난 16일 브라질의 일간지 에스타도 데 상파울루는 "브라질 정부가 헤알화 강세를 막기 위해 해외 채권 투자자금에 대해 금융거래세(외환거래세) 부활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외 투자금에 세금을 매기면 달러 유입이 줄어들어 환율 하락세를 둔화시킬 수 있다. 브라질은 작년 초 해외 채권 투자자금에 대해 1.5%의 금융거래세를 부과했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폐지했다.
◆미국의 대응
수출국들의 환율 방어에 대해 미국은 정면 대응하고 있다. 수출국들 통화의 환율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달러 약세 기조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미국으로선 '강한 달러'로 돌아서려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연 0~0.25%인 기준금리를 당분간 올릴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달러 약세를 계속 용인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작년 3분기(7~9월) 1842억달러에 달했던 경상수지 적자폭이 올해 2분기 988억달러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달러 약세로 수출 경쟁력이 높아져 무역수지 적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환율전쟁이 치열해질 경우 세계 경제가 공멸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손성원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세계 모든 나라가 무역 흑자를 추구하면 더블딥(double dip·회복세를 보이던 경제가 다시 침체하는 것)이 올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