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낮 12시 5분 일본의 이바라키(茨城)현 오미타마(小美玉)시 이바라키 공항에 인천발 우리나라 여객기가 착륙했다. 1937년 설립된 군용(軍用) 공항으로 태평양전쟁 때도 전투기가 출격했던 이 공항이 최근 민간공항 기능을 갖추면서 첫 국제노선을 유치한 것이다. 국내선조차 없는 공항에는 고향마을에 처음 내린 민항기, 그것도 외국 국적 민항기를 구경하기 위해 수백명의 인파가 모였다.
대합실은 꽃다발을 든 환영객들로 북적였다. 한국의 민항기 1대가 일본의 전형적 농촌 마을에 마치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것 같았다. 시내 곳곳에는 개항과 한국 항공사 취항을 축하하는 현수막과 광고가 나붙었고, 맥주병 등에도 개항을 알리는 광고가 들어갔다.
그러나 여객기가 활주로에 내린 직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170명의 승객이 내리기 전에 항공사 사장이 먼저 트랩을 내려가 이바라키현 지사(知事)의 영접과 축하 꽃다발을 받고 입국장을 통해 그냥 나가 버린 것이다. 승객들은 이 행사가 끝날 때까지 영문을 모른 채 여객기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비행기 안에는 이바라키현의 초청을 받은 인천광역시 부시장과 '2010 제천 국제한방바이오엑스포' 홍보차 온 제천시장, 일반 일본인 승객 등도 타고 있었다.
일본에서 이런 행사가 있다면 항공사 사장이 먼저 내려와 트랩을 내려오는 승객들에게 일일이 인사하고 자사(自社) 여객기를 이용해준 데 감사의 표시로 고객 대표에게 꽃다발을 걸어주었을 것이다. 그러고서 환영객들에게도 인사했을 것이다. 그런 광경을 당연한 것으로 아는 일본인들에게 이날 벌어진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원래 이렇게 행사를 합니까?" 공항에서 꽃다발을 들고 첫 여객기 착륙을 기다리던 '이바라키 공항 서포터즈' 회원 나카가와(60·전문학교 교장)씨는 "시대착오적이고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했다.
그날 저녁 현청 소재지인 미토(水戶) 시내 한 호텔에서 공항 서포터즈 주최로 개항 축하연이 열렸다. 지역 정·관·재계 인사 500여명이 1인당 7000엔의 참가비를 내고 와 공항 개항을 축하했다. 그 자리에서도 낮에 있었던 일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한국 회사는 영업을 하러 온 것이지, 우리 고장에 시혜를 베풀러 온 게 아니잖아요." 이바라키현 9선(選) 의원 이시카와(68)씨는 몇 시간 전 공항의 상황을 떠올리며 "이곳 서포터즈 회원들이 그 여객기를 많이 타자는 캠페인을 벌여 왔는데 씁쓸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튿날 이바라키신문사 주최 간담회에서 충북대 행정학과 강형기 교수는 "우리는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일본인들에게 공항에서 벌어진 일은 마음속에서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일 것"이라고 했다. 강 교수는 "누군가 공항 서포터즈 회원들에게 감사의 말 한마디라도 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이 과정을 모두 본 기자는 '별것도 아닌 일'이라고 생각해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우리의 인식 속에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일은 과연 일본 시골공항 한 곳에서만 일어나고 있을까. 남을 배려하지 않고서 우리가 어디까지 더 발전할 수 있을까. 국격(國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日 시골공항서 있었던 일
입력 : 2010.03.21 22:24 / 수정 : 2010.03.22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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