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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기획연재 여자들] <12> 니콜 게랭-흑장미 향내의 싱글맘

화이트보스 2010. 3. 22. 19:51

[고종석 기획연재 여자들] <12> 니콜 게랭-흑장미 향내의 싱글맘

"결혼은 안해도 아이는 낳고 기를거예요"… 인습에 맞선 68혁명의 상징
의사란 직업의 커리어우먼이자 체제·제도·질서에서 독립적 의식 소유
그녀가 남긴 사생아는 전통적 가족에 대한 1968년의 또다른 유산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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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시걸의 소설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의 영어판 표지(아래)와 이를 영화로 만든 작품의 포스터(가운데). 배경은 68혁명 당시의 시위대.

<러브 스토리>(1970)의 저자 에릭 시걸은 내가 매우 좋아하는 대중소설가다. 그가 고전문학자로서 쓴 논문이나 저서는 한 편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의 달콤쌉쌀한 대중소설들은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일급 대중소설가답게 시걸이 얽어내는 극적 구성과 지칠 줄 모르고 수행하는 말놀이는 얄팍한 내 감성을 늘 만족시킨다.

이미 읽은 독자들도 적잖겠는데, 그의 1980년도 작품에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Man, Woman, and Child)라는 게 있다. 거기서 남자는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의 통계학 교수 로버트 베크위스고, 여자는 그의 아내 셰일라다.

셰일라는 하버드대 출판부 직원이다. 그들은 소설 도입부 시점으로부터 10여 년 전 예일대학과 바사대학 학생으로서 한 파티에서 만났고, 한 눈에 서로 반해 곧 결혼했다. 그리고 제시카랑 폴라라는 딸을 두었다. 단란한 미국 동부 중산층 가정의 전형이다.

소설 제목의 '아이'는 그러나 제시카도 폴라도 아니다. 그 아이는 장-클로드 게랭이라는 프랑스 아이다. 소설 들머리로부터 10년쯤 전, 셰일라가 폴라를 뱃속에 품고 있던 동안, 로버트는 학술대회에 참가하러 남프랑스의 몽펠리에(사회학자 오퀴스트 콩트의 고향이다)를 잠깐 방문한다.

 

그 때 프랑스는 '혁명' 중이었다. 1968년 5월이었던 것이다. 로버트는 신분증을 지니지 않은 채 호텔 밖으로 나갔다가 시위대 일원으로 몰려 경찰에게 폭행을 당하고, 체포되기 직전 한 젊은 여의사의 도움으로 현장에서 빠져나온다.

그 여의사의 이름은 니콜 게랭이다. 로버트는 니콜의 병원에서 긴급치료를 받은 뒤, 인근의 세트(소설 속에서 니콜의 고향인 이 항구도시는 시인 발레리의 고향이기도 하다)에서 니콜과 함께 지중해에 몸을 담그고 사흘밤을 함께 지낸다. 그리곤 매사추세츠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니콜과의 세 밤은 로버트가 10여 년의 결혼생활 동안에 셰일라에게 저지른 단 한 번의 배신행위였다. 로버트는 곧 그 일을 잊는다. 10년 뒤 어느 날, 보스턴의 프랑스영사관에서 전화가 걸려오기까지는. 레지옹도뇌르 훈장이라도 받게 되나 보다 하는 기대를 갖고 영사관을 방문한 로버트에게 전해진 것은 니콜이 며칠 전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이다.

10년 만에 듣는 니콜이란 이름에 당황한 로버트는 이어서 더 황당한 사실을 알게 된다. 친인척이 거의 없는 니콜이 장-클로드라는 아이(로버트의 아이이기도 하다)를 혼자 키워왔다는 것이다.

장-클로드가 고아원으로 가지 않게끔 프랑스 쪽 후견인이 이런저런 절차를 마무리하는 동안, 이 꼬마는 대서양을 건너와 한 달 간 로버트의 집에 머물게 된다.

소설의 초점은 이 장-클로드라는 아이의 존재가 로버트의 가정에 빚어내는 갈등이다. 소설 도입 시점에서 이미 죽었으므로, 장-클로드의 엄마 니콜 게랭은 소설에서 거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뒷부분의 세 챕터에서 로버트의 회상 속에 등장할 뿐이다. 그 희미한 회상 속에서, 니콜은 짙은 흑장미 향내를 풍긴다.

소설은 니콜의 삶에 대해 정보를 거의 주지 않는다. 로버트를 만나기 전까지의 삶만이 아니라, 로버트도 모르게 그의 아이를 낳고 기르던 10년 가까운 삶(소설 속에서 장-클로드는 아홉 살이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독자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녀가 68년 5월 시위에 참가했고(그러니까 드골을 반대했고), 몽펠리에의 종합병원과 세트의 작은 병원을 오가며 환자들을 돌보는 헌신적 의사였으며, 평생 결혼할 생각이 없었던 독립적 여성이었고, 그래도 아이를 가질 생각은 있었던 여자라는 사실이다. 함께 아이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될 만큼 좋은 상대가 나타난다면 말이다. 그리고 로버트가 우연히도 그 상대가 되었다.

사흘은 사랑이 무르익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그래서 니콜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로버트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로버트를 적어도 자기 아이의 아버지로서 손색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로버트에게는 잠깐의 불장난이었던 사흘이, 완전히 잊혀졌던 사흘이, 니콜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사흘이었다. 매일 자기 아이를 보며 어떻게 '그' 사흘을 잊을 수 있겠는가?

소설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는 뛰어난 대중소설이다. 철석같은 상호신뢰 속에서 살아온 부부 사이에 한 아이가 등장함으로써 생겨난 균열, 제 결혼을 파탄으로 몰고 갈 뻔한 낯선 아이에게 솟아나는 부정(父情), 프랑스로 되돌아가기 직전 아이가 복막염을 앓게 되면서 이뤄지는 가족적 화해가 시걸 특유의 경쾌한 문장에 실려 누선을 건드린다.

내 눈길은 이 멜로드라마적 스토리의 출발점이 된 여자, 니콜 게랭에게 멎는다. 결혼을 안 하는 까닭을 묻는 로버트에게 니콜은 이렇게 답한다. "나 자신도 내가 결혼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밖에 몰라요. 머리가 이상한 탓인진 모르겠지만, 나는 누구나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적어도 나한테는, 결혼이라는 것이 이득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혼자서 사는 것이 너무 편한 걸요. 혼자 있다고 해서 반드시 고독하지만은 않아요."

그런데도 아이는 갖고 싶다고 말하는 니콜에게, 로버트는 "그럼 혼자 기른다는 겁니까?"라고 묻는다. 니콜이 대답한다. "그렇죠." 매사추세츠에서 날아온 지극히 가정적인 남자 로버트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다.

"그건… 꽤… 진보적인 삶의 방식이군요." 니콜이 로버트의 말에서 어떤 부정적 함축을 읽어내고 말을 잇는다. "상식 밖의 짓이라고 말씀하시고 싶은 거죠? 어찌됐든 저한테는 혼자 힘으로 어버이가 될 능력이 있거든요. 아이를 키울 능력이요. 또 세트는 반드시 상식적인 고장은 아닌 걸요."

사람들이 흔히 상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뒤집어버리는 것이 1968년 5월운동의 한 목표였다고들 한다. 작가 에릭 시걸은 니콜 게랭을 통해 자기가 이해하고 있는 바의 68년 5월을 슬쩍 내비친 것일까?

인습의 타파, 금지의 금지 같은 것들 말이다. 68년 5월에 파리만, 프랑스만 요란했던 것은 아니다.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가, 미국이, 일본이 반체체의 열기로 후끈했다. 그래서 일부 사학자들은 1968년을 1848년에 맞먹는 세계혁명의 해라고 하지 않는가?

프랑스에서, 니콜 게랭을 포함한 반체제파가 드골을 즉시 몰아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체제에 어떤 균열을 내는 듯 보였다. 그 당시 10대 말에서 20대였던 소위 68세대는 기성세대를 향한 불신을 통해서, 제도에 대한 의심을 통해서 거대한 의식혁명을 이뤄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전통적 가족관계에 금이 가고, 질서라는 것에 대한 경멸이 커진 것은 68년 5월 이후였다. '싱글맘' 니콜 게랭은 그 68세대의 한 상징이다. 실제로 68세대는 앞세대에 견줘 프리섹스에 더 너그러웠고, 더 독립적이 되었고, 더 코스모폴리탄적이 되었다. 그들은 한동안 잊혀졌던 '세계시민'이라는 말을 제 몸으로 구현하려 애썼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때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68년이 그렇게 위대한 해였는지 잘 모르겠다. 1848년이든 1968년이든, 이 해를 세계혁명의 해로 추어올리는 역사학자 집단들을 비웃는 저널리스트나 테크노크라트 집단도 있다.

세계는 과연 1968년 앞뒤로 크게 달라졌는가? 이를테면 몇몇 좌파학자들이 주장하듯, 미국을 비롯한 세계 자본가들은 이 운동에서 위협을 느꼈는가? 미국은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했는가?

10여 년 전 비밀이 해제된 미국 국무성의 한 보고서는 사실이 그렇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프랑스 각처에서 암약하고 있던 미국 정보원들이 주 프랑스 미국대사관을 통해 국무성에 건넨 보고에 따르면, 미국은, 정부든 자본가든, 프랑스를 전혀 염려하지 않았다.

전국 규모의 폭동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결코 혁명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이들 현장 스파이들의 보고였다. 그 보고서는 오히려 당시의 프랑스를 유쾌하게 묘사하고 있다. 늘 뻣뻣하게 미국에 대들던 드골이 안절부절못하며 당황하고 있는 꼴을 보니 신나더라는 것이다.

미국 정보원이 보기에, 우리들의 니콜 게랭은 하나의 동화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또 어떤가? 68년 5월과는 상관없이 가족은 진화하고 있다. 그 진화의 내용은 유연화다. 이제 '결손가정'이라는 말은 점차 사라질 테다.

21세기의 어느 시점엔,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할 것이다. 니콜 게랭은 그 가운데 한 형태의 가족만들기를 실천해 보였다. 문득, 세트의 지중해 물살이 그립다.